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의학회 “시장 즉시 진입 의료기기 제도 문제있어”
근거창출연구 의무화 폐지·임시등재 기간 연장·퇴출기전 폐지 원점 검토 촉구
[의학신문·일간보사=오인규 기자] 혁신적 의료기기의 신속한 진입을 목표로 앞서 정부가 트랙 신설을 발표한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만으로 신의료기술의 시장 진입을 보장하는 ‘시장 즉시 진입 의료기기’ 제도와 관련해 학회가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대한영상의학회(회장 정승은)는 지난 17일 가톨릭의과대학 의생명산업연구원 1002호에서 진단보조 인공지능의 적절한 적용에 대한 포럼을 개최하고 관련 제도에 원점 검토를 촉구했다.
이날 대한영상의학회 최준일 정책연구이사(서울성모병원)는 ‘진단보조 인공지능 의료기술의 사용과 보상: 현재의 상황 및 우려’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근거창출연구 의무화 폐지 △임시등재 기간 연장 △퇴출기전 폐지 등을 ‘시장 즉시 진입 의료기기’ 트랙의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먼저 최준일 이사는 “근거창출연구를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변경한 것은 임상적 근거가 아직 부족하지만 잠재성이 있는 기술을 시장에 선진입 시켜 근거를 창출하고자 하는 제도의 취지에 완전히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임시등재 기간을 기존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한 것에 대해서도 최 이사는 “진단보조 인공지능의 특성상 2년이면 충분히 유효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데도 2년을 더 연장하는 것은 유효성 검증보다는 수익 창출에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가장 큰 문제는 안전성 문제가 없다면 퇴출도 안된다는 점”이라며 “일단 근거나 유효성이 부족해도 위해만 없다면 선진입만으로 영원히 급여 혹은 비급여로 남게 되는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 진단보조 인공지능의 경우 기술과 위해의 인과관계 증명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된다”고 강조했다.
전체적으로 매우 기업 친화적인 정책이라는 의견도 제기했다. 최 이사는 “평가유예 기간의 연장은 근거창출 연구의 어려움을 고려한 것이지만, 단기간에 매우 많은 증례 수집이 가능한 진단보조 인공지능 의료기술에서 정말 필요한지 의문스러우며 근거 창출보다 지나치게 의료기관과 기업의 이윤추구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이러한 변화는 실제 기술을 사용하는 의료진과 환자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하며 기술 관점이 아닌 의료관점에서 제도에 관한 고찰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어 대한영상의학회 이충욱 보험이사(서울아산병원)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바람직한 기술 적용 방법’이라는 발표를 통해 AI 소프트웨어 도입 활성화를 위해서는 환자, 사용자, 개발자, 정부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 설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충욱 이사는 “대한영상의학회는 검사비의 약 5% 수준을 적절한 비용으로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 방사선 특수영상 AI 소프트웨어의 보험수가는 검사비의 2.5%~3%로 책정돼 있다”며 “낮은 금액으로 인해 모든 회사가 보험수가 대신 비보험수가를 선택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수술 위해 만들어진 평가유예 제도 대상 확대로 혼란, 일원화 필요”
한편 패널로 참여한 서울아산병원 서준범 교수는 현재 선진입 제도의 최대 문제 중 하나로 혁신의료기술 트랙과 평가 유예제도 트랙이 서로 중복, 상충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서준범 교수는 “혁신의료기술 트랙에서 3년간 비급여로 청구하다가 평가에 떨어질 것 같으면 이 트랙을 버리고 평가 유예로 갈아타서 4년간 비급여를 추가로 받을 수 있다는 의미”라며 “수술이나 시술을 위해 만들어진 평가유예 제도가 진단보조 인공지능으로 대상이 확대되면서 혼란이 가중됐는데 혁신의료기술 트랙으로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서 교수는 “즉시 진입 제도의 경우 아무런 평가없이 비급여로 청구할 수 있게 해주고 평가에 떨어져도 시장에 계속 살아남을 수 있다”며 “퇴출 기전 자체가 없다는 의미로 선진입 제도의 취지는 물론 건강보험 급여 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대한영상의학회 정승은 회장(은평성모병원)은 “현재 의료분야에서 AI를 이용하는 부분은 다양하게 확대되고 있다. 다만 아직은 개발과정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검증과 퇴출이 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즉시 진입 제도의 목적이 잘 달성될 수 있도록 현 제도를 재검토하여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검증은 더 강화하고,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변경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