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콩팥 건강을 위한 KHP 2033 실현, 제도적 뒷받침 시급하다
[의학신문·일간보사] 우리나라 만성콩팥병 환자 수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최근 10여 년간 두 배 이상 증가해 현재 약 46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말기콩팥병 환자도 2010년 5만 8천명에서 2023년 13만 7천명으로 2.3배 급증했다. 미국 신장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말기콩팥병 환자 증가 속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또한, 말기콩팥병 환자 1인당 연간 진료비는 2,800만원으로 단일 상병 중 최고 수준이며, 2033년 건강보험 지출은 현재 2.6조원에서 5조원으로 2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국가 보건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적 상황을 인식한 대한신장학회는 2023년 국민 콩팥 건강 개선을 위한 10개년 비전 '국민콩팥건강개선안 KHP 2033(Kidney Health Plan 2033)'을 선포했다. 이는 콩팥병을 치료하는 차원을 넘어 예방과 관리, 환자중심치료의 질 향상까지 포괄하는 종합적 접근을 담고 있다.
KHP 2033은 세 가지 핵심 목표를 제시한다. ▲만성콩팥병 환자 수 10% 감소(460만 명→414만 명), ▲ 당뇨병으로 인한 말기콩팥병 환자 비율 10% 감소(47%→42.3%), ▲말기콩팥병 환자의 재택치료(복막투석·콩팥이식) 비율 33% 달성이다.
첫 번째 목표인 만성콩팥병 환자 수 감소는 예방과 조기 발견을 통한 질병 진행 억제에 초점을 맞춘다. 두 번째 목표는 말기콩팥병 원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당뇨병 환자에서의 콩팥병 조기진단, 조기치료를 통해 말기콩팥병으로의 발생을 예방하는 것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세 번째 목표인 재택치료(복막투석·콩팥이식) 비율 33% 달성이다. 이는 환자가 자신의 생활 방식과 의학적 상황에 맞는 치료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여 환자 치료 선택권을 보장하고 환자 중심 치료를 하는 데 핵심적 의미가 있다.
말기콩팥병의 가장 이상적인 신대체요법은 '콩팥 이식'이다. 하지만 공여자가 부족해 대다수 환자는 투석을 받는다. 투석을 앞둔 환자에게는 복막투석과 혈액투석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의료진과 환자는 함께 공유의사결정을 통해 두 가지의 선택지 중 더 적합한 유형을 선택할 수 있다.
학교나 직장생활을 하는 환자에게는 재택복막투석이 우선적으로 고려될 수 있다. 대개는 월 1회 병원 방문만으로도 충분해 일상생활 유지가 용이하다. 실제로 재택복막투석 환자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61%로 혈액투석 환자(34%) 대비 2배 높다.
재택복막투석이 오래 유지하기 어렵고 합병증 위험이 높다는 인식이 있지만, 실제로는 혈액투석 대비 초기사망위험도가 낮고 콩팥 이식 후 치료 결과가 더 양호해 환자의 예후를 개선하는 이점이 있다. 대한신장학회 말기콩팥병 코호트 분석에서 재택복막투석은 장기 생존율이 혈액투석과 유의미한 차이가 없고, 초기 심혈관계 부작용 발생률이 더 낮다는 결과가 보고된 바 있으며,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복막투석 환자들은 다른 나라 대비 재택복막투석 유지율이 높고 복막염 관리도 잘 되고 있다.
재택치료 확대는 말기콩팥병 환자의 예후와 삶의 질을 개선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다. KHP 2033 재택복막투석 목표 달성 시 연간 3,000억, 누적 1.1조원의 건강보험재정 절감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재택의료 순편익은 35만원 이상으로 비용대비 효용이 훨씬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국내 현실은 재택복막투석 선택 비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해 세계 최저 수준이다. 2023년 기준 국내 말기콩팥병 신대체요법 분포는 신장이식이 16%, 재택복막투석은 3.8%에 불과해 재택치료 비율이 20% 미만에 머물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투석 환자 중 재택복막투석 환자 비율이 2012년 13.5%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해 2023년 4.5%까지 떨어졌다. 이대로 가면 10년 후에는 재택복막투석이라는 옵션 자체가 사라질 위기다. 재택복막투석을 원하는 환자가 있어도, 재택복막투석이 더 적합한 환자가 있어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결국 환자들은 선택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그 위험 감당 역시 오롯이 환자의 몫이 된다.
재택복막투석이 줄어드는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는 정책적 기반의 부재이다. 학회와 정부의 노력으로 2019년부터 '복막투석 환자 재택관리 시범사업'이 진행됐지만 올해 12월 종료를 앞둔 시점에서 제도화 논의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복막투석 환자 재택관리 시범사업'은 효과를 명확히 검증했다. 93개 의료기관, 8,065명이 참여한 이 사업에서 참여 환자군은 비참여군 대비 사망률, 응급실 방문율, 입원율이 모두 낮았으며, 1인당 연간 직접의료비가 565만원 감소하는 성과를 보였다.
말기콩팥병 환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재택복막투석이라는 소중한 치료 옵션을 지키기 위한 정책적 결단이 필요한 때다. 시범사업을 통해 검증된 효과성과 안전성 결과를 토대로 체계적인 지원정책을 수립하여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환자 치료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