美 관세 리스크 부상...제약·바이오업계, 필수의약품 무관세 등 국회 요청
SK바이오팜 세노바메이트 등 직격탄 가능성…삼성바이오로직스 CDMO도 불확실 제약바이오협회-업계, 박주민 국회 복지위원장 찾아 도움 요청 국회·정부에 “현지 투자·고용 창출 기업 관세 면제 협상 필요” 촉구
[의학신문·일간보사=이재원 기자]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의약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행정명령은 내려지지 않았으나, 주요 기업들의 대미 수출 규모와 품목 특성을 고려할 때 현실화될 경우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국내 제약바이오업계는 국회에 ▲브랜드 의약품 관세 15% 상한 ▲필수의약품 및 원료의약품 무관세 적용 ▲생산시설 인수 등 대규모 투자 기업 제품에 대한 관세 면제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와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30일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국회 본청 보건복지위원회 소회의실에서 제약바이오업계와 긴급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간담회에는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현우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상무, 이학규 대웅제약 팀장, 박용기 삼성바이오로직스 대외협력팀장, GC녹십자 허진훈 팀장, 조형래 SK바이오팜 커뮤니케이션본부장이 참석했다.
이현우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상무는 먼저 미국 의약품 관세 정책의 정의와 현황을 설명했다. 이 상무에 따르면, 지난 4월 2일 미국 행정명령을 통해 의약품은 제외됐지만, 기존 관세 10%를 57개국에 상호 적용한다는 조치가 발표됐다. 당시 의약품에 대해서는 가까운 시일 내 별도의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었다.
4월 중순에는 미국 상무부가 의약품 및 의약품 원료 수입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기 위해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조사를 개시했다. 232조는 미국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특정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거나 수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다.
이현우 상무는 "의약품은 1994년 WTO 규정에 따라 원칙적으로 관세가 면제되도록 규정돼 있다”며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이러한 국제 무역 규범을 넘어서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상무는 이어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무역 협상 경과를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8월 21일 미국과 EU 간 무역 합의에서 의약품과 반도체 등에 대해 15%의 관세 상환을 설정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는 해당 15% 상환이 브랜드 의약품, 즉 신약에만 적용되고 제네릭이나 원료의약품은 최혜국 대우를 받아 사실상 면제되도록 합의됐다.
또한 그는 미국 내 상호 관세 추진 상황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상무는 “미국 정부가 추진한 상호 관세 조치는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패소했다”며 “법원은 관세 부과 권한이 대통령에게 있지 않고 의회 권한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항고장을 제출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행정명령을 보면 무역 협정이 체결된 국가의 특정 수입품에 대해서는 상호 관세를 0%로 인하하거나,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부과된 관세를 인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상무는 “이때 특정 수입품이란 국내에서 생산이 불가능하거나 수요를 충족하기에 부족한 제품, 또는 의약품 용도로 사용되는 제품이라고 명시돼 있다”며 “이는 제네릭이나 원료의약품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발언과 관련해 “9월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0월 1일부터 특허 의약품에 대해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실제 행정명령으로 이어지지 않은 ‘메일’ 형태의 발언에 불과하다”며 “아직까지 구체적인 명령이나 법적 조치는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는 조만간 현실적인 조치가 내려질 수 있다는 전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상무는 “백악관 관계자가 9월 25일 발표와 관련해 EU와 일본은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며 “그러나 전반적인 불확실성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아직 미국과 문서화된 무역 협정을 체결하지 못한 상황이어서, 의약품 관세 부과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우려가 크다. 이현우 상무는 “2024년 기준 한국의 대미 의약품 수출액은 약 14억 9천만 달러로 집계되지만, UN 무역 통계에 따르면 39억 달러로 나타난다”며 “미국 세관 통계 기준과 HS 코드 등 집계 방식 차이로 인해 정확한 차이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내 기업 중 대미 수출 주요 업체는 셀트리온,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 대웅, SK바이오팜, GC녹십자, 휴온스 등”이라며 “식약처 통계에 따르면 전체 의약품 수출액이 92억 9천만 달러(약 13조원)인데, 이 중 대미 수출액이 약 2조원 규모로 추산된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강경한 관세 정책 배경에 대해서는 “미국의 연간 의약품 수입 규모는 약 300조원에 달하고, 수출은 243억 달러 수준에 불과해 무역 역조가 약 150조원에 달한다”며 “이 같은 적자가 미국 정부의 문제의식을 키운 것 같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주요 수입국으로는 아일랜드, 스위스, 독일, 중국 등이 꼽힌다. 특히 다국적 제약사들이 법인세가 낮은 아일랜드로 대규모 생산거점을 옮긴 점, 제네릭 의약품의 상당량이 인도에서 수입되는 구조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관세가 실제로 부과될 경우 타격이 예상되는 국내 의약품도 거론됐다. 이 상무는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는 2021년 출시 이후 미국 시장에서 연간 4천억~5천억 원 매출을 기록하고 있어 영향이 불가피하다”며 “GC녹십자의 면역글로불린 역시 필수의약품이지만 수출 차질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나보타’는 미용 목적 의약품이어서 관세 적용 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반면 유한양행의 난소암 치료제 ‘렉라자’는 국내 생산으로 대응이 가능하고, LG화학은 미국 항암제 회사를 인수해 직접 타격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또한 “한미약품의 경우 기술수출 중심 구조여서 관세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대규모 위탁개발생산(CDMO) 물량을 보유한 만큼 실제 조치가 내려질 경우 피해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빅파마보다는 오히려 중소 제약사들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이현우 상무는 “미국 제약사 상당수가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굴복해 현지 공장 설립을 발표했지만, 글로벌 빅파마는 대체로 직접적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다”며 “결국 관세가 현실화되면 한국을 포함한 중소 제약사들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아직 구체적인 적용 범위나 특허 브랜드 의약품의 범주가 명확히 공개되지 않은 만큼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며 “다만 현실화될 경우 우리 기업에도 직접적인 충격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관세 부담 구조와 관련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이 상무는 “형식상으로는 수입업자가 관세를 부담하지만, 실제로는 수출업자와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구조”라며 “단기적으로는 기존 계약 조건이 유리할 수 있으나, 1~2년이 지나면 조건이 바뀌어 우리 기업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협회는 정부와 국회에 대한 건의사항도 전달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발언을 이어가고 있지만, 구체적 기준, 범위, 시점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필수의약품, 예컨대 GC녹십자의 면역글로불린 같은 제품은 안정적인 공급망 유지를 위해 관세 대상에서 반드시 제외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셀트리온처럼 현지 완제품 공장을 설립하거나, LG처럼 M&A를 통해 미국 고용 창출에 기여한 기업들의 제품은 관세 면제 검토가 필요하다”며 “정부 차원에서 이러한 사안을 적극적으로 협상해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SK바이오팜 조형래 커뮤니케이션본부장도 “저희 회사는 미국에서 승인받은 약을 직접 판매하고 있으며, 전체 매출의 90% 이상이 미국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따라서 관세 정책 변화가 현실화될 경우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기업”이라고 밝혔다. 조 본부장은 이어 “여러 준비를 하고는 있지만, 정책 불확실성이 너무 커서 우려가 크다”며 “업계 차원에서 대응 방안을 함께 모색하고 정부와의 소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회는 산업계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현장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지원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박주민 보건복지위원장은 “대내외적 위기 속에서 국내 제약바이오산업 역시 위축되지 않도록 신속하고 긴밀하게 국회-정부-산업간의 협력이 필요하다”라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차원에서 정부와의 적극적인 가교 역할을 통해 관세 영향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의 상황과 요구를 치밀하고 꼼꼼하게 정부가 챙길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국민경제에도 타격이 없도록 챙기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