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공양과 여론 재판의 대가
한국보건의료정책연구소 이사
<제주한국병원 흉부외과 과장, 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인신공양(人身供養)은 살아있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말한다. 인신공양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어서, 튀르니예 유적 중에는 8천 년 전의 인신공양 흔적이 있다고 한다. 인신공양은 오랜 역사 뿐 아니라 우리나라와 중국은 물론 거의 전세계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는데, 특히 아즈텍 제국의 인신공양이 널리 알려져 있다.
왜, 고대인들은 사람을 제물로 바쳤을까? 가뭄, 기근이나 재난 등으로 집단에 위기가 닥쳤을 때, 혹은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쳐했을 때 동료나 이웃을 제물로 바쳐 절대자로부터 도움을 청하는 간절함의 표현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가축이 아니라 사람을 죽여 제물로 했을까? 이는 그 집단의 지배자가 피지배자에게 내리는 경고로 추측된다. 재난 상황으로 민심이 흉흉할 때 인신공양을 빌미로 생사람을 죽여 제물로 삼는 모습을 보이며, ‘다음은 네 차례가 될 수 있다’고 경고장을 날리는 것 말이다.
인신공양은 고대에만 있었을까? 그렇다고 보기 어렵다. 중세 이후에는 마녀 사냥의 형태로 진화되어 18세기까지 진행되었다. 영국과의 백년전쟁에서 프랑스가 이기고 승리할 수 있게 한 ‘잔 다르크(Jeanne d’Arc)’도 이단 재판 끝에 화형 당했는데, 이는 그녀를 껄끄럽게 여긴 비열한 프랑스 왕 샤를 7세가 잔 다르크 추종자들에게 내린 경고였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을 직접 죽여 제물로 삼는 건 아니지만, 사실 현재도 인신공양 행위는 벌어지고 있다. 재난이 발생하면 여론을 잠재우고 민심을 달래기 위한 제물은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재난 사고가 생기면, 현행법상 처벌 규정이 없어도 죄형법정주의를 무시하고 무조건 형사 처벌부터 시작하는 관례가 그렇다. 오죽하면 ‘떼법’이나 ‘국민정서법’이 형법이나 헌법 위에 있다는 말이 나온다. 재난이나 사고로 사상자가 있는데, 책임자가 형법상 무죄라는 사실은 국민들의 법감정에 어긋나니 여론을 무마시킬 제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법 체계에 어긋나도 일단 기소부터 하고, 인신 구속하며 포토 라인에 세워 망신주고 구치소에 수감시켜 일상을 망치게 한다.
지난 2017년 12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실에 있던 신생아 4명이 거의 동시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희생자가 신생아이고 그것도 4명이나 사망하자 ‘대학병원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고, 경찰은 사망한 신생아들이 모두 시트로박터 프룬디라는 균에 감염되었다고 밝혔다. 이에 이 균에 의한 패혈증을 사인으로 보고, 신생아에게 투여되는 지질영양제를 분주하는 과정에서 시트로박터 프룬디 균에 오염된 것으로 추정하고, 이에 관여한 간호사와 주치의, 전공의, 중환자실장인 조 모 교수 등 입건했다.
이 사건으로 입건된 의료진은 모두 7명이며, 이중 신생아중환자실 실장인 조 모 교수, 전임 실장인 P 교수, 신생아실 수간호사와 경력 6년차 간호사에게는 구속 영장이 발부되어 암 질환으로 항암 치료 중이었던 조 모 교수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은 구속되었다. 1년차 간호사, 전공의 3년차와 1년차에 대해서도 구속 영장이 발부되었으나 당시 서울청이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여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경찰은 역학조사를 실시한 질병관리본부와 국과수의 의견을 들어, 사망한 4명의 신생아의 혈액과 폐기물 통에 있었던 수액 세트에서 시트로박터 프룬디균을 발견해, 집단 사망의 이유가 분주 도중 시트로박터 프룬디균에 오염되었기 때문이라고 보았고 재판 중 검찰도 이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2017년 12월 15일 투여된 스모프리피드가 시트로박터 프룬디 균에 오염된 사실이 합리적 의심 없이 입증되지 않은 이상, 주사제가 시트로균에 오염됐고, 피해자들에게 균에 의한 패혈증이 발생해서 사망에 이르렀다는 공소사실의 인과관계 역시 의심 없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며, 기소된 전체 의료인의 무죄를 주장했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모두 동일한 균에 의한 패혈증으로 동시에 사망했더라도 검사가 주장하는 감염원인 15일자 스모프리피드가 시트로박터 프룬디균에 오염됐고, 그것이 분주 지연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없이 증명되지 않는 이상, 피고인들의 과실 여부와 무관하게 공소사실이 증명됐다고 할 수 없다”면서 검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또, 재판부는 “이 사건 공소 사실은 기본적으로 추론에 근거하고 여러 부분에서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가능성을 배제한 채 불리한 가능성만 채택 조합하고 있다”며 “예기치 못한 불행한 사고가 아닌 예고된 인재로서 업무상과실치사죄가 성립한다고 하기 위해서는 형사재판의 원칙에 따른 엄격한 증거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사망한 신생아들의 사인이 시트로박터 프룬디 균에 의한 패혈증인지 불확실하고, 이것이 분주에 의한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신생아들에게 사용된 수액 세트 등은 기저귀와 함께 버려진 쓰레기 통에서 찾아 검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망 신생아들의 중심정맥관 팁 중에서 단 한명에서만 균이 검출 되었고, 그날 지질영양제를 맞은 피해자 중 한명과 쌍둥이가 생존한 것과 관련해 이들로부터는 군이 검출되지 않아 당일 지질영양제가 오염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검찰은 처음부터 분주가 오염의 원인이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분주나 분주 지연으로 인한 감염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분주는 금지된 것도 아니며, 위법한 행위도 아님을 짚으며, 분주가 오염과 사망의 원인이라면 과거의 분주와 당시의 분주 사이에 무엇이 달라져 오염이 발생했는지 설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고가 발생한지 정확하게 5년만인 지난 12월 15일 대법원 재판부는 "공소사실에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고 무죄로 한 제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한 원심(2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판결해 피고인들은 모두 무죄가 선고되었다.
우리나라 헌법 제 27조 4항은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말하며, 죄형법정주의, 증거재판주의와 함께 형사법의 근간을 이룬다. 따라서 특정되지 않는 과실로 피고인을 몰아가려는 건 여론 재판을 하겠다는 걸로 밖에 볼 수 없다. 이 사건은 다행히 무죄로 종결되었지만, 이에 관련하여 입건되고 구속된 의료인들은 5년이란 긴 시간 동안 송사에 휘말려 고통을 받았다. 이들을 변호한 변호인은 “사건 발생 두 달 만에 결론이 정해진듯한 부실한 정부 역학조사 보고서가 나왔다. 결론을 정해놓고 수사가 진행되었다’고 회고한다.
이 사건의 파장은 매우 크다. 내년도 소아과 전공의 지망률이 급감한 것이 이 사건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당시 기소된 소아과 전공의 중 3년차는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하고도 병원에 출근해 일을 하던 중이었고, 1년차는 중도에 소아과 전공의를 포기한 동료들을 대신해 과로에 시달리며 병원을 지키고 있었다. 결국 이들은 도망가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는 이유로 기소되었다. 검찰이 주장한 바대로 분주가 오염의 원인이었다면 분주와는 전혀 무관한 전공의를 주치의라는 이유로 기소한 것이다. 전현직 신생아 중환자실장들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실장이고 의사라고 해도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주사제를 만들고 주사하는 간호 업무에 개입하기는 쉽지 않다.
98년 대법원은 간호사로 하여금 의료행위에 관여하게 하는 경우에도 그 의료행위는 의사의 책임하에 이루어지는 것이고 간호사는 그 보조자에 불과하므로, 의사는 당해 의료행위가 환자에게 위해가 미칠 위험이 있는 이상 간호사가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충분히 지도·감독을 하여 사고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여야 할 주의의무가 있고, 이를 소홀히 한 채 만연히 간호사를 신뢰하여 간호사에게 당해 의료행위를 일임함으로써 간호사의 과오로 환자에게 위해가 발생하였다면 의사는 그에 대한 과실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판례를 내린 바 있다. 이 때문에 병원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의료 사고는 그것이 비록 간호사의 실수라도 의사가 책임져 왔다.
그러나, 2003년 대법원은 “간호사가 '진료의 보조'를 함에 있어서는 모든 행위 하나하나마다 항상 의사가 현장에 입회하여 일일이 지도·감독하여야 한다고 할 수는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의사가 진료의 보조행위 현장에 입회할 필요 없이 일반적인 지도·감독을 하는 것으로 족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할 것인데, 여기에 해당하는 보조행위인지 여부는 보조행위의 유형에 따라 일률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고 구체적인 경우에 있어서 그 행위의 객관적인 특성상 위험이 따르거나 부작용 혹은 후유증이 있을 수 있는지, 당시의 환자 상태가 어떠한지, 간호사의 자질과 숙련도는 어느 정도인지 등의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개별적으로 결정하여야 한다.”는 판례를 남기며 의사의 입회없이 간호사가 간호실습생에게 주사하도록 지시해 발생한 사망 사고에서 의사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이후 의료 사고 발생시 의사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고 간호사의 과실만 인정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