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병원, 원재료와 시험규격까지 요구…업체, '기술유출 우려' 전전긍긍

[의학신문·일간보사=오인규 기자]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 임원인 A씨는 최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제품을 납품하려면 핵심 기술문서를 제출하라는 B의료기관 때문이다.

판매를 위해 코딩하는 과정에서 의료진을 위해 사용법을 안내하고, 환자 안전을 위한 수준을 넘어서 업체에서 기밀에 해당하는 내용까지 요구하다보니 여간 골치가 아픈 것이 아니다.

지난해 이맘때쯤부터 있었던 의료기관의 태도 변화에 ‘을’ 입장에서 참고 감내할 수 없었던 그가 언론에 하소연을 하게 된 이유는 본인의 회사뿐만 아니라 다수의 회사들이 이와 같은 상황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확신을 얻고 나서 부터다.

익명을 요청한 A씨는 본지와 만난 자리에서 “의료기기 용도 설명서에 추가적으로 허가증 세부내용을 요구하고 있다”며 “앞서 멸균보증관련 증명서나 의료기기 회수 관련 서류 등을 포함하는 사례는 있었지만, 무형의 자산에 해당하는 사항들까지 강하게 요구하고 있고 동시에 신규 제품의 등록 및 납품 지연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B의료기관에 실제 제출해야 하는 의료기기 수입 허가증 샘플이다. 모양 및 구조를 비롯해 원재료와 시험규격 등을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해당 의료기관은 환자 안전을 위해 제품이 표방하는 성능 및 규격을 확인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업체는 제품이 표방하는 성능 및 규격, 항목과 기준까지 제출했지만 반드시 시험방법(제조원이 개발한 프로토콜 포함)을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것.

또한 “기술문서를 편집해서 전달하면 통째를 내노라고 하는 상황이다”며 “심지어 식약처에서 허가하는 사항들을 믿을 수 없고 우려되는 문제들에 대해 직접 실험해보겠다고 나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B의료기관에 납품하기 위해 제출하는 문서에는 모양 및 구조, 원재료 리스트, 성능, 사용목적, 시험규격, 주의사항 등에 내용이 담겨있다. 그런데 이중 핵심 기술에 해당하는 원재료 리스트와 시험규격까지 물어보는 사례는 전 세계 통틀어도 전무하다는 것이 A씨의 지적이다.

자칫 담당자가 퇴사해 경쟁사로 들어가는 등 최악으로 기술이 유출될 경우 카피품 들이 다수 나오며 치명적인 상황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더했다.

A씨는 “정부도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어서 인허가 관련 공개 자료에서 제외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지금은 구현방식까지 요청하는 상황인데, 의료기기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금방 만들 수 있다”며 “자칫 어긋날 경우 바로 제품 공급에 필요한 코딩절차에서 제외된다. 불안해서 밤잠을 못 이루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더 나아가 의료기기 개발센터가 부설로 있는 의료기관들을 바라보며 정말 우리의 기술을 원하는 움직임은 아닐까, 합리적 의심(?)도 든다고 덧붙였다.

그는 “안주면 당장 판매가 안 된다는 사실에 다 내주고 있지만, 원재료와 시험규격만은 지켜줬으면 한다”며 “아니면 문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기밀 유지 서약을 맺던지 납득할 수 있을만한 이유를 얘기해줬으면 한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한편 업체들에 따가운 지적을 받은 B의료기관 관계자는 “제품 도입 과정에서 평가할 때 자료를 기본적인 것에서 추가적으로 요청하는 사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위에서 나온 얘기만큼 다 내놔라는 아니었다”며 “맞지 않는 이야기다. 제출하지 않는 회사도 있다”고 일축하며 엇갈린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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