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의료
한국보건의료정책연구소 이사
<제주한국병원 흉부외과 과장, 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최근 몇 년전부터 K팝으로 통칭한 대중 음악은 물론 드라마, 영화, 웹툽 등 문화 영역은 물론 음식, 방위산업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각종 분야가 세계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의료이다. 대한민국 의료는 치료 성적이 우수하며, 의료접근성이 뛰어나고 거기에 가격도 저렴하다는 것이 세계인들의 일반적인 평이다. 즉, 의료 효율성이 좋아 세계인의 이목을 끄는데, 세상에 가격이 싸면서 품질마저 월등히 좋은 게 있다면 그건 사기(Fraud)거나 사기는 아니더라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야 옳다. 이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의료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발상
대한민국에는 ‘의료는 공공재’라는 생각을 갖는 사람은 굉장히 많다. 사회주의자나 좌파적 시각을 갖는 이들 뿐 아니라, 주요 언론의 논설위원 등 평소 시장주의 사고 방식을 가졌던 이들도 거침없이 ‘교육이나 국방, 소방처럼 의료도 공공재야 하는 것이 일반적 상식’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의료가 공공재’라는 건 우선 전제가 틀렸다. 의료는 Medical system 을 지칭하는 것이며 여기에는 의료기관, 의료인, 의료서비스, 의료보험 (건강보험과 같은 사회보험 뿐 아니라 민간보험도 포함) 등이 모두 포함되는 것이므로, 이를 구분하지 않은 체 ‘의료시스템이 공공재다, 아니다’ 라고 논박하는 건 어리석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분해 생각해야 한다.
우선 공공재의 정의는 무얼까? 공공재는 사유재의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경제학에서 공공재는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동시에 갖는 재화나 서비스를 말한다. 대표적 공공재는 공중파 방송이나 국방, 일부 도로, 치안, 행정, 소방 서비스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대표적 사유재는 개인이 소유한 부동산 등 자산이다.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약 95% (기관 수 기준)는 개인이나 법인이 소유한 민간 의료기관이다. 이 민간 의료기관은 개인이나 개인이 재산을 출연해 만든 의료법인 등이 설립한 것으로 공공재라 할 수 없다. 의료인은 공무원도 아니며 공공재는 더욱 아니다. 의료서비스는 어떨까? 우리나라에서 의료서비스는 사실상 경합성과 배제성이 모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의료서비스는 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적 이유로 의료 서비스에서 배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의료급여 제도를 채택하여 저소득층을 보호하고 보장성을 강화하여 의료비 부담을 덜도록 하는 등 비배제성을 추구할 따름이다. 그러나 여전히 의료서비스는 제한된 유한의 자원으로 경합성이 있으므로 아무리 비배제성을 추구한들 공공재는 될 수 없으며, 단지 공유재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
보험은 어떨까? 개인이 필요에 따라 가입하는 민간보험은 당연히 공공재가 아니므로 논외로 하고, 사회보험인 건강보험에 대해 생각해 보자. 건강보험은 가입자 즉, 요양급여 대상자에게는 누구에게나 보험의 혜택을 제공하고, 법상 모든 국민은 건강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여야 하므로, 국민 모두는 건강보험대상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요양급여대상자에게만 급여를 제공한다. 요양급여대상자란, 적당한 보험료를 내고, 요양급여 자격을 갖춘 자를 말한다. 따라서, 건강보험은 비배제성을 갖는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경합성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건보 재정은 유한한 재정이지만, 재정이 없거나 모자라다고 국민들에게 요양급여를 제한해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한 바 없으며, 아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보는 공공재가 아니라 전기나 수도, 지하철, 전화와 같이 ‘자연독점재’ 중 하나이며 클럽재(Club goods)라 부른다.
이처럼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 중 공공재는 없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의료는 공공재’라는 주장이 난무할까? 배움이 모자라서 그런 게 아니라 의료도 공공재이길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의료가 공공재여야 진료를 받을 권리가 더욱 강해진다 생각되고, 거만하고 딱딱한 의료인들에게 ‘공공재를 제공하는 자’라는 프레임을 덮어 친절을 강요할 구실이 생긴다고 보는 것이다. 도대체 그 이상한 발상의 원천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공공재일수록 사용이 불편하고 무임승차를 막기 위한 허들이 생기는 법이다. 공공재에 가까운 의료를 제공하는 영국, 캐나다의 NHS 시스템을 보면 알 수 있다. 게다가 친절은 공공재의 의무가 아니라, 좋은 매너를 지닌 자에게 저절로 제공되는 것이다. 상대의 불친절을 탓하지 말고, 상대가 친절하지 않다면, 내 태도부터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계약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그 가격은 누가 정해야 할까? 우리는 재화나 서비스 가격은 공급과 수요에 따라 시장에서 정해지고 변화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꼭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정부는 가스, 전기, 지하철과 버스, 택시 등 공공요금은 물론 휘발유 소비자 가격도 유류세 조정을 통해 조절하는 등 가격 결정에 매우 깊숙이 개입한다. 공공요금 뿐이 아니다. 2021년에는 인앱결제 가격 (수수료율)이 지나치게 높다며 세계 최초로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을 만들어 시행하기도 했다. 정부의 카드 수수료율 인하 유도 역시 민간 분야의 가격 개입과 결정의 대표적 사례이다. 정부는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을 근거로 카드 업계에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요구해, 업계는 최근 2년간 신용결제 부문에서 1천3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정부의 과도한 가격 개입은 의료 역시 마찬가지이다.
의료소비자 측면에서 생각해 보자. 국민은 누구나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하며 의무적으로 매달 보험료를 내야 한다. 그런데 실제 받는 보험 혜택과 무관하게 내야 하는 보험료는 직장가입자의 소득에 따라 무려 395배가 차이 난다.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외국의 경우 많아야 12~24배 차이가 나고 비슷한 사회보험제도를 갖는 나라의 매월 보험료 상한액이 일본 141만원, 독일 95만원, 대만 86만원인 것에 비해 우리나라 직장가입자 보험료 상한액은 월 782만2560원에 이른다. 이렇게 많이 낸다고 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만일 연 1억원 가까운 보험료를 민간보험에 낸다고 상상해 봐라. 자연스레 고소득자들의 불만은 커지고 건보 회피 성향이 늘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이렇게 내야하는 보험료율이나 상한액은 건보법에 따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정하는데, 건정심에는 5천만명에 가까운 가입자를 대표해 가입자 대표 8인이 명목상으로 참여하는 구색을 갖추고 있을 뿐이다. 개인이 의료보험 조건을 따져보고 가입할 수 있고, 유사한 민간보험이 존재한다면 과연 건보를 선택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사실 건보가 단일보험을 존재하는 이유는 다보험체제로 전환할 경우 경쟁력이 뒤떨어져 국민들로부터 배척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일 수도 있다.
공급자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보자. 병의원 등 의료공급자들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받는 댓가에는 가격이 정해 있는데, 이 가격이 (의료)수가이다. 이 수가는 병의원에서 행해지는 진찰, 수술, 검사 등 각종 행위에 미리 정해진 점수 즉, 상대가치점수에 환산지수를 곱해 결정된다. 또, 현행법상 국민건강보험과 의료인 혹은 의료기관 단체는 매년 환산지수 인상률을 계약하고 있다. 그런데, 이 환산지수 계약은 물가 상승률이나 임금 상승률 등 실물 경제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그러니, 건강보험이 생긴 이후 20년이 넘는 현재, 환산지수 인상률의 기울기는 이미 물가 상승률이나 임금 상승률의 기울기와 크게 차이 나고 있다. 그럼 환산지수 인상률 계약 시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인상률 협상을 하는 걸까? 건보공단에는 소위 재정운영위라는 위원회가 있어 여기서 내년도 건보재정 인상분 총액을 미리 결정한다. 인상분 총액이 정해지면 그 총액을 병원, 의원, 약국, 한의원과 치과의원 등이 나누어 가져야 한다. 그래서 수가계약 시즌이 되면 각 의료인, 의료기관 단체들은 좋게 말하면 치열한 각축전, 나쁘면 말하면 개싸움을 벌여야 하며, 턱없이 낮은 인상률에 반발해 계약을 거부하면, 앞서 말한 건정심에서 임의로 인상률을 결정해버린다. 이때는 계약 불발의 책임을 물어 공단이 최종 제시한 인상률보다 낮은 인상률이 제시된다. 세상에 이런 계약 방식이 또 있을까? 내가 하는 서비스의 가격 결정에 나는 참여할 수 없고, 근거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상대가치점수에, 밀실에서 정해지는 총액에 근거해 인상률을 정해 수가가 결정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러니 수가가 턱없이 낮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것만으로는 한국 의료가 저렴한 이유를 다 설명할 수 없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배경과 역사,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가격이 싼 건 알겠는데, 이 낮은 수가에 도대체 왜 치료 성적은 우수한가에 대한 설명은 시작도 하지 못했다. 다만, 그 이유는 세계를 선도하는 다른 영역처럼 높은 교육열, 치열한 경쟁 사회, 근면, 성실, 부지런함 등 한국인 고유의 유전자를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 의료가 싸고 수준 높은 것의 배경에는 많은 의료인들의 희생과 헌신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는 걸 결코 부인할 수 없다. 그러니 감사하란 얘기가 아니다. 희생이 그 배경이라면, 앞으로 그 희생에 기대 효율성 높은 의료를 존속시킬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의료의 수명은 다했고, 이미 그 조짐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