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을 살리자
뜬금없는 ‘의대 2000명 증원’으로 시작된 의정갈등,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된 응급실의 전문의 이탈, 그리고 응급실 뺑뺑이.
응급실이 위기다.
급한 중중 환자를 최일선에서 진료하는 ‘응급실의 위기’는 ‘환자의 위기’ ‘국민의 위기’를 낳는다.
병원에서 가장 잘 운용돼야 할 응급실이 제 기능을 못하는 이유는 인력 공백이다.
응급환자를 치료할 의사가 없거나 부족하다는 의미다.
왜 그럴까?
1년반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는 의정갈등으로 전공의들이 사직하고 응급 전문의들이 응급실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응급실을 왜 떠날까?
응급실이 너무 힘이 드는데다 소명의식만 갖고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응급 의사들의 소명의식까지 짖누르는 문제는 뭘까?
응급 의사들을 항시 옥죄는 사법리스크다.
응급실은 말 그대로 절박한 상황이 상시 전개되는 장소다.
응급 환자는 대부분 생사의 기로에 처해 있거나 치료가 늦어지면 상태가 매우 악화되는 환자다.
그래서 응급 차량안에서, 응급실 앞에서, 응급실 침대에서, 응급 치료를 받다가, 응급 치료를 받은 후 사망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어쩌면 일상이 된 응급상황을 매일 겪는 의사에게 무조건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일은 그들을 힘빠지게 하고 응급실을 떠나게 하는 근본 원인이다.
잘못된 처치나 치료로 상황이 명백하게 악화된 경우엔 처벌이 불기피하다.
하지만 응급환자 진료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항력적 결과까지 형사적 책임을 묻는 현실이 응급실에서, 중환자실에서 전문의사들을 몰아내고 있는 것이다.
응급 의사들은 단순한 결과만 놓고 처벌하는 규정은 손질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현재 의학을 근거로 해당 진료과정에서 충분한 노력을 다했는지를 기준으로 삼아 처벌기준을 세우는게 맞다.
최선을 다해 진료했다면 면책해 줘야 최선을 다하는 응급진료 풍토가 조성될게 분명하다.
미국의 엠탈라법(法)이 대표적 사례다.
응급환자에게 진료를 보장하는 한편 의사 역시 정당한 진료를 하면 법적 보호를 받는다는 골자다.
응급상황을 관리하는 숙달된 전문 의사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책임을 묻는게 결코 권장할 일이 못된다.
요즘 응급 의사처럼 맘졸이지 않고도 수익을 올리는 의료 과목은 많다.
의료시스템이 의사를 편한 과목으로 내모는 일은 건전한 의료생태계의 보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리스크가 항시 존재하지만 절박한 환자의 상황을 호전시키면서 채워진 소명의식을 자극하는 일이 정부가 할 일이다.
그 첫 걸음이 응급 의사들에 대한 사법적 책임을 줄여주는 일이다.
응급실이 살아야 응급 환자도 살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