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속히 법률 개정해야' 환영 VS'생명 경시 풍조 아쉽다' 반발

[의학신문·일간보사=김현기 기자] 헌법재판소(헌재)가 인공임신중절수술로 불리는 ‘낙태죄’의 형사처벌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자 의료계 내부적으로 의견이 분분하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그동안 낙태죄에 대해 많은 문제점을 제기하고 폐지를 외쳐왔던 만큼 환영하는 반면 일부 생명윤리를 중시하는 의사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

게다가 낙태죄 폐지 문제는 의료계뿐만 아니라 여성단체, 시민단체는 물론 종교계까지 입장이 엇갈리는 만큼 지난 1953년 낙태죄 조항 도입 이후 66년 만에 판결이 뒤집혔다는 점에서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1일 헌재가 낙태죄와 관련 합헌불일치 판결을 내린 가운데 헌재 앞에서 의료계, 시민단체, 여성단체, 종교계 등 각 직역에서 찬반입장이 충돌했다.

헌재는 11일 오후 3시 대심판정에서 2017년 산부인과 의사 A씨가 ‘낙태 형사처벌이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낸 헌법소원에 대해 최종적으로 ‘헌법불합치’ 선고를 내렸다.

구체적으로 낙태죄는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을 한다는 점에서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의 유지 및 출산을 강제해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을 위헌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아울러 동일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의사를 처벌하는 조항도 같은 이유에서 위헌이라는 게 헌재의 결정이다.

이에 따라 헌재는 이번 판결에 따라 법적 공백이 없도록 늦어도 국회가 2020년 12월 31일까지 개선입법을 이행하길 촉구했다. 다만 낙태죄에 대해 입법자의 개선입법이 이뤄질 때까지 현행법을 계속 적용을 명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산부인과 중심 '환영'…법개정 전까지 정부 '지침' 기대=산부인과 의사들은 이번 헌재의 판결에 환영의 입장을 밝히며, 정부와 국회가 모자보건법을 조속히 개정해 줄것을 희망했다.

또 복지부가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해 의사가 낙태하게 한 경우 자격정지 1개월에 처하는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 또한 즉각 폐기할 것도 요구했다.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동석 회장은 “정부와 국회는 낙태죄에 대한 헌재의 결정에 따라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 더 이상의 사회적 분열과 혼란을 종식시켜야한다”며 “정부는 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발생할 수 있는 국민들의 불편함과 진료실에서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확한 지침을 제시해 혼란을 막아야한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김 회장은 정부 측에 법 개정 이전까지 낙태 허용과 불가 사유를 명확히 규정해 환자의 진료권을 보장하고, 의사의 개인 신념에 따른 진료거부권도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김 회장은 “낙태죄에 대한 헌재의 결정에 따라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질 법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라며 “의사회는 모자보건법에서 의학적으로 개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적극 의견을 개진해 여성과 태아의 건강권을 지키는데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리전문가들, '낙태, 엄격한 기준설정 필요' 입장=대다수 산부인과 의사들과 달리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의사단체도 존재한다.

지난 11일 헌재 앞에서 낙태죄 폐지 반대를 외치던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이명진 소장(의료윤리연구회 전 회장)은 “이번 헌재의 판단은 생명 존중에 대한 배려나 고민한 흔적이 매우 부족한 것 같다”며 “아무런 힘도 없고 약자인 태아들이 죽음에 내몰리는 상황이 됐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어 그는 “낙태죄를 폐지하는 것은 마치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없는 태아와 같이 병든 노인이나 지체장애인도 죽음으로 내몰 수 있는 나쁜 물꼬를 튼 것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이명진 소장은 오히려 현재 모자보건법을 폐지하고, 더 엄격한 낙태 기준이 설정돼야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 소장은 “이제는 법안 개정이 중요하다고 본다. 국가가 보다 엄격한 낙태기준으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가치가 탑재된 법안을 만들어야한다”라며 “헌법의 판결이 어떻게 나왔던 생명의 가치는 바뀌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낙태죄와 관련 이번 헌재 판결에 대해 전 사회적으로 논란과 진통은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정부가 이들 간의 이견을 얼마나 좁혀나가 법 개정을 이룰 것인지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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