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VI, 혁신 치료의 역설…환자 생명권, 낡은 규제·저수가에 '발목'

연평균 45% 성장했지만 ‘유명무실’ 심장통합진료·48만원 저수가 한계 봉착 심혈관중재학회 “제도가 발전 막는 상황…환자 중심 논의, 합리적 보상 시급”

2025-09-15     오인규 기자

[의학신문·일간보사=오인규 기자] 고령화 사회의 필연적 질환인 중증 대동맥판막협착증의 새로운 표준 치료로 자리 잡은 ‘경피적 대동맥판막삽입술(TAVI)’. 지난 2015년 복지부 고시 발효 이후 연평균 45%라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수술적 치료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지만, 정작 임상 현장에서는 10년째 제자리걸음인 낡은 규제와 비현실적인 저수가라는 '이중고'에 갇혀 있다는 날 선 비판이 제기됐다.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최신 치료법이 오히려 병원에는 손해를 야기하는 구조적 모순 속에 필수의료 인력마저 고갈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심혈관중재학회 서존 보험이사는 최근 개최된 초고령사회 심장질환 보장성 확대를 위한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학회 제언을 통해 TAVI 시술이 마주한 왜곡된 제도적 현실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환자 중심의 실질적인 개선책 마련을 강력히 촉구했다.

"응급상황서 만장일치만 강요"…유명무실 심장통합진료

먼저 문제의 핵심은 TAVI 보험급여의 전제 조건인 ‘심장통합진료’에 왜곡에 있다고 바라봤다. 심장내과, 흉부외과 등 다학제 전문가가 모여 치료 방향을 정한다는 취지는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환자의 권리를 배제한 채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존 이사(사진·순천향대부천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정작 치료의 주체인 환자나 보호자는 TAVI와 수술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받고 스스로 치료 방침을 결정할 권리가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며 “전문가들의 결정만을 기다려야 하는 후진적 구조”라고 꼬집었다.

특히 시간을 다투는 응급상황에서조차 참여 전문의 전원의 ‘만장일치’ 동의를 얻어야만 TAVI 시행이 가능한 점은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힌다. 단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치료는 무산된다.

서 이사는 “심장통합진료가 TAVI의 가능 여부만 판단할 뿐, 수술을 포함한 최선의 치료법을 논의하는 장이 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모든 중증 대동맥판막협착증 환자를 대상으로 TAVI와 수술을 동등한 선택지로 놓고 환자 중심으로 토론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술 수가는 48만원…"하면 할수록 손해, 누가 하겠나"

비현실적인 수가는 현장의 의지를 꺾는 또 다른 암초다. 2022년 보험급여가 일부 개선됐지만, 이는 대부분 고가의 치료재료(밸브)에 대한 보상일 뿐 정작 의사의 '시술 행위'에 대한 보상은 48만원에 묶여있다는 것.

이는 유사 행위인 경피적 폐동맥판막삽입술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심평원에서도 TAVI 시술에 드는 시술시간과 업무량은 수술적 접급방법의 각각 72%, 97%에 달한다고 분석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가치는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서 이사는 “심장통합진료에 대한 보상은 전무하고, 시술에 참여하는 여러 전문의와 의료인력을 감안하면 TAVI는 하면 할수록 병원이 손해를 봐야 하는 아이러니한 체계”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현실은 필수의료의 근간 또한 흔들고 있다. 2024년 전국 심장내과 전임의 숫자는 49명에 불과하며, 이중 고난도 중재시술을 전공하려는 인원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게 현장의 관측이다. 그는 “의료진의 헌신에만 기댄 채 비현실적인 형식과 수가를 고수하는 것은 환자와 의사 모두의 권리를 빼앗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발전 가로막는 10년 넘은 규제, 환자의 생명권 위협

결국 TAVI를 둘러싼 모든 문제는 세계적인 의학적 근거와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국내 낡은 규제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학회의 진단이다.

서존 이사는 “TAVI 외에도 고식적 심장수술을 대체할 여러 구조적 심장질환 시술들이 세계적으로 표준 치료법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유독 대한민국에서는 제한이 많아 환자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규제가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10년 넘게 정체되는 것은 환자의 생명권을 위협하는 심각한 과제”라며 “환자를 위한 치료법이 의학적 근거에 맞게 발전할 수 있도록 정부와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고 비현실적인 제도를 과감히 혁신해야 할 때”라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