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가 있어도 총알로 싸워야 하는 ‘유전 재발열 증후군’

효과좋고 복용 편의성 높은 일라리스 급여벽에 막혀 사용못해…환자 삶의 질 떨어뜨려 질병청, 심평원 등 정부기관과 전문가 모인 협의체 필요…희귀질환 치료에 대해 논의 필요

2022-07-27     김상일 기자

[의학신문·일간보사=김상일 기자]"희귀질환인 유전 재발열 증후군 치료 효과도 좋고 환자 편의성을 높인 의약품이 있지만 급여 벽에 막혀 사용하지 못하고 있어 진료현장에서 안타까움이 많습니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정대철 교수(대한소아임상면역학회 회장·사진)는 최근 의학신문·일간보사와 만난 자리에서 유전 재발열 증후군의 경우 일라리스라는 치료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급여로 인해  사용하지 못하고 있어 환자들이 실제로 받는 고통이 매우 크다고 밝혔다.

유전 재발열 증후군은 유전자 이상으로 인해 염증 반응이 끝나지 않아 발열이 조절되지 않는 질환이다.

유전 재발열 증후군의 가장 대표적인 유형은 가족성 지중해 열로 지중해나 중동에서는 발생률이 높지만, 일본 등 아시아권에서는 발생률이 낮아 국내에서 확인된 환자 수는 3~4명 정도이다.

이 외 크리오피린 관련 주기적 증후군(이하 CAPS), 종양괴사인자 수용체 관련 주기적 증후군(이하 TRAPS), 고면역글로불린 D 증후군/메발론산 키나아제 결핍증(이하 HIDS/MKD) 등 다양한 질환이 있으며, 이 중 크리오피린 관련 주기적 증후군 환자는 국내에 약 20명 정도로 추산된다.

정대철 교수는 "일라리스는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는 받은 상태이나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비보험으로만 사용이 가능해 환자들의 부담이 높아 사용에 어려움이 있다"며 "유전 재발열 증후군 국내 환자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보험 적용을 하고 산정 특례가 가능해지더라도 재정에 크게 영향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현재 유전 재발열 증후군에 사용하는 ‘아나킨라’라는 의약품이 있지만 이 의약품은 매일 자가 주사를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특히 소아 환자가 많은 점을 감안하면 환자 부모 입장에서는 다른 치료제를 찾을 수 밖에 없는데 일라리스는 비급여 제품이라 사용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아나킨라는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공급받아야 하는 약물이다. 따라서 매월 환자가 병원을 방문하기 전에 병원 약제과에 의약품 재고를 미리 확인해야만 환자에게 처방이 가능하다.

정대철 교수는 "소아 환자가 많은 유전 재발열 환자에게 매일 자가 주사를 하는 것은 환자는 물론 보호자들에게도 큰 고통"이라며 "의료진 입장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의약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급여벽에 막혀 처방하지 못하는 것은 대포를 두고 총알만 사용해 전투를 하라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정대철 교수는 "일라리스는 염증을 일으키는 사이토카인을 차단하는 약제"라며 "일라리스는 항체이기 때문에 CAPS의 경우 8주, TRAPS, HIDS/MKD, FMF는 4주에 1번만 맞으면 된다. 매일 주사를 맞아야 하는 것과 1~2개월에 한 번 주사를 맞는 것은 환자와 가족 삶의 질 측면에서 차이가 상당히 크다"고 설명했다.

임상 연구에서 일라리스 150mg를 투여한 CAPS 환자의 97%에서 오픈라벨 기간 동안 1회 투여로 8주 이내 완전 관해 달성했으며 이중 맹검, 위약 대조 연구 기간 중 일라리스 150mg을 8주 간격으로 투여한 CAPS 환자군 전원이 6개월 이상 완전 관해를 유지했다.

정대철 교수는 "일라리스는 CAPS, TRAPS, HIDS/MKD, 콜키신 치료가 어려운 FMF 등 유전 재발열 증후군 환자 대상 임상연구를 통해 치료효과와 안전성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정대철 교수는 "그동안 정부는 희귀질환 지정에 대해서만 논의했는데 이제부터는 지정과 함께 치료가 이어져야 한다"며 "과거에 비해 희귀질환 지정이 비교적 잘 되고 있지만 여전히 치료와 관련된 협의체가 없는 부분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대철 교수는 "희귀질환 지정 이후 새로운 치료법이 나왔을 때 질병관리청 희귀질환관리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정부와 전문가 집단이 모여 합의를 이룰 수 있는 협의체나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