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은 시대 혈압 측정의 미래

신진호
한양대병원 심장내과 교수

[의학신문·일간보사] 혈압계에 있어서 프와쥬히가 처음 도입한 수은은 압력을 정확하고 편리하게 측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현재까지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미 안정적인 저항회로를 이용한 전자식 압력계의 정확성은 수은주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전자식 압력계의 수명은 수은주에 비해서 적겠지만, 압력계의 내구성은 회로의 저항이 부위에 따라 달라져서 bridge 저항의 균형이 깨지지 않은 한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이러한 이유로 청진법의 정확성을 신뢰하는 많은 임상가들의 입장에서는 그 동안 수은주에게 맡겨왔던 압력계의 역할을 이제 Wheatstone bridge 저항회로를 이용하는 전자식 압력계에 넘겨주어도 무방할 것이다.

2017년 미국심장학회 고혈압 지침은 여러 가지 면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혈압측정에 대해서도 상당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왜 SPRINT 연구에서 사용되었던 방식인 진동법 자동혈압계의 사용을 권고하지 않고 청진법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실제 임상 현장에서 발생하는 혈압측정 오류의 실상은 어떠한가? 많은 학자들이나 의사들이 청진법 혈압계의 부정확성에 대해서 언급할 때 청진법의 측정자간 오류를 지적하였다. 그러나 SPRINT 연구에서 알게 된 바와 같이 진료 현장에서 대부분의 혈압측정의 오류는 측정 방식이 아니라 측정의 준비단계에서 발생하며 가장 큰 문제도 혈압측정 준비 단계를 표준화하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다.

■美, 청진법 유지 권고= 이러한 점을 간파한 듯 2017년 미국심장학회 진료지침은 혈압측정 방식에 대해 표준적인 측정방법을 준수할 것을 재차 권고하고 있다. 진동식 혈압계는 편이성 때문에 선호하는 경향이 많은데 이런 마당에 청진법 혈압계로도 지켜지지 않은 준비단계가 지켜질 가능성은 낮다. 실제로 진동법 혈압계를 이용하여도 여전히 표준지침의 준비과정은 지켜지지 않는다는 보고가 있다.

SPRINT연구에서 말하는 진료실 자동혈압의 측정방법에 있는 조용한 독립된 공간에서 5분간 휴식한다는 내용은 표준진료실혈압측정 지침에 명시된 내용이다. 그 동안 워낙 오랜 시간 동안 편리성 때문에 혈압을 대충 측정하다가 측정 방식을 강제로 통제하여 측정해보니 혈압이 너무 낮더라는 이야기에 약간 머쓱해지는 측면이 있다.

표준진료실혈압측정 지침에 명시되지 않은 점으로 의료진이 없는 조건에서 측정한다는 차이가 있지만, 측정 전 준비과정이 임상현장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고 있다. 사실 표준진료실혈압측정 지침을 준수하여 혈압을 측정하면 최소 15-2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지키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형편은 우리나라의 의료현실에서는 준수할 것을 권고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열악한데 미국에서도 지키기가 매우 어렵다는 이야기가 꽤 많이 들리고 있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 같은 혈압측정의 오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결국은 진료실 혈압의 표준측정지침의 준비단계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측정법의 선택은 청진법이든 진동법이든 의사가 상황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진법은 측정이 정확하고 의료진이 직접 측정하기 때문에 환자의 신뢰도가 높고, 진동법 자동혈압계의 오류를 관리하는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하이브리드 혈압계 출시= 이러한 임상현장의 수요를 반영한 것인지는 몰라도 수은주 압력계 대신 전자식 압력계가 장착되어 있을 뿐 기존의 방식과 동일하게 청진기로 혈압을 잴 수 있는 소위 “하이브리드” 타입의 전자식 혈압계가 수은의 퇴출이 임박한 최근 2년 이내에 대거 출시되고 있다.

가정혈압측정법이 더욱 보편화되면서 진동법 자동혈압계의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결국 가장 좋은 예후를 보이는 환자는 진료실 혈압도 조절이 잘되고 가정혈압도 조절이 잘되는 환자들이다. 또한 진료실에서 혈압측정의 준비단계를 잘 준수하지 않으면서 환자가 가정혈압을 측정할 때의 준비단계를 잘 준수하라고 교육하기는 민망한 일이다.

■진료실 혈압 준비단계 지키면…= 현재 의료기관에서 준비단계를 잘 지키지 않는 현실에서 이미 140mmHg 미만으로 혈압을 조절하고 있다면 준비단계를 잘 지키면 혈압이 현재의 혈압보다 너무 낮게 측정되어 고혈압약을 줄여야 할지 고민할 일이 심심치 않게 생길 것이다. 미국의 진료지침이 정확하게 측정된 진료실 혈압으로 혈압을 130mmHg 미만으로 조절하는 것이지만 우리의 현실이 준비단계를 정확하게 지키지 않아 원래보다 높게 측정된 혈압으로 140mmHg 미만으로 조절하고 있으니 이미 모든 환자를 대상으로 130mmHg 미만으로 혈압 조절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은주 퇴출을 맞이하여 혈압측정에 대해 한번쯤 돌아보고 정확하게 혈압을 측정한다면 현재 측정방식에 비해 진료실 혈압의 전체 평균이 얼마나 낮아질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수은주가 사라져도 혈압측정의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을 것이며, 진료지침에 명시되어 있는 표준진료실혈압측정 지침조차 준수할 수 없는 진료현장의 한계점 여전히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여건에서 진료실 혈압의 측정에 있어서 진동법이냐 청진법이냐의 문제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없으며, 최근의 추세는 임상적 필요에 다양한 진료실 밖의 혈압 측정 방법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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