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소아대상 양심실 보조장치 이식술 성공…양쪽 심실 대체 심장수술 분야 큰 전기 마련

[의학신문·일간보사=정윤식 기자] 세브란스병원 의료진이 희귀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남아에 대한 ‘양심실 보조장치(Ventricular assist device)이식술)’에 최근 성공해 화제다.

박영환 교수(사진 맨 왼쪽)가 이식수술 당일 환아 심장과 연결될 심실보조장치의 관을 정리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은 “이번 수술은 국내에서 이뤄진 소아대상, 양쪽 심실을 모두 대체하는 첫 인공심장 이식술로 국내 심장수술 분야에 큰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26일 이 같이 밝혔다.

수술 받은 환아는 2016년 7월생의 만 1세 남아로 출생 후 별다른 문제가 없이 지내다가 생후 3개월경부터 눈에 띄게 배가 불기 시작해 점차 심장에 물이 고이는 심낭삼출증상이 악화되던 가운데 복수까지 차올라 간경변증 및 콩팥 기능 저하 동반으로 지난 8월 세브란스병원으로 응급 후송됐다.

세브란스병원의 정밀진단 결과 ‘특발성 제한 심근병증’으로 진단됐다.

‘특발성 제한 심근병중’은 심장의 수축과 이완을 가능하게하는 심장근육이 점차 약해지고 굳어지는 병으로 점차 혈액순환 저하를 야기해 폐는 물론 정상수준의 혈액을 받지 못한 간과 콩팥이 제 기능을 잃고 종국에는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에 이르는 중증심장질환이다.

현재까지 약물치료로도 조절이 안돼 심장이식만이 유일한 치료법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하지만 심장은 뇌사자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장기이고 환아에게 맞는 크기의 심장을 기증받기 위해서는 기약 없는 장기이식 대기시간을 거쳐야 했기에 세브란스병원 의료진들은 환아 심장기능 보존 및 다양한 합병증 예방을 위한 집중적인 치료와 관찰을 병행했다.

소아용 체외심실보조장치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 10월, 환아가 패혈증으로 위중한 상태에 빠져 세브란스병원 의료진들은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을 맞닥뜨렸다.

주치의인 박영환 심장혈관외과 교수는 “심장기능 저하로 전반적인 신체기능과 면역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또다시 감염질환이 발생할 경우 환아의 생명을 유지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며 “관련 의료진들과의 수차례에 걸친 회의 결과 환아의 심장을 대체할 인공심장이식, 즉 ‘심실보조장치이식술’을 시행하기로 결정했다”고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

실제 세브란스병원이 2000년 국내 최초로 체외형 심실보조장치 이식술에 성공한 이후 성인에 대한 인공심장 이식술 경험을 풍부하게 쌓아온 것은 사실이나 소아에 대한 이식수술은 전혀 새로운 이식술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소아의 경우 가슴크기가 적어 기존 성인에게 사용하는 심실보조장치를 삽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식되는 소아심실보조장치에 대한 운영과 이식술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제껏 국내 심실보조장치이식술은 혈액을 온몸으로 내뿜는 좌심실의 기능을 대체하는 ‘좌심실 보조장치이식술’만 이뤄져 왔으나 이번 수술의 경우 좌우 두 개의 심실을 모두 대체하는 ‘양심실보조장치이식술’로 국내 첫 시행인 상황이었던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식수술을 결정한 세브란스병원은 주치의인 박영환 교수를 중심으로 ‘심장혈관외과 박한기ㆍ신유림 교수, 심장마취통증의학과 심재광ㆍ송종욱ㆍ 소사라 교수, 소아심장과 정세용ㆍ최재영ㆍ정조원 교수’ 등으로 다학제팀을 꾸려 본격적인 수술준비에 착수했다.

신유림 교수는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 등에선 소아 대상의 심실보조장치이식술이 활발한 편이지만 국내에서는 처음이었다”며 “해외문헌과 관련 자료를 모아 소아 심실보조장치이식술에 대한 분석과 실제 적용을 위해 관련 간호사들까지 소위 ‘열공모드’에 들어갔다”고 절박한 당시를 회상했다.

수술은 지난 11월 23일 오전에 실시됐으며 다행스럽게도 한국 최초의 소아대상의 양심실보조장치이식을 지원하기 위해 해당 심실보조장치 제조사인 독일의 의료기기 회사에서도 소속 연구의사를 비롯한 파견팀이 수술실 주변에 대기하며 장비의 원활한 작동과 운영을 적극 지원했다.

환아의 걷기운동을 보조하고 있는 세브란스 의료진

이와 같이 세브란스 의료진들의 철저한 준비로 수술 한달여를 넘긴 환아는 한 때 성인용량의 이뇨제를 써서 복수와 몸속 노폐물을 배출시켜야 했던 증상이 사라진 한편 숨찬 증세가 없어져 현재 호흡기를 뗀 상태다.

또한 복수증세가 사라짐으로 인해 뱃속의 압박감도 사라져 정상적인 식사를 환아가 스스로 할 수 있게 됐으며 연령대에 맞는 체중을 점차 회복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 세브란스병원의 설명이다.

다만 세브란스병원은 환아가 오랜 기간 병상생활을 한 탓에 걸음걸이를 비롯한 신체기능과 정서적 발달이 늦어진 만큼 이를 위한 별도의 회복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신유림 교수는 “환아에게 취약한 감염질환의 효과적인 통제와 심실보조장치의 안정적인 관리를 위해 부득이하게 일반병실 아닌 중환자실에서 회복과정을 진행 중”이라며 “환아의 침상 옆에 작은 놀이공간을 만들어 전담간호사가 걷기 운동과 놀이치료를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수술 성공에 대해 박영환 교수는 “소아심장이식은 길게는 수년이상의 대기가 필요할 수도 있는 만큼 양심실보조장치 이식을 통해 환아의 전신 건강을 유지시키고 성장기의 정상적인 발달을 이룰 수 있게 해준다”며 “이런 점에서 소아 심부전 환자에게서 매우 유용한 치료법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반면, 위중한 고비를 넘긴 환아와 달리 가족들은 새로운 고비를 맞게 됐다.

심실보조장치에 대한 보험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양심실보조장치 구입과 운영장비 임대비용만 1억 5천여만 원에 달하고 3개월마다 임대료가 3천만 원 씩 추가로 발생할 예정이며 유일한 소득원인 환아의 아버지가 환아 엄마와 교대로 병간호를 위해 휴직을 한 상태라 당장의 수입원이 끊긴 상황인 것.

이에 세브란스병원은 병원자체 환자진료 지원금 및 병원과 연계된 외부 후원기금을 연계시켜 상당 부분의 진료비용을 감액할 예정이나 지속적인 후원단체와 독지가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점을 전했다.

세브란스병원은 “향후 발생할 심장이식 전까지의 진료비용 그리고 심장이식수술과 이후 심장재활을 위한 진료비 부담이 계속 예상된다”며 “의료진의 힘으로 아이의 심장을 한번 살린 셈이니 앞으로는 당당한 사회일원으로서 자랄 수 있도록 주변의 많은 관심과 후원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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