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부족 주장의 허(虛)

2023-01-16     의학신문 기자
송우철
한국보건의료정책연구소 이사
제주한국병원 흉부외과 과장, 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복지부는 올 1월까지 2024학년도 의대 정원 계획을 교육부에 보내야 한다. 그런데 지난 해 말 교육부는 의대 정원 증원을 검토 중이라며, “보건복지부에 2024학년도 입학정원 산정 시 의대 정원 증원의 적극적인 반영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교육부가 내세운 의대 정원 증원의 배경은 의사과학자 양성, 의료서비스 접근성 제고와 지역간 의료격차 해소였다. 주무 부서가 있는데, 왜 교육부가 의료접근성, 의료격차 해소 등 보건정책을 거론하는지 생경하다. 아무튼 교육부가 대학 정원 확정을 앞두고, 복지부에 의대 정원을 늘려달라고 요구한 건 2006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며, 이때문에 십 여년 만에 의대 정원이 늘어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있다.

아마도 지난 해 발생한 뇌동맥류 수술 의사 부재로 인한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고,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일부 대학병원의 소아과 입원진료 중단과 KAIST와 포스텍 등이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의대 신설에 뛰어들겠다고 한 것이 의대 정원 증원 혹은 신설의대 설립에 다시 불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 12월 말 전문과목별 의사인력 수급 추계 연구를 내놓으며, 현재 수준의 의사 공급이 지속될 경우 2035년에는 27천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고, 이 연구 결과가 의사 증원 주장의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이 연구대로 우리나라 의사는 과연 모자란 것일까? 우리가 무엇이 부족하다 혹은 부족하지 않다고 말할 때 대개 주관적 관점으로 바라보곤 한다. 예로,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50%일때 누구는 부족하다며 강박적으로 빨리 충전하길 원하고, 누군 반이나 남았으니 저녁까지는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보사연과 같은 연구기관은 주관적 관점을 배제하고 객관적 결과를 돌출하기 위해 통계적 방법으로 그 결과를 말한다. 그러나, 과학적 통계와 수치로 말한다고 그게 꼭 사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특히 전제가 틀리면 말이다.

의사인력 수급 추계와 같은 예측은 대개 ARIMA (Auto-regressive Integrated Moving Average) 모형의 분석기법을 사용하는데, 보사연도 같은 방법을 썼다. ARIMA 모형은 시계열(time series) 자료를 분석해 상관관계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한 모형으로 미래의 수치를 예측하는 것이다. 시계열 자료란, 시간을 변수로 하여 시간에 따라 순차적으로 관측한 값들의 집합을 말한다. 보사연이 사용한 방법은 과거의 의사 업무량을 분석하여 이를 점수로 계산하고, 과거의 활동 의사수를 파악한 후, 이를 토대로 활동의사 1인당 평균 업무량 점수를 구한 후, 미래 발생할 업무량을 추정하여 1인당 평균 업무량으로 나누어 미래에 필요한 의사 수를 구하고, 실제 그 시점에 활동할 의사와 비교해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과 동일한 업무량을 미래에도 계속할 경우, 늘어나는 의사 수에 비해 업무량이 더 늘 것이므로, 의사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 보사연이 내린 통계적, 과학적 분석의 결론인 셈이다.

ARIMA 분석의 필수 조건은 정상성(Stationary)이다. , 시간의 변화에 따라 평균이나 분산이 변하지 않다는 가정을 깔고 가는 것이다. 왜냐면 정상성이 없는 데이터의 경우, 변수가 너무 많아 패턴이 복잡해지고 분석 모델을 만드는데에 한계가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정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변동성이 크거나 추세가 있는 데이터는 로그변환이나 차분 등을 통해 정상성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의료 수요나 의사 업무량의 정상성을 가정한 통계의 신빙성은 매우 떨어진다. 워낙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ARIMA 분석은 의외성이라는 변수를 예상하지 못한다. 이를테면 인플루엔자나 COVID-19 와 같은 팬데믹을 예측해 의사 수를 늘리거나 줄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다만, 거시적 미래 예측을 할 뿐이다. 게다가 ARIMA 모형은 현재의 평균 업무량을 기초로 미래를 예측하는데, 현재의 의사 업무량이 적정한가에 대한 분석은 없다. 미래 의사의 업무량이 변동할 가능성도 검토되지 않았다. 또한, 의사 업무량을 상대가치점수로 점수화 했다는 자체가 애초부터 틀린 전제이다. 의사 업무량 변동으로 야기되는 현재 의사의 소득과 미래 의사의 소득도 반영하지 않는다. 그러니 의사 공급을 늘렸을 때, 미래 의사들의 일자리가 어떻게 될지, 소득이 어떻게 변화될지에 대한 답도 없다. 그런데 이런 자료로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며 의사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면 어느 의사가 동의할 수 있을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 의사는 부족해질까? 아닐까? 지난 해 여름, 조선일보는 논설위원 컬럼을 통해 의사 수를 늘려야한다고 주장하며 그 이유로 고령화로 인한 수요의 증가와 OECD 통계를 인용해 다른 나라보다 적은 인구수당 의사 수를 들었다. 이 두가지는 의대 정원 확대를 말할 때 늘 나오는 레퍼토리지만, 이 기사에는 좀 더 솔직한 의견도 있었다. , 의사가 과거에 비해 간호사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으며 (10년전 의사 급여 평균은 간호사 급여 평균의 4.2, 지금은 4.86배로 늘었다는 것) 다른 나라 의사보다 많이 벌고 있다는 것이 이 논설위원이 주장한 의사 증원의 필요성이었다.

그 필자는 의사 수를 늘리면 의사와 다른 직종 간 수입 격차도 어느 정도 조정이 이루어질 것이라며, ‘워라밸 시대에 의사들만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고되게 일할 이유가 없다고 고양이 쥐 생각하듯 의사의 격무를 걱정했다. 그러나, 이 컬럼의 백미는 의사들이 보건의료계의 큰형님답게, 의사 증원을 대범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훈수한 것이다. 느닷없이?

어처구니 없어 보인 이 논설위원의 컬럼은 사실 의사를 늘려야한다고 주장하는 다수가 갖는 생각을 대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의사가 부족하다는 주장은 통계나 과학적 미래 예측은 커녕 묻거나 따질 필요 없는 사회적 공리이며, 그 배경은 왠지 나보다 많이 벌어서는 안되는 의사가 많이 벌고 있을 것 같고, 의사만 늘리면 숙변과 같은 우리나라 보건의료 문제가 일거에 해결될 것 같은 질시와 망상이다. OCED 통계를 들먹이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 많은 통계 중 꼭 집어 의사 수 통계만 OCED 평균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국가마다 다른 국토 면적, 인구 밀도, 경제 수준, 문화 등 각종 변수가 있는데, 전세계에서 가장 의료접근성이 좋은 대한민국에서 인구당 의사 수가 적은게 의사를 늘려야 할 이유가 될까?

의사 수를 더 늘려야 국민의료수준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것도 망상이다.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은 일본에 이어 이미 세계 2위이고, 곧 부동의 1위로 올라선다. 보사연이 추정하듯, 현재와 같은 의사업무량을 미래에도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것도 무리이다. 의사 업무량이란 곧 의료소비량을 말하는 것이며, 조선일보 논설위원 등이 상정하듯, 행위별 수가제를 채택한 우리나라에서 고령화로 의료소비가 더 늘어날 경우, 의료비 부담은 감당할 수 없으며 건보는 유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향후 의료 소비는 줄여야 하고, 이를 위한 미래의 의료 소비 통제는 필수불가결하며, 지금과 같은 의료 과소비 거품은 걷어내야 한다. , 정상성을 가정한 ARIMA 모형으로 의사가 모자라다고 하는 건 의사 증원의 이유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의사 증원은 이미 사회적 공리화되어 의사 증원을 반대하는 의사들은 밥그릇 지키기, 기득권 유지로 매도할 뿐이다. 이미 몇몇 나라에서 의사 정원을 늘렸다가 다시 줄이고 있는 사실은 외면한다.

의사 정원을 늘리면 기피과에도 지원이 늘고, 지역별 의료불균형도 한 방에 해결될 것이라는 건 헛된 희망일 뿐이란 사실도 외면한다. 의협의 대응도 무모하고 어리석기는 마찬가지이다. 의사 정원 확대 논란이 나올 때마다 의협이 하는 건 전공의를 동원해 단체 행동을 하는 것이 전부이다. 다른 대안도 전략도 없다. 물론, 2024년 의대 증원은 사실상 쉽지 않다. 그러나 의대 증원 요구는 계속될 것이다.

교육부나 복지부가 할 수 있는 건, 의대 정원을 늘리거나 의대를 증설하는 것 뿐이다. , 의대 입학 정원의 결정권은 정부에 있다. 그러나, 의대는 입학한다고 다 졸업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의대를 나왔다고 다 전문의가 되는 것도 아니다. 의료계는 지금이라도 현행 의사 면허 제도와 진료 면허 이원화를 주장하고, 수련 제도 개편안도 들고 있어야 한다. 의대 정원을 늘리려면 진료 먼허 이원화와 수련 제도 개편 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이것이 아무리 의대 정원을 늘려도 배출 인력을 조절할 수 있는 대응 전략이다.

이미 많은 나라들이 각국 의사협회가 주도하여 이렇게 의사 수급을 조절하거나 심지어 지역 의사회에서 개원 허가도 내주며 공급을 조절하고 있다. 그러려면, 의협, 병협, 의대, 의학회 등 의료계가 의사 인력 수급에 대한 공통적 시각과 합의된 원칙을 가져야 한다. 이 합의를 주도해야 할 단체가 바로 의협이다. 그러나 현실은 의료계 내에서도 생각이 갈리고 이해득실을 따진다는 것이다. 상대는 무작정 의사 인력을 증원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리로 공격하는데, 이쪽은 논리도 원칙도 정책도 부재하다.

의사들이 의사 증원을 반대하는 건, 밥그릇 지키기가 아니라 그것이 산재한 문제 해결의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며, 지금은 의사 인력을 무작정 늘리는 게 아니라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방안이 우선되야 하기 때문이다. 휴대폰 배터리가 50%가 남았으며, 충전하려고 허둥댈 것이 아니라, 휴대폰을 효율적으로 쓸 방법부터 찾아야 한다. 그걸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