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정 편집주간

일부 수련병원 전공의 폭력사건에 사회적인 지탄이 쏟아지고 있다.

사실 의료기관 폭력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일일이 드러나지 않아 그렇지 수도 없이 많고, 오래 이어져 온 악습이다. 그것도 폭언에서부터 신체적 폭력과 성희롱‧성폭행 등 나열하기 부끄러운 유형이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그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것은 대부분의 병원들이 사건이 불거지면 쉬쉬하며 적당히 무마해 온 조직문화 때문이었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의료기관이 어느 조직보다 폐쇄적이고, 의료인 사회의 독특한 위계관계 때문이다.

그동안 의료사회에서의 위계질서는 세부 전문분야로 들어갈수록 스승이나 선배가 상하의 개념이 아니라 주종(主從) 이라고 할 만큼 엄하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학생이나 전공의, 간호사 등이 배움의 과정에서 간혹 모욕적인 언사나 손찌검을 당해도 훈육으로 치부되어 온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이 어떤 세상인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악습이 잔재해 있다니 개탄스럽다. 특히 아직도 폭력이 횡행한다는 것도 부끄럽지만 여러 유형의 폭력을 당하고도 피해자들이 조직 내에서 약자로서 매달릴 곳이 없는 현실이 더 안타깝다.

다들 인식하겠지만 대부분의 병원들은 신체적 폭력이던 성폭력이던 불미스런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서라도 사건을 덮으려는데 급급하는 경향이다. 결국 피해자가 사건의 전말을 입증해야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우월적 지위에 있는 가해자의 방해나 회유, 협박은 말할 것도 없고, 조직의 분위기도 오로지 높은 사람의 ‘눈치’만 보는 경향이라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피해자들로서는 딱히 호소할 길이 없는 것이다. 자칫 섣불리 대응했다간 모욕을 당하기 십상이고, 보복의 두려움도 크다. 결국 2차 피해를 당하느니 체념한 채 ‘삭이고 지나가는 식’이 사건의 대체적인 경과였던 것 같다. 이런 폐단 때문에 일부라고 하지만 의료기관 폭력의 뿌리가 뽑히지 않고 있다.

혹자들은 일련의 폭력을 가해자들의 인성문제로 치부할지 모르지만 그건 모자라는 생각이다. 조직사회에서, 그것도 위계관계에서 폭력이 야기된다면 문제의 본질이 시스템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료에 의하면 어느 병원을 막론하고 폭력을 제대로 다스릴 수 있는 매뉴얼이나 시스템을 갖춘 곳이 거의 없다. 그러니 조직 내에서 폭력예방을 위한 교육이나 홍보 역시 부실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최고경영자부터 관리자에 이르기 까지 폭력 예방이나 대책 의식이 결여돼 있다고 봐야한다. 어쩌면 폭력에 대해서는 조직이 귀찮아하며 ‘개인의 문제’로 비약시켜 개입하려들지 않는 문화로 고착된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일이다.

마침 이번에는 국정감사라는 공론의 장에서 병원폭력이 크게 불거져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뒤이어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서둘러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이 정도의 대책으로 의료기관 내 폭력이 근절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요즘 병원들은 초일류를 지향하며 환자서비스와 경영혁신을 위해서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동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조직 내 암적 존재인 폭력은 왜 못 다스릴까. 일견 직무유기이고, 도덕적‧법률적 책임의 일탈이란 생각이 든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이번 기회에 의료계 내부적으로 각종 폭력을 자정할 수 있는 표준화 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단위 병원별로 폭력을 예방하고 적절히 조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될 일이다. 나아가 교육과 홍보를 통해 모든 의료종사자들이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문화를 구축하는 계기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의료기관 폭력을 ‘인권’이라는 단어로 거창하게 접근하지 않더라도 생명을 다루는 병원이라는 조직에서 막말이나 쏟아내고 폭력을 일삼으며,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죄악으로 여기지 못하는 의료인이 있다면, 과연 이들이 환자를 성심으로 보살필 수 있을까. 특히나 폭력을 당하는 피해자는 또 무슨 기분으로 환자를 돌보겠는가.

각 의료기관과 의료단체는 최적의 ‘환자 돌봄 문화’의 진작이라는 대명제에서 폭력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근절대책을 세워나갔으면 한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