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진료, 신뢰가 무너지면 제도도 무너진다

제도 악용을 막기 위한 기록·감독 강화와 윤리적 책임이 필요하다

2025-09-15     의학신문

[의학신문·일간보사]

노동훈 (편한자리의원 원장/칼럼니스트)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찾아가는 의료’, 즉 방문진료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과 장애인, 만성질환자에게 방문진료는 단순한 편의를 넘어 생명과 직결된다. 그러나 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부정·불법 행위가 늘어나는 현실은 고민해야 할 문제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를 경험한 일본은 방문진료 제도를 발전시켰다. 매일 수많은 의사가 가정으로 찾아가 진료하고, 간호사가 환자를 돌보는 체계가 갖춰져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도의 허점을 노린 행위가 나타났다.

의사가 직접 가지 않고 서류만 작성해 진료한 것처럼 꾸미거나, 환자 관리보다 청구 중심으로 운영되는 기관들이 생긴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방문진료 수가를 낮추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이는 성실히 일하는 의료진에게 타격이 되어 선의의 피해를 낳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간호사가 등록 장애인 가정에 찾아가 “의료원에서 왔다”며 수액을 놓고, 의사가 함께 방문한 것처럼 꾸미는 사례를 본 적이 있다. 전문 간호사가 방문요양센터에 환자를 소개해 주면 무료 수액을 주겠다는 경우도 봤다.

환자와 가족의 불안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는 이런 행위는 제도를 왜곡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문제가 방치된다면 일본과 같은 길을 걸을 가능성이 크다. 한 번 무너진 신뢰는 회복이 어렵고, 제도 자체가 위축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불법·편법 행위는 환자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의료행위는 의사가 직접 환자를 대면해 상태를 확인하고 책임지는 것이 원칙이다. 이를 생략하거나 우회하면 위험 신호를 놓치게 되고, 결국 환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남긴다.

문제를 막기 위해서는 몇 가지 대책이 필요하다.

첫째, 방문진료의 기록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방문 시간과 장소, 진료 내용이 투명하게 남도록 하고 환자와 의료진이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둘째, 방문간호·방문진료의 역할과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의사의 지시와 감독 없이 이뤄지는 의료행위는 허용되지 않아야 한다.

셋째, 양적 성과 중심에서 질 중심의 평가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단순한 건수보다 환자 관리의 충실도와 안전을 지표로 삼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의료인의 양심과 전문성이다. 방문진료는 환자의 집으로 가는 일이다. 그 공간에는 질병만이 아니라 환자의 삶 전체가 들어 있다. 이 신뢰를 악용하는 행위가 반복되면 피해는 결국 환자와 가족, 그리고 제도를 지탱해 온 의료인에게 돌아간다.

방문진료는 우리 사회에서 뿌리를 내려가는 과정에 있다. 제도가 오래 지속되기 위해서는 법과 관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환자를 위한다는 초심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방문진료가 신뢰 속에서 자리 잡는 유일한 길이다.

<노동훈 편한자리의원 원장 /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