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노인, 더 위기의 미래 세대

2023-10-16     의학신문
송우철
한국보건의료정책연구소 이사
<제주한국병원 흉부외과 과장, 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2022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8 명을 기록했다. 합계 출산율이란 가임기 여성이 평생 낳는 자녀 수를 말하며, 부부 두 명이 평균 0.78명의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OECD 국가 중 합계출산율 1 이하는 우리나라 뿐이다. 이 수치를 접한 미국 교수가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우!” 라며 머리를 움켜쥐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합계출산율 0.78명은 2022년 기록일 뿐, 올해 2 분기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0 명을 기록했다. 서울은 0.53 명으로 전국 최저 기록을 경신했고, 합계출산율이 높았던 세종시도 0.94 명으로 1 명의 벽을 깼다. 0.7 명의 합계출산율이 유지되면 한국인 100명이 35명의 자녀를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 35명은 다시 12명을, 12명은 4명을 낳게 되므로, 3 세대만 거치면 우리나라 청년 세대는 96%가 소멸하게 된다.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반면 사망율은 고령 인구의 증가로 오히려 늘고 있어 학자들은 2100년 경 우리나라 인구는 1950년대로 회귀하여 약 2천만명이 될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1950년대와는 달리 2100년에는 연령별 인구분포가 역 피라미드 형태가 되어 노령 인구는 많고 젊은 세대는 적은 기형적 구조가 된다는 문제가 있다.

한편,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이뤄져 고령화에 대비할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 체 사회가 늙어가 각종 부작용에 허덕일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노인들의 노후 대책이다. 최근 국민연금연구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노인 인구 45%는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어 국가나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답했는데,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평균 공식 은퇴 시기는 62세이나 실제로는 72.3 세가 될 때까지 벌이를 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주요국 중 실질 은퇴 시기는 우리나라가 가장 늦으며 우리나라 노인은 늙어도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극도의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다. 노후 대책의 하나로 간주했던 국민 연금은 사실 적립한 돈을 돌려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연금을 받을 시기에 근로자들이 낸 연금 보험료를 나누어 받는 것과 같아 고령 인구가 늘수록, 일하는 청년이 줄수록 받을 수 있는 연금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덜 받고 더 늦게 받는 구조로 연금 개혁을 해야 미래 세대도 연금을 받을 수 있는데, 정치권은 미래 세대 보다는 현재의 유권자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개혁을 미룬 체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 이 경우, 미래 세대는 노인들에게 연금을 주기 위해 급여의 1/3을 연금으로 지불해야 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연금 뿐 아니라 의료비도 문제이다. 고령화가 될수록 각종 암, 심뇌혈관 질환 및 만성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크며, 노인 의료비 지출 비용이 대폭 늘어나게 된다. 반면 노인은 건강보험료를 아예 내지 않거나 적게 낼 가능성이 큰데 이는 결국 청장년들이 노인 의료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뇌경색, 치매 등이 늘어나면 건강보험이 커버해 주지 않는 간병비도 부담해야 하므로 미래 세대들의 부담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이처럼 고령화, 저출산의 인구구조 변화 속에서 지금의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이 과연 담보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오래전부터 전체 건보 재정 중 1/3 이상을 65세 이상 노인 사용하고 있는데, 고령화에 의해 노인 의료비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고령화 속도보다 노인의료비 증가속도가 훨씬 더 가파르다는 문제도 있다. 그러니 건보 재정의 절반 이상을 65세 이상이 사용할 날이 멀지 않았다. 모두가 이 점을 주목하며 경고를 보내고 있지만 당국은 이를 외면한 체 미봉책만 내놓고 있다.

왜일까?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의 기본 방향 즉, 저부담, 저보장, 저수가 원칙이 뼈 속에 각인되어 철옹성처럼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의 모체인 의료보험은 1977년 처음 도입되었을 때, 한국의 1인당 GDP는 겨우 1천불을 넘겼다. 당장 한 푼이 아쉬운 개도국 국민들에게 질병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 월급의 일정부분을 보험료로 내라고 하는 건 저항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보험 대상자를 넓혀 가기 위해 저부담, 저보장, 저수가 원칙이라는 토대 위에 의료보험 제도를 쌓아 올렸다. , 보험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보험료를 매우 낮게 책정하였고, 그러다 보니 보장율도 낮추고 보험 수가도 관행 수가를 후려쳐 싸게 책정했다. 이 원칙은 세월이 가면서 소득 수준, 건강에 대한 기대 수준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고도화되었다. 보험 가입을 유도하고 제도에 순응시킨다는 기조는 의료 접근성 강화라는 의료보험 제도의 절대불변의 원칙으로 고정되었다. 그 이면에는 국가가 국민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사회주의적 이념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2020년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료기관 이용횟수는 연간 14.7회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은 횟수를 기록했다. OECD 평균은 5.9회로 우리나라 이용횟수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저부담 원칙은 아예 법에 못 박아 보험료율을 월급이나 소득의 8% 까지만 부과한다고 규정 (건보법 제 73) 하였는데, 의료비 급증으로 이미 8% 규정을 폐지하거나 부과 폭을 더 늘려야 한다는 필요성이 나오고 있다. 저 수가 원칙은 상대가치점수 총점의 원칙, 건보공단 재정운영위원회의 무대뽀 밴딩 결정 (건보 측의 협상자에게 수가 협상 전 인상분 총액을 알려주고 그 범위 안에서 협상하도록 하는 것) 등으로 틀어막고 있다. 재정위의 밴딩은 수가협상의 실효성을 무력화하는 것이며, 건정심과 함께 각종 문제를 야기하는 건보제도의 암적 요인이 되었다. 이 세 원칙 중 오로지 저보장 원칙만 정치적 득실을 따져 보장성 강화란 이름으로 보장율을 조정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저수가 원칙하의 보장성 강화는 생색은 정부나 정치인이 내고, 부담은 의료계에게 떠 넘기는 것이다. 결국, 지금 나타나는 외과계의 몰락, 의대 교수들의 이탈, 소아과 오픈 런, 필수과목 기피 현상 등은 모두 시대에 맞지 않은 제도가 만든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의 건보 제도로는 극도의 고령화, 저출산 상황에서 결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이제껏 정부는 마치 정부가 건보 제도나 의료급여를 통해 부모가 자식을 돌보듯 국민의 건강을 책임져줄 것처럼 행세했다. 그러나, 국민 각자의 건강은 스스로 지키고 챙겨야 한다. 스스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인식이 국민들에게 뿌리깊게 각인되어야 한다. 그것이 의료제도와 의보제도의 첫번째 단추여야 한다.

지금의 건보 제도는 개혁이 아니라 허물고 새로 만들어야 한다. 국민소득 1천불 시대에 만들어진 건보 제도로는 미래 의료를 지탱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이미 늦었지만, 지금 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의 노인도, 미래 세대도 건강과 안전이 보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