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 지연 조기 진단과 체계적 지원 시급…학회, 제도 개선 촉구
소아행동발달증진학회, 18·36개월 영유아 검진 의무화로 조기 발견과 개입 촉구 발달센터 전문성 강화와 지역 거점 구축으로 치료 격차 해소도 당부
[의학신문·일간보사=이재원 기자] 대한소아청소년행동발달증진학회가 발달 지연 아동의 조기 진단과 체계적 지원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을 촉구하며, 진단 전문화, 영유아 건강검진 의무화와 보험 약관 개선 등 실질적 정책 과제를 제시했다.
노지혜 대한소아청소년행동발달증진학회 부회장은 28일 삼정호텔에서 열린 대한소아청소년행동발달증진학회 학술대회에서 아동 발달 지연의 조기 진단과 지원 강화를 위한 학회 제도 개선을 요구를 설명했다.
노 부회장은 “우리 모두 언젠가는 노인이 되지만, 누구나 한때는 어린이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건강한 노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건강한 어린이로 자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를 위해 발달장애 조기 진단과 적극적인 제도적 지원이 필수”라고 덧붙였다.
그는 첫 과제로 18개월·36개월 영유아 건강검진 의무화를 제안했다. 노 부회장은 “언어 발달 지연이나 자폐스펙트럼장애는 18개월과 36개월이 결정적 시기”라며 “독일, 일본처럼 국가 차원의 의무검진 제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18개월은 언어발달 초기로 사회적 상호작용 발달 확인이 가능하다. 36개월은 언어 발달 결정적 시기로, 자폐스펙트럼장애(ASD) 정확한 진단이 가능한 나이다. 이를 통해 발달지역 아동 90% 이상 조기발견이 가능하며, 조기 개입으로 치료효과 극대화 및 사회적 비용 절감이 이뤄질 수 있다.
또한 발달장애 진단권 확대 필요성도 역설했다. 현재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은 소아정신과 전문의에게 제한돼 있지만, 소아신경과·소아청소년과 발달 전문의에게까지 권한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발달장애는 기질적 질환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개입이 훨씬 효과적”이라며 “진단권 확대는 지역 격차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부회장에 따르면, 현재 전국 소아정신과 전문의는 300명 미만으로, 진단 대기기간은 평균 6~12개월이 걸린다. 특히 비수도권 지역은 전문의가 심각하게 부족해 더 지연된다. 이에 노 부회장은 "자폐스펙트럼 진단을 200명의 소아신경과 전문의에게 확대해야 하며, 언어 및 인지 진단은 3000명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에게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진단 가능 전문의는 5배 이상 증가하고, 대기시간도 1~2개월로 단축될 수 있다고 밝혔다. 지역격차도 해소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보험 제도 개선도 주요 과제로 꼽았다. 그는 “발달장애 아동이 실손보험에서 차별을 받는 사례가 많다”며 “정당한 보험 청구가 가로막히지 않도록 차별적 약관과 법령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실손보험 F코드(발달장애 관련 확진 코드), R코드(발달 지연 관련 임시 분류 코드) 논란과 관련된 부분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정 코드 진단시 민간보험 제한 문제가 있고 이에 진단 회피 현상이 발생한다. 조기 개입저해 요소로도 작용하는데, 특히 가족들의 진단 거부 사례가 증가한다. 이에 관련 보험약관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달 관련 코드 차별적 약관을 페지하고, 조기 진단 장려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도록 보험업계와 의료계의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발달센터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개설·운영 자격을 소아정신과, 소아청소년과, 소아재활의학과 등으로 제한할 필요성을 제시했다. 노 부회장은 “일부 무자격 발달센터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며 “전문 인력 중심으로 질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노 부회장은 마지막으로 지역 거점 발달센터 구축을 촉구했다. 그는 “지역에 상관없이 조기 개입과 교육·상담이 가능해야 한다”며 “조기 개입은 사회적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투자”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는 “자폐스펙트럼장애 조기 개입은 생애 치료비를 40% 절감하고, ADHD 조기 치료는 학습 능력을 70% 향상시키며 사회적 비용도 절반으로 줄인다”고 근거를 제시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채종희 대한소아신경학회 회장은 “발달 지연 아동을 조기에 찾아내고 치료해야 우리 사회에서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며 조기 개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특히 “발달 지연 원인의 40~50%가 유전적 배경과 관련돼 있다는 연구 결과가 축적되고 있다”며 “유전자 기반 평가를 통한 원인 규명과 맞춤형 치료 개입이 확대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채 교수는 또 현행 영유아 검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발달 검진을 법제화·의무화하고, 이를 토대로 유전학적 검사, 소아정신과 및 재활의학과로의 연계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채 회장은 “소아청소년과가 전문 역량 진단 권한을 확대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면서도 “하지만 재활과 소아정신과 등 관련 타 과와 갈등이 생기면 확대가 어렵기 때문에 처음부터 협의와 협약, 전략적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학병원에서 중재 치료를 받기 어려운 환자들이 지역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학문적 지원과 협력 체계 구축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채 회장은 “정신과, 재활과, 소아정신과 등과 상호 도움을 주고받는 전략을 마련하면 치료 속도를 높이고, 비전문가의 진료를 제지하거나 치료의 질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ADHD나 자폐 스펙트럼 관련 사례에서 보듯, 특정 영역을 소아정신과가 인정하지 않으면 첫 발부터 어려워질 수 있다”며 협력 전략 마련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김성구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발달위원장은 발달장애 아동이 제때 개입을 받지 못할 경우의 악순환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발달장애 아동은 초등학교 고학년·중학교 시기에 자존감이 급격히 떨어지며 우울증, 불안장애, 학교 거부로 이어진다”며 “ADHD 약물치료나 인지행동치료를 조기에 시행해 기능 저하를 예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미국에서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수련 후 ‘신경발달 펠로우십’을 통해 발달 전문의를 양성한다”며 “한국도 장기적으로 발달분과 제도를 신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김성구 위원장은 전국 약 800개 발달센터 운영 실태를 비판했다. 그는 “40%는 소아청소년과, 10%는 소아정신과·재활의학과가 맡고 있으나, 나머지 40%는 발달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한 곳에서 수익 구조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며 “비급여 코드 남용, 실손보험 청구 확대, 전문의 처방과 무관한 무분별한 치료가 난립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과거에는 발달 치료 자체가 비급여였고, 관심도가 낮았다. 이후 인지행동치료·놀이치료 등 일부 비급여 항목이 급여화되면서 코드가 생성됐다. 김 위원장은 "원래 발달 관련 전문 과만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했으나, 일부 과의 반대로 모든 의사가 처방 가능하게 변경됐다. 이로 인해, 실제 환자를 보지 않고 코드만 사용해 실손보험 청구가 가능하게 되었으며, 전문성이 없는 과에서도 무분별하게 처방이 이루어지는 문제점이 발생했다"고 꼬집었다. 한 위원은 “현재 60% 정도가 사실상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발달 관련 코드 처방을 전문의(소아청소년과, 소아정신과, 재활의학과)로 제한하고, 컨트롤 타워가 되어서 필요한 치료를 종합하고 추적하도록 해야 한다. 그동안에는 그냥 치료사들이 각자 자기들이 알아서 그냥 치료하고 누가 종합해서 컨트롤 타워가 없었던 것”이라며 “이 조치만으로도 60%에 달하는 불필요한 청구를 걸러낼 수 있다”고 제안했다.
김영훈 대한소아청소년행동발달증진학회 회장은 “발달센터 운영에 참여하는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과거 15%에서 40%까지 늘었지만, 정작 교육과 훈련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발달장애 환자를 제대로 진단·치료할 수 있도록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교육과정에 심층적인 발달 교육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또 “발달장애 아동 치료는 단순한 돌봄을 넘어 국가의 장기적 생산성과 직결되는 문제”라며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임상·정책·교육 영역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이민 연구위원은 제도적 근거와 연구 성과를 소개했다. 그는 “2023년 ‘발달장애 조기 개입 서비스 효과성 검토’ 연구를 통해 응용행동분석(ABA) 기반 중재가 충분한 효과성을 입증했다”며 “체계적 문헌고찰과 메타분석 결과, 조기 개입은 발달장애 아동의 기능 향상과 사회적 통합에 실질적으로 기여한다는 에비던스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건강보험 급여 확대 및 코드 신설과 직결될 전망이다. 이 위원은 “효과성 검토가 법적·제도적 근거가 되어 급여화와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NECA는 앞으로도 학계·임상의와 협력해 조기 개입을 제도화하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박양동 대한소아청소년행동발달증진학회 이사장은 이번 토론회의 실질적 목표를 설명했다. 그는 “오늘 논의된 7대 아젠다는 단순 토론으로 끝나지 않고,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을 비롯한 보건복지위원회 의원들에게 공식 의견서로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발달장애 조기 개입은 보험, 교육, 의료, 복지 영역이 얽혀 있는 복합 의제”라며 “현장의 목소리를 종합해 국회 논의로 이어가고, 궁극적으로 법제화와 예산 확충으로 나아가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 "아젠다 공감하지만, 선택과 집중해야"
아동건강기본법안을 발의한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은 “정부를 설득하고 예산을 확보하려면 논제를 좁히고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며 “이번 아동 건강 기본법에 일부 의제를 반영해 차근차근 제도를 쌓아간다면, 발달장애 아동에게 든든한 울타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자신이 발의한 아동 건강 기본법에 대해 “아이들이 성장하고 성인이 되는 과정 전반에 필요한 의료·교육·심리 등 다양한 지원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틀을 마련하려는 것”이라며 “법안이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심사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책 논의 과정에서 “국회가 행정부를 어떻게 움직이게 할 수 있는지, 가장 실효적인 접근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은 18개월·36개월 영유아 건강검진 법제화를 주요 과제로 꼽았다. 그는 “현재 영유아 검진은 지나치게 분절적이고, 진료 현장에서 충분한 상담을 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검진 횟수를 줄이되 발달 선별검사를 강화하고, 모든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표준화된 도구를 활용해 스크리닝을 할 수 있도록 필수 연수 과정을 이수하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조기에 발견된 아동은 인증된 치료기관에 신속히 의뢰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면, 정부도 예산을 절감하고 보호자와 아이 모두 효과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활동했던 이 의원은 본인의 경험을 언급하며 “전문가에게 신속하게 의뢰할 수 있는 체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0여 년간 전문성이 부족한 민간 센터들이 난립하며, 검증되지 않은 자격증과 단편적인 이론으로 잘못된 치료를 제공하는 사례를 많이 봤다”며 발달장애 아동 치료기관 인증제 도입을 적극 지지했다. “많은 아이들에게 최적의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인증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