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일단 자격정지 처분 보류'…형법 개정 추이 관망·의료관계 규칙 폐기는 '미지수'

지난 11일 헌재가 낙태죄와 관련 합헌불일치 판결을 내린 가운데 헌재 앞에서 의료계, 시민단체, 여성단체, 종교계 등 각 직역에서 찬반입장이 충돌했다.

[의학신문·일간보사=안치영 기자]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린 가운데 낙태 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간주하려던 보건당국의 입장에 제동이 걸렸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자격정지 처분을 형법 개정 전까지 보류하고 형법 개정 추이를 지켜볼 것으로 전망된다.

15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복지부는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중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보고 자격정지 1개월 처분을 내리는 내용을 사실상 형법 제 270조가 개정되기 전까지 집행을 보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형법 제270조 제1항은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로 명시돼있으며, 이 가운데 헌법재판소는 ‘제270조 제1항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이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이로 인해 형법 제270조를 근거로 비도덕적인 진료행위를 하면 자격정지 1개월에 처하도록 하는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또한 집행의 근거를 상실하게 됐다. 지난해 12월 공포된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에는 형법 제270조를 위반해 낙태하게 한 경우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보고 자격정지 1개월을 처분토록 했다.

다만 이 규칙은 공포된 이후에도 실제로 적용되진 않았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등 의료계 곳곳에서 강력히 반발했으며, 인공임신중절이 꼭 필요한 임신부마저 수술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실제 집행은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로 미뤄졌다.

형법 개정만을 기다리는 복지부, ‘시행규칙 폐기는 미지수’

형법 제269조와 제270조의 개정 기한은 오는 2020년 12월이다. 당장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의 형법 제269조는 법무부와 복지부가 협력해 개정하지만, 형법 제270조의 개정은 법무부가 주도적으로 개정을 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연스레 복지부는 2020년 12월 이후부터 움직일 가능성이 커졌다.

복지부 내부에서도 ‘처분 없이 기다리다보면 법무부의 개정 방향에 따라가면 된다’는 분위기다. 복지부 관계자는 “법 개정의 타임라인에 변동이 있을 순 있겠지만, 우리는 일단 개정안을 받아들고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에서 낙태 관련 항목이 완전히 폐기될지는 미지수이다.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를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대상은 ‘임신 제1삼분기(대략 마지막 생리기간의 첫날부터 14주 무렵까지)’이다. 이후에 이뤄지는 낙태에 대해 형법에서 처벌 규정을 존치시킬 수 있다.

이는 2명의 헌법재판관들이 낙태죄를 합헌이라고 판단한 근거,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인하여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어느 정도 제한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 제한의 정도가 자기낙태죄 조항을 통하여 달성하려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중대한 공익에 비하여 결코 크다고 볼 수 없다’는 점과 맥락을 같이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임신 제1삼분기 이후의 태아에게 인격을 부여, 살인죄가 성립된다는 의견도 제시될 수 있다.

결국 복지부와 의료계는 형법을 개정하는 법무부의 움직임을 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관계자들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 생명 존중에 대한 배려나 고민의 깊이를 감안한다면 이마저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이명진 소장(의료윤리연구회 전 회장)은 “국가가 보다 엄격한 낙태기준으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가치가 탑재된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헌법의 판결이 어떻게 나왔던 생명의 가치는 바뀌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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