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료 현실화-보장성 80% 도달까지 현행제도 지지

'무리한 기금화 정책 건보제도 근간 훼손' 우려

건강보험재정을 국민연금 등 다른 사회보험처럼 기금화하는 문제를 놓고 관련 기관들간 논란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건보공단이 당장 재정이 기금화될 경우 제도 운영의 근간이 훼손될 것으로 판단,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 주목된다.

건보기금화는 건보 보장성이 선진국 수준(70∼80%)에 걸맞는 보험료 부담 수준에 다다를 때까지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현행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건보재정 규모의 변수(보험료·국고지원금·수가·의료신기술·신약·고령화사회 등) 중 정부 통제가 가능한 변수는 국고지원금 뿐이며, 만일 정부의 재정범위에 포괄해 관리하더라도 의료비 증가 억제를 담보할 수 없고, 되레 국고지원 규모만 늘어날 것이란 입장.

30일 건보공단의 '재정기금화 단행시 예상되는 문제점'에 따르면 건보재정이 기금화될 경우 △보장성 확대 차질 △재정운용 과정에서의 민주성 침해 △건보재정 운용에 대한 정치적 입김 작용 △국회 통제로 인한 전문성 결여 △국고축소 등으로 인한 보험료 인상 불가피 등 각종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보험료·수가·급여범위 결정은 국가의 책임성보다는 전문가·가입자·공급자·보험자 등 당사자간 자율적 결정이 바람직하며, 정부의 통제가 강해지면 국고지원 등 정부의 부담률을 높이라는 국민의 요구가 증대해 재정부담이 증가될 것으로 예상했다.

또 수가(의료행위의 가격) 결정이 정부 주도로 이뤄질 경우 의료공급자의 반발로 제도의 근간(수가계약제, 요양기관지정제)이 흔들리고, 특히 국민연금 등 3개 사회보험과 달리 건강보험은 전국민에게 즉시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국가적 부담이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기획예산처는 지난해 8월 '2004 기금존치평가보고서'를 통해 건보재정 기금화의 정당성을 주장한데 이어 국회 예산정책처도 '2003 결산분석보고서'를 통해 건보재정의 기금화를 주장하며 건보공단에 대한 전방위 압박에 들어갔다.

예산처는 건보재정에 대한 정부 통제를 강화함으로써 건보 조합이 운영함으로써 발생하고 있는 재정운용상의 경직성을 개선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국회는 지역가입자 보험료의 절반을 일반회계예산, 국민건강증진기금 등 국가재정이 지원하는데도 불구, 보험료와 수가 등을 결정하고 있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정부 예산심의권을 갖고 있는 국회가 전혀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며 기금화가 투명성 확보에 가장 바람직한 방안이라는 입장이다.

국회나 예산처의 이러한 주장은 사실상 건보재정 운용에 대한 주도권을 건강보험공단이나 복지부로부터 가져오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건보공단과 복지부는 즉각적인 기금화가 여러 가지 문제를 발생시킬 것이라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파열음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김근태 복지부장관은 지난해 정기국회 복지위 상임위에서 건보기금화 신설여부와 관련, "투명성은 확보된 상태지만 재정의 건전성은 아직 확보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건강보험기금)은 정치적 투쟁을 불러일으키고 더 많은 사회적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입장을 밝힌 바 있다.

◇섣부른 판단 건보제도 운영 근간 훼손= '건강보험 기금화는 정부가 정책책임 뿐만 아니라 건보재정에 대한 담보 역할을 하고 책임을 질 자세가 전제돼야 한다.' '선진국 수준의 보장성을 확보한 후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건보공단은 재정이 기금화될 경우 건보제도 운영 이해당사자간의 참여가 사실상 배제됨으로써 의견수렴 장치가 유명무실화되고, 정부의 기금운용정책 방향과 국민·의약계 요구가 충돌할 때 합의도출에 상당한 시간·비용의 소요와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며 이 같이 주장했다.
보험료 및 수가 인상 등 재정변동요인이 사회적 이슈화됐을 경우 정부의 조정자로서의 입지가 좁아지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정부에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보험료율과 급여범위, 수가인상수준이 포함된 기금운용계획에 대한 국회 심의·의결 과정에서 강력한 이익단체인 시민단체와 노조, 의·약단체 등의 요구가 대립돼 정치쟁점화될 개연성이 높으며, 그 영향은 국가·국민 전체에 미치게 될 것으로 관측했다.

◇건보 보장성 강화가 선(先) 해결과제= 건강보험 보장성이 70∼80% 수준에 걸맞는 보험료 부담 수준에 다다를 때까지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현행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건강보험 급여율은 약 53%에 불과(산재보험은 98.3%)하며 참여정부는 단계적으로 급여를 확대해 오는 2008년까지 70%까지 급여율을 제고한다는 전략이다.
건보재정의 흑자기조를 유지할 때 이 범위 내에서 급여확대 정책이 가능하며, 잉여금 예상액은 보장성 강화를 위한 급여확대 정책에 사용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건보 보장성 강화와 노령화 등 향후 재정수요 확대가 확실한 상태에서 건보재정 규모만을 통제(수입 및 지출 억제)할 경우, 국민의 부담(공보험 외의 분야)이 늘어날 것(풍선효과)으로 예측했다.
따라서 건보기금화가 건보제도 발전에 기여 여부에 관한 학계 및 관련 이익단체의 중장기적 논의와 평가가 필요하며, 건보제도의 유지·발전을 위해 현행 제도가 유지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건보기금화 외국사례…공단, 투명성 제고방안 강구= 논란이 분분한 가운데 분명한 것은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 중 어느 나라도 건강보험 재정운용에 대해 정부가 직접 개입하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기금화를 통해 건강보험재정을 정부가 예산형식으로 운용할 경우 공단측이 주장하는 '부작용'이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나 국회가 기금화를 통해 직접 개입할 경우 오히려 재정운용의 경직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의료수가협상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 정부 예산부처나 국회까지 개입할 경우 그렇지 않아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러 가지 논의가 파행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매년 소득대비 보험료율이 높아지고 있어 건강보험에 대한 국민불만이 높은 상황인 만큼 재정에 대한 심의를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행사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지적도 있어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선을 긋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건보공단은 향후 재정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재정·보건행정분야 합동 연구용역을 추진키로 하고, 지속적으로 투명성 및 통제 제고 방안을 강구해 나갈 예정이다.
현재 건보재정 운영은 정부(복지부, 예산처)와 국회(국정감사, 예·결산보고), 감사원 감사 등을 통해 통제·감독을 받고 있다.
공단은 향후 건보재정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보험료·보험급여범위·수가 결정 관련 통계 및 자료 공개 △이사회 및 각종 위원회 운영상황 공개, 가입자위원회 신설 △국회 정기 보고(예산·결산), 책임경영제 확립 △디지털 예산·회계시스템에 포함하는 등 법·제도적 보완책을 강구할 방침이다.
아울러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에 의한 정부의 사전·사후 평가를 강화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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