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정 편집주간

박능후 복지부 장관이 지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대해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했다. 청문회에서 여러 얘기들이 나왔지만 특별히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눈길이 쏠린 것은 이 문제가 의료계의 현안 중 현안 일 뿐더러 그 본질이 국민건강과 밀접한 오랜 숙제이기 때문이다.

당시 박 장관은 “국민건강을 확보한다는 관점에서 협의한다면 굳이 대책을 못 찾을 이유가 없다”고 했고, “가능한 한 빨리 양측이 상호 ‘윈-윈’하는 해결책을 찾겠다.”고 말했다.

사실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문제’는 의료계와 한의계가 수년째 사활을 걸고 대립해 온 현안이다. 그동안 양측의 일방은 한의학의 현대화라는 명분으로 ‘사용 당위성’을 주장해 왔고, 다른 한쪽은 ‘한의학의 학문적 배경과 철학이 무엇이냐’며 ‘어림도 없다’는 입장이다.

표면적으로 양쪽 모두 ‘국민건강’을 내세우며 각자의 논리를 고수하고 있지만 타협이나 절충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 틈에서 국민들은 혼란스러워 하고, 정치권 일부에서는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듯 정부와 이해 단체에 해법을 찾으라고 압박하며 법률안 개정 불사 의지도 흘려왔다.

그럼에도 워낙 첨예한 문제라 누구도 공론화에 나서기를 주저하는 터였는데 새 정부의 주무 장관이 정치권의 관심에 ‘해결 의지’를 드러냈다.

매우 난해한 문제지만 이번 기회에 ‘의-한 갈등’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그 ‘계기’가 의사와 한의사로 이원화 된 의료체제를 뜯어고쳐 ‘의료일원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본질적인 해법이 나왔으면 한다.

‘현대의료기기 사용’ 문제를 두고 ‘의료일원화’를 들먹이는 것이 좀 뜬금없어 보이지만 솔직히 문제의 본질이 의료이원화 구조에서 불거졌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따라서 그 같은 본질적, 구조적 문제를 덮어 둔 채 타협으로 적당히 나누고 다독여 해결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며, 그렇게는 실현가능성도 없다는 견지에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서 이번에는 ‘의-한’간 노정되고 있는 ‘현대의료기기 사용’ 논쟁을 초월하여 보건의료발전과 국민건강증진에 걸림돌이 되는 적폐(積弊)를 청산한다는 차원에서 의료일원화가 공론화 되었으면 하는 기대가 크다.

그동안 의사와 한의사 등 전문가 집단은 ‘국민건강증진’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나 지금 유지되고 있는 이원화 된 의료서비스 체계가 과연 국민들에게 이용 편익이 크고, 비용이 절감되며, 더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인지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그것이 확실치 않다면 누가 현대의료기기를 쓰느냐 마느냐 하는 논쟁은 이차적인 문제다.

국민편익도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일렁이고 있다. 의학은 이미 근거중심으로 확립되고 있으며, 의생명과학은 융합을 통해 하루가 다르게 진화와 창조를 거듭하고 있다. 이런 변혁의 시대, 한의학도 당연히 현대화, 과학화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건강증진과 보건의료부문에서 비합리와 비효율을 제거하고, 의료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단초로서 ‘의료일원화’ 논의를 시작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방법은 나중의 일이다. 우선 뜻이나 모았으면 한다.

문재인 정부는 최근 국정운영 100대 과제를 발표했다. 그리고 과제의 제1호를 ‘적폐청산’으로 삼았다. 보건의료분야에서도 ‘의료이원화’ 체제를 ‘적폐 1호’로 꼽아 국가의료의 백년대계와 의료의 글로벌스탠다드를 갖추기 위한 해법을 찾는 과제로 삼아야 할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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