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성분명 처방’ 필요…“환자 안전·의약품 선택권 확보”
김대진 소장 “의약품 품절ㆍ낭비 해소로 의료비 9조 절감 기대” 전문가들 “의약품 선택권 확대 위한 단계적 도입, 점진적 확대” 강조
[의학신문·일간보사=유은제 기자]환자의 안전과 의약품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의료비를 절감하기 위해 한국형 성분명 처방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한 현행 제품명 중심 처방은 품절 의약품 및 사회적 낭비 비용이 발생하고 있어 단계적으로 성분명 처방을 도입해 제약산업 구조 개선 및 국민 건강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대한약사회가 3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성분명 처방 한국형 모델 도입 정책토론회’에서는 이 같은 논의들이 이뤄졌다.
처방전은 성분명 처방과 제품명으로 나뉘는데 우리나라의 처방전은 주로 특정 회사 제품명으로 발급된다. 또 해당 제품이 없을 경우 동일 성분·동일 함량의 제네릭으로 대체 조제가 가능하나 사후 통보 절차와 규제 탓에 실제 대체 조제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현장에서는 환자 안전과 의료비 절감 및 제약산업의 구조개선을 위해서는 품절약부터 단계적으로 성분명 처방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됐다.
의약품정책연구소 김대진 소장<사진>은 “성분명 처방은 환자 안전과 권익 강화, 의료비 절감, 제약산업 구조 개선을 동시에 끌어낼 수 있는 핵심 정책”이라고 밝혔다.
김 소장에 따르면 해외 주요국에서는 성분명 처방이 일반화돼 있어 제네릭 의약품의 점유율은 60~80%로 우리나라(50.8%)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 소장은 주요국에서 성분명 처방이 정착된 이유로 △환자 안전 강화 △제네릭 사용 통한 약품비 절감 △약가 경쟁 유도 통한 제약산업의 투명성 강화 등을 제시했다
그는 “해외에서는 약사가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역할을 제도적으로 부여받고 있다”며 “최저가 약을 기준으로 급여를 적용하고 그 외에 약에 대해서 조제 시 추가 본인 부담금을 책정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와 달리 우리나라는 제약산업의 구조적 한계로 성분명 처방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품명 처방 한계로 △제네릭 품목 수 과다로 관리 비용 및 재정 낭비 △고가의 제네릭 사용 통한 약품비 절감 효과 제한 △제네릭 제품명이 상품명으로 성분 인지 및 소통의 어려움 △저조한 대체조제율로 환자 선택권 제한 등을 주장했다.
김 소장은 “혈압 치료제 ‘암로디핀 베실레이트 5mg’만 해도 동일 성분 제품이 91개에 달한다. 미국·일본이 20~30개 수준임을 고려하면 기형적인 과잉 공급 구조”라며 “그런데도 품절 사태가 잦고, 회수·폐기 비용 등 사회적 낭비가 심각하다. 또 제품명이 성분을 정확히 인지하기 어려우며 이는 DUR을 통해 동일 성분을 중복 처방하는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제품명 처방으로 인한 환자들의 불편도 드러났다. 의약품정책연구소가 성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 1년간 의약품 품절을 경험한 환자는 18.3%(550명)에 달했으며 이 중 37.8%는 대체조제를 받지 못하고 다른 약국에서 조제하거나 병원에 재방문해 처방전을 수정해야 했다.
김 소장은 “제품명 처방이 환자에게 실질적 불편을 주고 있음을 확인했다. 환자 안전과 국민 의료비 절감을 포함해 국민 권익 강화를 위해 성분명 처방 도입이 필요하다. 또 약가와 본인 부담금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책 효과 분석도 공개됐다. 2023년 심평원 청구자료를 기반으로 동일 성분 내에서 최저가 약을 조제했을 경우 5.1조 원이 감소할 것으로 나타났으며 주요 5개 효능군에서 3.7조 원, 전체 성분군으로 확대 시 약 7.9조 원의 연간 절감 효과가 가능하다고 산출됐다.
또 A6 국가 평균 약가를 적용하면 4.6조 원 절감 효과가 나타나, 최저가 기준이 과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의약품비 절감 외 사회적 비용 감소 효과도 제시됐다. 제품명으로 인한 의약품 사용 과오로 나가는 비용이 연간 4585억 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불필요한 위장약 처방으로 9979억 원이 지출됐으며 매년 20억~50억 원 규모의 리베이트가 적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성분명 처방이 도입되면 최대 1조 4614억 원의 사회적 비용 절감 효과가 추정됐다. 약품비 절감액과 합치면 최대 9조 3,614억 원 규모다.
김 소장은 “사회적 요구도와 비용 효율성 측면에서 중요성이 큰 성분군을 우선 적용하는 단계적 도입 후 점진적 확대가 필요하다. 또 환자의 알권리 및 의약품 선택권 보장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며 “약가 인하, 본인부담 차등화, 제네릭 경쟁 촉진 등과 재정 효율화 장치를 병행할 경우 건보료 절감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분명 처방, 단계적 도입 후 확대해야
토론회에서는 환자 안전과 의약품 선택권 보장,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위해 성분명 처방 제도를 한국형 모델로 도입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였다. 성분명 처방에 대한 필요성과 효과에 대해 공감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박성민 부교수는 “제네릭은 단순 복제약이 아니라 오리지널과 동일한 성분, 동일한 함량,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된 약”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성분명 처방이 일반화되면서 제네릭이 신속히 시장에 자리 잡고 약가 경쟁이 촉진됐지만 우리나라는 처방이 제한적으로 환자의 입장에서 성분명 처방은 좋은 제도”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도 성분명처방의 도입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경제정의실천연합회 남은경 사회정책팀장은 “약국 현장은 조제 불편, 환자들은 낭비와 품절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성분명 처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회적 과제”라며 “이제 국민의 선택 권한을 확대하고 성공하기 위한 한국형 모델을 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남은경 팀장은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문제가 없다는 전제 하에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라며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하기 위해 약가 구조 개편과 성분명 처방을 연계해야 하며 시범사업을 통해 적합성을 검증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약제비 구조의 비효율성을 비판하고 비용 절감 및 환자 권익을 동시에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보건의료노조 오선영 정책국장은 “우리나라 의료비에서 약제비 비중이 24%를 차지한다. 이는 제네릭 가격이 높고 품목 수가 지나치게 많은 탓”이라며 “오리지널 대비 제네릭 가격을 대폭 낮추고 품목 수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 “환자 선택권 확대라는 성분명 처방의 장점은 분명하지만, 약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환자 입장에서는 선택이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환자의 부담이 늘어날 수 있으므로 비용 절감과 환자 권익 보장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정교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대한약사회 이광민 부회장은 “성분명 처방은 환자 안전과 약제비 절감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제도다. 대체조제가 가능하다는 규정이 있지만 실제로는 규제와 절차 탓에 활성화되지 않는다”라며 “약사에게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환자의 신뢰를 확보하고 보호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조원준 보건의료 수석전문위원은 과거 마스크 대란, 백신 확보 대란, 그리고 예상치 못한 타이레놀 대란 사례를 언급하며, 당시 일부 의약품의 부족으로 국민들이 불편을 겪은 점을 제도 도입 필요성의 근거로 제시했다.
조 위원은 “당시 감염병 상황에서 제한적 조건 하에 성분명 처방을 허용하는 논의가 있었지만 의료계 반발 등 부담으로 인해 추진되지 못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정책에서는 제도화가 명확히 이뤄져야 한다는 판단이 있었다”며 “필수 의약품 수급 안정, 원료 의약품 확보, 정부의 공적 공급 개입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통해 반복되는 수급 불안 문제 해소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성분명 처방을 반대하는 이들이 제도를 수용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해야 하며 의사ㆍ약사 간의 충분한 논의를 통해 두 직역 모두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약무정책과 강준혁 과장은 “우리나라 인구 대비 약국 수는 높은 편이지만 수급 불안정으로 인해 제때 의약품을 공급받기 어렵다”며 “그런데도 성분명 처방을 반대하는 국민들이 우려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하고 거기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사와 약사 간 갈등으로 비춰질 수 있는 문제도 충분한 논의를 통해 좁혀 나갈 수 있다. 제도 시행 전 단계적 소통과 검토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