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확대가 답이 될 수 없는 이유

2023-07-17     의학신문
송우철
한국보건의료정책연구소 이사
<제주 한국병원 흉부외과 과장, 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의대정원을 늘리거나, 신설 의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산발적이었는데 이게 정부 차원에서 공론화되기 시작한 건 지난 2015년이다. 당시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자료를 인용, 2030년경에는 의료수요 대비 의사 공급 부족이 심화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OECD 자료 등을 근거로 인구 대비 의사 수가 적어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의대정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어져 한 해 400명 씩 10년간 4천명을 더 배출하겠다고 했으나 의료계의 반발과 코로나 19 유행으로 잠정 보류된 바 있었다. 이번 정부에서도 변함이 없다.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고로 불거진 필수의료 부족 문제와 소아환자 진료 기피 현상, 일부 응급실의 환자 수용 불가로 인한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사망 사고등으로 언론이 의사 부족 사태를 과도하게 부풀려 여론전을 펼친 결과 결국 정부는 2025년부터 현행 의대정원을 3058명에서 3570명으로 512명의 정원을 더 늘리겠다고 구체안을 내놓고 있다.

의대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측이 가장 흔히 사용하는 근거는 OECD 인구 대비 낮은 의사 수라고 할 수 있다. 실제 OECD 국가 인구 1천명당 평균 의사 수는 3.7명인데 비해 우리나라의 평균 의사 수는 2.5명로 적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의사의 적정 수를 단지 인구 대비 비율로 평가할 수는 없다. 적정 의사 수는 지리적 특성, 의료 접근성, 건강 지표, 미래의 의사 수 등을 모두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의사 수가 모자르다라는 의미는 이 때문에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있어 국민 건강이 악화되고 있다는 가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실이 그런가?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외래 진료 횟수는 연간 14.7회로 OECD 평균 5.9 보다 월등히 많다. 한 마디로 의료접근성이 어느 나라보다 뛰어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의료 지표만 봐도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수명은 83.5년으로 OECD 국가 평균 80.5년을 상회하고 곧 전세계 최고 장수국가가 될 전망이며, 우리나라 회피가능사망률(Avoidable mortality)은 인구 10만명 당 147.0명으로 OECD 평균 215.2명에 비해 현저히 낮다. 회피가능사망률은 질병의 예방 활동을 통해 막을 수 있는 사망(예방가능사망)과 시의적절한 치료서비스의 제공으로 막을 수 있는 사망(치료가능사망)에 따른 사망률을 의미하며 낮을수록 더 많이 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만성폐쇄성 폐질환과 울혈성 심부전증, 고혈압 환자의 10만명 당 입원환자 수나 심근경색, 뇌졸중 사망률도 OECD 평균에 비해 월등히 낮다. 이런 모든 지표들이 뚜렷하게 우월한데 이게 의사가 모자라다면 가능한 일일까? 그런데, 단순히 인구 대비 의사 수 만으로 의사가 적다고 하는 건 전혀 설득력이 없다.

, 일각에서는 의사가 도시에만 집중할 뿐 농어촌 지역에는 없으므로 의사를 늘려 농어촌에도 의사가 배치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우리나라는 인구 다수가 도시에 밀집해 살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5시간이면 갈 수 있을 정도로 국토가 좁고 도로와 교통망이 좋아 전국 어디든 넉넉잡아 한 두시간이면 종합 병원에 닿을 수 있다. 게다가 OECD 통계 중 도농간 의사 분포 차이 역시 인구 천명당 0.6 명으로 일본 다음으로 적다. 이는 도시와 도시 아닌 지역 간의 의사 분포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의사가 적어 국민들의 의료 이용이 낙후되었거나, 의료접근성이 떨어지거나, 국민 건강이 나빠지고 있는 게 아니란 것이다.

반면 의대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의사가 여전히 적고, 소아 환자가 갈 곳이 없고, 응급실 뺑뺑이 사망이 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정녕 의사가 모자라 생기는 문제이고, 의대정원을 늘린다고 해결될까? 일부는 노골적으로 의대정원을 대폭 확대해 의사 수가 늘어나면 어쩔 수 없이필수의료를 하려는 의사도 늘고, 소아 진료에도 문제가 없고, 응급실 뺑뺑이 사망 사고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 덤으로 의사들의 고소득도 국민 눈높이에 맞게 낮아질 것이며, 잘 하면 내 자식도 의대에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 얼마나 폭력적인 주장인가?

응급실 뺑뺑이 문제는 단지 의사가 모자라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응급실 의사가 수용 불가를 외치는 건 여러 이유가 있는데, 지금처럼 자연스러워 진 건 코로나 판데믹 이후라는 점과 법과 제도,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만 짚고 넘어가자. 이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하면 지면이 넘치기 때문이다.

일명 필수의료로 통칭되는, 생명을 직접 다루는 위험도 높은 과의 의사 지원율이 줄어드는 건 수련이 상대적으로 고되고 업무량은 많은 한편, 어렵게 전문의를 취득해도 전공을 살릴 취업 자리가 부족하고 남들보다 더 고생하는 만큼의 보상이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수의료 문제 등은 의사를 늘려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의료인력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하여 해결할 문제이다. 의사가 모자란 게 아니라, 의사가 일할 일자리가 모자란 것이고, 그 의사를 채용할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군인이나 경찰, 소방관이 늘 전쟁이 터지는 것도, 사건 사고나 화재가 생기는 게 아니어도 예비 인력을 두는 것처럼 의사도 당장 수술할 환자가 없어도 대기하고 예비할 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건보 보상 체계에는 이것에 대한 배려가 없다. 현행 의료 수가와 상대가치 점수에 대기 인원에 대한 인력비용이 산정되어 있나? 전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오로지 사명감과 생명을 다룬다는 포부와 긍지로 자신의 인생을 걸고 밤낮없이 일했던 의사들이 많았지만, 작금의 의료 현실은 이를 기대할 수 없다. 포부와 긍지는 커녕 만년 적자 과라는 눈치와 교도소 담장을 걸어가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매일 2명의 의사가 기소되고 더 많은 의사들이 의료 소송에 허덕이는 판국에 당신이라면 사명감에만 매달려 필수의료과를 할까? 게다가 세상이 바꾸었다. 8,90 년대 의사들에게 강요했던 열정 페이나 가스라이팅을 지금의 젊은 의사들에게도 똑같이 기대하는 건 무리이다. 이를테면, 모든 직종 중에서 가장 애국심, 사명감이 높았던 사관학교 출신 장교나, 열정 하나로 똘똘 뭉쳐 청춘을 국가가 바친 부사관들이 과거에는 아무리 낮은 급여와 열악한 생활 환경, 처우라 할지라도 애국심과 사명감으로 참고 견뎠지만, 지금은 초급 장교들과 부사관들이 앞다투어 퇴직하려고 한다. 이제는 군인도 애국심, 사명감 만으로 가스라이팅하며 봉사와 헌신을 강요할 수 없는 세상이다. 경찰도 공무원도 마찬가지이고 의사도 예외가 아니다.

하물며, 40년 넘게 의사들을 족쇄로 묶어 종 부리듯 해놓고 그래도 맘에 안 든다고 정원을 늘려 종놈을 더 늘리겠다고 한다. 의사들도 할 만큼 했다. 의사 뿐 아니라, 간호사와 병원 직원들을 갈아 넣어 이 열악한 환경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사회가 그들을 격려하긴 커녕 정치권이 앞장서 의료 종사자들을 갈라치기 하며 싸움을 붙이고, 의사 수를 더 늘려 더 납작 엎드리게 하겠다고 한다.

의대정원 확대는 정답이 아닌 데도 해야겠다면 해라. 다만, 늘어나는 의료비 부담을 각오해야 한다. 의료정책에는 뢰머의 법칙 (Roemer's law)’ 이라는 것이 있다. UCLA 공중보건 대학의 교수인 뢰머(Milton Roemer)2001년 병상이 늘면 의료 이용 수도 덩달아 늘어난다는 상관관계를 밝힌 바 있다. 그 뿐 아니라 2015년 영국의 보건부장관 Enoch Powell 또한 환자 수는 그들이 누울 수 있는 병상수에 비례해 늘어난다고 주장하며 이는 파킨슨 법칙이라고 불렀다. 한 마디로 병상이 늘면 결국 그 병상은 차게 되고, 병상이 찬다는 건 의료비가 그만큼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병상이 늘면 의사도 늘어야 하고, 국민 총의료비도 늘고,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도 늘 수 밖에 없다. 의사 수가 늘어도 마찬가지이다. 면허를 가진 의사는 어떻게든 자기 밥벌이를 하게 되어 있다. 머지않아 수도권에 6600 병상이 늘어날 전망이다. 그 병상을 돌릴 의사, 특히 전공의가 부족해 의대정원을 늘리려는 건 아닐까 하는 강력한 의문이 있다.

어쨌든 의료의 효율적 이용, 의사의 효율적 배치를 무시한 체 무조건 의사를 늘리고 병상을 늘리면 해결될 것이라는 건 대단한 착각이고, 그 착각을 넘어 국민총의료비 증가의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의사 인건비를 깎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것 또한 망상이다. 그런 망상이 젊고 능력 있는 의사들을 대학에서 비급여 개원의로 몰아내는 원흉이다. 그러면서 필수의료 의사가 모자란다고 불평한다. 이 얼마나 대단한 모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