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개원면허제 도입의 문제점
정부 독단적 개원면허제 도입 중단해야
[의학신문·일간보사]
의사 면허는 철통밥? 왜 그들은 의사를 죽이려 드는가?
정부의 독단적인 의대정원 확대를 발표한지 이제 1년이 되어간다. 국가의료서비스는 국민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의사수급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현재 국가의료서비스의 여러 문제점에는 지역 간 의료서비스 불균형, 그리고, 중증과 응급을 다루는 흔히 말하는 필수의료 분야의 인력부족, 의료전달체계의 붕괴 등이 지적되어 왔다. 하지만, 정작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을 비롯한 어떤 연구에서도 명확한 의사수급 추계를 발표한 자료는 없었고, 근거 없이 현재 의대정원의 60% 이상인 2,000명을 증원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런 사상 초유의 독불장군 정책 추진의 이면에는 국민들에게 의사에 대한 적개심을 일으키게 하고, 이를 통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속셈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리고 정부는 의대정원 증원을 발표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필수의료패키지라는 매우 급조된 정책을 연달아 발표하였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의료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여러 내용들이 장황하게 적혀있는데, 현재 진료현장의 상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비현실적 내용들이 상당히 많았다. 즉, 의료개혁을 하겠다고 발표했는데 현재 의료현장의 문제점 진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대표적으로 개원면허제에 대한 내용이 그러하다.
개원면허제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면허를 국어사전에서 보면 “특정한 일을 할 수 있는 공식적인 자격을 행정기관이 허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나와 있다. 의사면허는 의대교육을 수료하고, 국가공인시험을 통과한 사람에게 실제 진료를 할 수 있는 자격을 준 것이다. 즉, 면허취득으로 배우는 학생에서 실제 진료현장에서 진료하는 의사가 됨을 공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독립 개원을 위해서는 따로 면허를 또 취득하게 하여 의료의 질향상을 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한 것이다. 이는 현재 의사의 90% 이상이 전문의이고, 전공의 수련제도가 명실공히 수련시스템으로 자리 잡아 있는 상황을 무시한 처사이다. 그렇다면 전공의는 어떤 사람들인가? 전공의는 근로자와 피교육자의 이중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데 의사 면허 취득 후 각 전문과 수련과정에서 실제 환자를 진료하면서 도제식 교육을 받아 전문의 자격을 얻기 위해 수련 하는 사람을 말한다. 근로자로서 적지만 진료에 대한 임금을 받고 있으며, 피교육자로서 수련도 함께 하고 있다. 전공의 수련제도로 90% 이상 전문의가 배출되고 있는 현실에서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해 개원면허를 옥상옥으로 두겠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내용이며, 실제 의료의 질 향상의 성과가 미미할 것으로 판단되는 이유이다. 실제 수련과정에서 진료를 하고 있는데, 그럼 개원면허를 따고 수련을 해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왜 개원면허제라는 정책이 갑자기 툭 튀어나왔는가?
그것도 의대정원 확대 정책을 발표하고 나서 말이다. 일단, 개원면허제가 빠른 시일에 도입된다면 사직 전공의의 경우 개원을 바로 할 수 없는 상태로 의업을 하는데 큰 제약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소위 인기과와 비인기과 간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수련 없이 일반의로 피부미용 개원의 경우를 막고, 필수의료 인력부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보려는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이는 저임금 전공의를 수련병원에서 강제로 필수의료 노동력으로서 착취할 수 있는 법적 테두리를 만드는 것으로 생각된다. 2,000명 정도 늘려야 의사들이 지방으로도 내려가고, 필수의료도 하지 않겠냐는 단순한 공무원 사고방식이라면 충분히 예상할 만도 하다.
그런데 어느 분야든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따라가게 되어 있다. 피부미용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그에 대한 안정적 수입이 보장된다면 당연히 많은 의사들이 문을 두드릴 것이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면허 따고 바로 독립개원을 못하게 한다는 생각은 필수의료의 대책이 될 수 없다.
필수의료를 왜 의사들이 안하는가?
국민건강보험 강제지정제가 시행되면서 대한민국의 의료서비스는 평등권의 영역에서 모든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의료서비스를 보장해주고 있다. 더군다나 몇몇 오지 빼고는 의료접근성도 세계최고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의사의 실력은 이미 세계에서 정평이 나있다. 우리나라는 의대교육과정과 전공의 수련과정을 통하여 실력 있는 의사들이 배출되고 있고, 동네 의원에서 대학병원과 동일한 수준의 의료진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나라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국민건강보험이 첫 시행되던 그 시기와는 비교불가로 대한민국은 눈부시게 발전하였고, 국민 소득과 생활수준은 급격히 높아졌다. 물가 역시 엄청 올랐는데, 정작 의료수가는 매우 초라할 뿐이다. 이제는 의사의 사명감만으로는 필수의료의 저수가를 버티기 힘들다는 말이다. 수입 뿐만 아니라 의료사고에 대한 그 위험을 짊어지고, 각종 소송에 시달릴 각오를 하고 누가 필수의료를 하겠는가? 정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결국, 개원면허제는 국민건강의 안전을 위해 의료서비스를 높이겠다는 포장된 명제 아래에 면허의 기능을 제한하고, 인력동원을 강제화하며, 수가를 통제하겠다는 노림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의사의 90%가 전문의인 전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에서, 그리고 1차 의료기관에서 대부분 전문의에게 진료 받을 수 있는 국가에서, 진료의 질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정부 스스로 의대교육과 수련시스템이 문제 있음을 자인한 것 아닌가?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그동안 잘못된 정책을 운영해 온 정부가 국민들에게 먼저 사죄해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정치는 왜 의료를 멍들게 했나?
필수의료라고 명명한 그 분야에 대한 명확한 범위와 정의도 내리지 못하는 정부가 포퓰리즘 정책으로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는 것이 현재 의료계를 대하는 정부와 정치권의 행태라고 필자는 단언한다. 의대증원, 개원면허제, 혼합진료 금지 등 엮여서 나오는 정책들 하나하나가 너무 서툴고, 급진적이며, 독단적이다. 그리고 현재 정부는 국민을 볼모로 의사를 “매우 돈을 잘 버는 기득권 세력”으로 규정하여 집단 린치를 가하고 있다. 마치 의사들이 국민건강에는 관심 없고, 밥그릇 지키기에만 몰두하는 것처럼 이미지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타 직군 발전을 위한 투자는 부족하고, 정치인 자녀들은 의대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 대한의사협회가 참여하라고 요구하나 정작 그들 누구하나도 대한의사협회를 대한민국의료시스템의 대표성을 가진 단체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위원회 구성 역시 전문가적 배려는 전혀 없다. 특위에 참석하여 정부 주도정책에 대한 들러리로 만드는 것이 속셈인데, 처절히 버려질 것이 뻔한데, 누가 참여를 하겠는가?
결국 해답은 무엇인가?
물론 필자가 어떠한 해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작점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를 풀어가는 시작점을 다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신뢰의 문제가 가장 크다. 의사들도 정부를 믿지 않고, 정부도 의사들을 믿지 않는 형국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현실적 정책을 만들기 위한 전문성이다. 전문성을 존중해주는 신뢰가 지금 필요하다. 의료 현장의 실제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의료계가 제시하고, 이를 행정적, 재정적으로 풀어내는 것은 공무원이 하면 되는 것이다. 즉, 대한민국 의료가 제대로 살아나기 위해, 그리고 의료 정책이 실효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사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현장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 시작점을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 하나는 대한의사협회가 의사면허관리의 권한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의사의 대표단체가 회원 면허관리의 권한을 갖는 것이야 말로 그 단체의 대표성이 인정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정부가 면허에 대한 어떠한 권한도 주지 않고, 파트너쉽도 아닌 상하관계의 관치주의적 사고방식으로 대한의사협회를 대하는 것으로는 더 이상 올바른 의료정책을 만들 수 없다. 그리고 의사 단체 스스로 한목소리를 내기 위한 화합이 중요하다. 새롭게 뽑힐 43대 대한의사협회 수장이 짊어져야 할 과제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정치인에게 말한다.
정치인에게 고한다.
더 이상 국민을 볼모로 전문가 집단에 대한 압박을 멈추길 바란다. 의료는 백년지대계이다. 급진적 변화는 그 뿌리를 흔들 수밖에 없다. 의사수급추계위원회를 통해서 의사 수급에 대한 근거를 만들어가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왜 25년도 정원 모집은 멈출 수 없는 것인가?
수험생과 그 가족들에게 피해가는 것은 안되고, 사직한 전공의/휴학한 의대생들은 무참히 버려도 된다는 것인가? 그러면 수험생들이 의대 합격을 해서 들어와 준비도 안된 교육 앞에서 다시 휴학을 한다면 그 책임을 또 그 학생들에게 돌릴 것인가? 현재 전공의 수련 및 학생 교육이 멈춰섰는데 이에 대한 해결의 생각은 없고, 신입생만 받겠다는 것은 무슨 자신감이며, 더 큰 의료공백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정말 손놓고 있을 것인가? 이런 정부와 정치인의 행태가 국민들을 볼모로 러시안 룰렛 돌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미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은 전공의/의대생에게 25년도 의대정원 증원을 취소한다 해도 그들의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그들이 다시 돌아온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 역시 새로운 신입생들이 등록 후 다시 휴학을 할 수도 있다. 단순히 사람을 표와 돈으로 생각하는 정치인에서 벗어나 백년지대계 의료를 생각하길 진심으로 부탁한다. 그리고 첫 시작은 잘못끼운 단추부터 다시 제자리로 놓고 시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