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회 공화국

2023-02-06     의학신문 기자
송우철
한국보건의료정책연구소 이사
<제주한국병원 흉부외과 과장, 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최근 이른바 사회시민단체에 대한 두 가지 사항이 이슈가 되고 있다. 하나는 시민단체에 뿌려진 막대한 세금과 불투명한 운영이며, 다른 하나는 시민단체에 대한 대대적인 국가보안법 위반 수사 착수이다.

지난 해 말, 행안위 정우택 의원은 시민단체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예산이 지난 2012년 약 119억 원에서 2021년 약 1139억 원으로 10년 사이에 10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폭로했다. 이 기간은 박원전 전 서울시장의 재임 기간이었다. 이 기간 동안 시민단체 수는 약 80% 증가하며, 시민단체 황금기를 누린 것으로 전해진다. 오세훈 서울 시장은 서울시 곳간이 시민단체의 ATM (현금인출기)기가 됐다서울시, 시민단체 1조원 지원 정보공개청구 자료 분석발표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서울시 뿐이 아니다. 국회 예결위 서범수 의원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5년간 지방자치단체가 비영리민간단체에 지원한 보조금은 총672,842억원에 달했다고 한다. 이 막대한 예산이 모두 용처에 맞고 투명하게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행안부, 경기도, 안산시가 공동으로 안산시 공동체 회복사업6년간 지원한 110억원 중 일부가 취지와는 상관없는 북한 국무위원장 신년사 학습, 김일성 항일투쟁 세미나, 회원들의 제주도 여행 등에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돼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뿐 아니라 정부의 전수조사 결과 보조금이 사업 목적에 맞지 않게 사용되거나 중복·부정 지급된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이러다보니,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도나 청렴도 여론 조사에서 정부나 대기업보다 낮은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와 같이 조직으로는 비정부조직 (NGO. Nongovernmental Organization)과 비영리조직 (NPO. Nonprofit Organization)을 예를 들 수 있는데, NGO는 정부와 대비되는 조직임을 강조하기 위한 명칭인 반면, NPO는 시장의 수익 추구와 대비하는 조직임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NGONPO의 성격을 갖는 한편, NPO는 대개 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것과 달리 NGO는 자발적 조직으로 공익적 이슈를 다루며 시민의 목소리(요구)를 대변하는 결사체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NGO 중에는 관변단체도 있는데, 관변단체는 그 정의상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NPO인 동시에 주로 국가의 재정 지원을 받아 운영하며 정부의 입장을 옹호하는 단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새마을운동중앙회,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자유총연맹, 노인회, 재향군인회 등을 관변 단체라 부르기도 했다.

한편, 우리나라의 시민사회단체의 시초를 19866월 항쟁으로 보는 이들이 많은데, 당시 야당과 재야 세력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들고 연일 시위를 전개했으나 전두환 대통령이 여야 합의없이 야당의 억지만으로는 개헌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자, 이를 호헌 조치로 받아들인 국민들은 호헌 철폐를 외치며 대규모 시위에 나섰고, 이 시위를 주도하기 위한 시민단체들의 구성 및 결집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나라 시민단체는 역사적으로 보면 민주화와 개혁의 기치를 들고 시작되었고, 민주화 이후에는 노동운동, 빈민운동, 환경운동을 거쳐 현재에 이르러는 여성과 아동, 장애인 등의 인권을 주요 이슈로 삼고 있다.

이렇게 자발적 참여의 결사체였던 시민사회단체가 점진적으로 권력 집단화하기 시작한 건 김대중 (1998~2003), 노무현 대통령(2003~2008)을 거치면서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내세운 건 국민의 정부’, 노무현 대통령이 내세운 건 참여 정부였는데, 이들이 집권한 10년 동안 민주화, 노동, 환경, 인권 등을 내세운 각종 시민단체는 각 지자체는 물론 중앙정부의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각종 민관합동위원회에 위원, 참고인, 전문가의 이름으로 참여하며 정부 주요 정책에 관여하며 이익집단, 권력집단화 하는 것은 물론, 지자체와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새로운 관변단체로 변모하기도 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회시민단체가 있을까? 법정 단체 등 주요 NPO를 제외하더라도, 시민사회위원회에 등록된 시민단체만 15,531 개인데 음성적으로 운영되는 미등록 시민단체를 포함할 경우 2만 개 이상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며 이들 상당 수는 지자체와 정부기관으로부터 재정을 지원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시민사회위원회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29, 시민사회 활성화와 정부 소통 협력 기반을 명분으로 만들어져, 2021년 문재인 정부에서 정부위원을 차관급에서 장관급으로 격상하고 9명으로 늘렸으며, 위원도 40명으로 확대 개편했으나,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이 관련 대통령령을 폐지함으로써 해체되었다.

시민사회위원회 폐지는 당연히 커다란 반발을 불러왔다. 정부가 시민사회위원회 폐지 의견 조회를 관련 부처와 정부기관에 회람하자 경향신문은 윤석열 정부, 시민단체 밥줄 끊나라는 제호의 기사를 내 보냈다. 이 기사는 (시민사회 활성화) 규정 4조에 따라 관계 중앙기관은 물론 지자체도 조례에 따라 시민사화 활성화를 위한 시행계획 (, 예산 지원)을 수립해 시행해야 했는데, 이 규정의 폐지에 따라 정부 지원에 의존해 활동하던 수 많은 시민단체가 재정적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시민사회위원회 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 5년간 69개가 증가하여 모두 622개가 된 중앙부처 민관위원회를 20% 줄이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는 국민과의 소통을 끊자는 것이 아니라, 이름만 있고 예산만 낭비하며 실효성이 없는 위원회를 정리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과거 대통령들은 어땠을까? ‘위원회 공화국을 만든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바통을 이어받은 이명박 정부는 20082월 위원회 정비를 위한 법률 개정안 33건을 국회에 제출하고, 5월에는 530개의 자문위원회를 통폐합하겠다는 내용을 확정, 실시하여 2010431 개 위원회로 줄이는 성과를 냈으며, 임기 말에는 또 다시 우후주숙으로 위원회들이 만들어졌고, 이명박 당시 대통령 측근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40개의 위원회가 늘어났다.

위원회 공화국의 위원회의 문제는 이들에게 지불되는 막대한 국가 예산 뿐이 아니다. 물론, 중앙부처에 설치된 위원회의 위원 약 13,467(중복위원 포함)에게 지급되는 거마비, 회의비, 식비 등 위원회마다 배당되는 예산이 적지 않다. 예로,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의 2021년 회의 예산이 99232만 원이 배정되었으나 보고된 회의는 9번이 전부였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 민관합동위원회가 시군구의 기초단체부터 중앙정부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주요 정책과 결정 사항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위원회는 마치 한 명의 사형수를 세워놓고 여러 명이 총을 쏴 사형하는 것과 같다. 한 사람의 목숨을 끊을 때에는 단 한 발의 총알이면 충분하지만, 여러 명의 사수가 동시에 총을 쏘는 이유는 그 사형수가 누구의 총알에 죽었는지 알지 못하게 하여 총을 쏜 사수가 살인의 죄책감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위원회가 바로 그렇다. 위원회의 참여하는 위원들은 자신이 결정한 (혹은, 자문한) 사항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어떤 결정이 내려진들 그건 위원의 결정이 아니라 위원회의 결정이므로 죄책감도 없다. 그 결정을 내린 위원회의 위원이 시민단체 출신의 비전문가라면 더욱 더 문제인데, 지금 이 위원회 공화국의 위원 상당수는 사실 전문가로 보기 어렵다.

보건복지부도 예외가 아니다. 2021년 건강보험재정 수입 규모는 약 82조원이며, 지출은 약 79조원이다. 이 막대한 보험재정 사항을 결정하는 위원회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건정심)이고, 다른 하나는 재정운영위원회이다. 건정심은 정부가 수립하는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에 대한 심의와 급여 기준, 급여비용, 보험료율 등을 의결한다. 공단에 설치되는 재정운영위는 요양급여 계약 등 보험재정에 대한 사항을 의결한다. 우리는 흔히 해마다 이뤄지는 수가계약이 공단과 각 보건의료단체와 협의 하에 이뤄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공단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일을 할 뿐, 실제 계약액은 재정운영위가 사전에 결정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 전국 병의원과 약국 등 요양기관의 내년도 수가 인상분의 결정권이 재정운영위에 있다는 것이다. 이 재정운영위원은 보험 정책과는 거리가 먼 노조 출신, 전경련이나 경총 등 사용자 단체 대표, 농어촌 대표, 공인중개사협회와 외식업중앙회 등 도시자영업 대표 등과 건강세상네트워크 등 시민단체 등이 포함된다. 이들이 결정해 던져주는 내년도 인상분 총액을 의협, 병협 등 보건의료단체들이 조금이라도 더 받아가려고 매년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 것이다. 이들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인상분 총액을 결정할까?

건정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건정심은 내년도 보험료율 인상분을 결정하고, 8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사회보험의 재정을 결정하는 주요 기구인데 25명의 구성 위원 중 우리나라 의료 정책과 보건 정책에 안목 있는 시각을 갖춘 이는 절반도 되어 보이지 않는다. 특히 가입자 대표 8인은 2020년 기준 직장가입자 3,715만 명, 지역 가입자 1,419만 명의 대표로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구조인데, 이들이 의료와 보험 정책 전문성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 결국 누군가의 의도대로 의결되거나, 누군가의 목소리에 따라 의료계의 손실 보상이 묵살될 가능성도 배제될 수 없으며, 실제 그런 일이 반복되었다. 이 같은 문제는 이미 수 차례 국감에서 지적된 바 있으나 재정운영위나 건정심이 존재하는 한 고쳐질 길은 없어 보인다. 이게 위원회 공화국의 슬픈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