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의료기기 유통구조 개선 방안

의료기기 유통 실태조사 ‘공정 유통’ 첫 과제

2025-05-27     의학신문

병원-간납사-공급업체간 거래 실태조사 공표…정부 주기적 유통 실태조사 법적 근거 마련해야

[의학신문·일간보사]

김은경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산업지원부 부장

의료기기산업은 국민 건강을 지키는 데 필수적인 기반 산업이다. 단순히 제조·수입·판매에 그치지 않고, 보건의료 서비스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기술 발전에 따라 정밀하고 고도화된 의료기기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그에 따라 의료기기 유통과 공급 체계도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관리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에 못 미치고 있다.

특히 병원과 간접납품업체(이하 ‘간납사’) 간의 거래구조는 구조적인 불공정성을 안고 있다. 이런 구조는 의료기기 제조사와 수입사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산업 전반의 건전한 발전에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

간납사는 의료기관과 다수의 의료기기 제조·수입업체 사이에서 구매·납품을 대행하는 유통업체다. 병원은 의료기기 구매 및 재고 관리의 효율성을 이유로 간납사에 일괄 구매를 위탁한다. 이로 인해 의료기기 공급업체는 간납사를 통해서만 납품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돼 있다. 국내 의료기기 유통구조 중 간납사를 통해 병원에 공급되는 의료기기는 대부분 ‘치료재료’로서 건강보험 요양급여 시 사용하는 소모성 물품에 해당한다. 

이런 유통구조는 일부 효율성을 제공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병원과 간납사가 공급업체에 부당한 조건을 요구하거나, 불합리한 납품 계약을 체결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의료기기 제조사와 수입사는 다음과 같은 조건 속에서 거래를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물품대금의 지연 지급 △거래 계약서 미작성 △합리적 근거 없는 수수료 부과 △단가 인하 압박 등이다.

더욱이 병원은 특정 간납사에 의료기기 구매 권한을 위임하고 있다. 그리고 해당 간납사는 공급업체에 제한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납품사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유통 흐름을 관리한다. 이처럼 의료기기 공급업체는 실질적인 선택권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불리한 거래 조건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구조적으로 ‘을 중의을’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거래구조에 대해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나 공식 통계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현재의 제도는 의료기기의 안전성과 성능 등 품질 관리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유통의 공정성 확보나 시장질서 유지를 위한 규정은 미흡하다. 병원과 간납사가 어떤 방식으로 거래를 진행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공급업체는 어떻게 배제되거나, 어떤 방식으로 부담이 전가되는지에 대해서는 제도적으로 파악된 바가 거의 없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병원-간납사-공급업체 간 거래 실태를 체계적으로 조사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전국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의료기기 구매 구조와 간납사 거래 현황을 조사해야 한다. 또한, 간납사와 공급업체 간 거래 조건 등도 함께 파악해, 그 결과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유통 구조의 실제 작동방식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공정한 시장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제도 개선의 실증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항목을 포함할 수 있다. △의료기관이 간납사를 통해 구매하는 의료기기의 비중 및 규모(금액) △간납사와 공급업체 간의 계약 조건(수수료, 물품대금 지급 기한, 담보 설정 여부 등) △병원의 간납사 평가·관리 체계 △공급업체의 의견 개진 창구 유무 및 반영 실태 등이다.

이런 조사 결과는 단순한 보고서로 끝나서는 안된다. 의료기기 유통 시장에 참여하는 모두가 유통 질서에 대한 문제 인식을 공유하고, 자율적인 개선을 유도하는 기반이 돼야 한다. 이와 함께 제도적 개선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실태조사를 통해 드러난 문제점을 바탕으로 △간납사의 자격 요건 명확화 △의료기기 구매 및 계약 절차의 표준화 △공급업체 보호를 위한 분쟁조정제도 마련 등이 필요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의료기기 유통관리 전담 기구의 설치나, 공정거래위원회와의 협업체계를 마련해 구조적 개선을 추진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공정하고 투명한 의료기기 유통구조는 건전한 의료기기 생태계를 위한 필수 조건이다. 유통 단계에서 발생하는 불균형은 특정 기업의 손익을 넘어서, 전체 의료서비스의 질과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 정부는 더 이상 시장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의료기기 유통 시장의 실태를 주기적으로 조사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의료기기 공급업체를 보호하는 조치이자, 실태에 근거한 제도 개선을 가능하게 하며, 나아가 산업 전반의 공정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김은경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산업지원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