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소재은행,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

지난 7월 한국연구재단은 2016년 바이오·의료기술 개발사업 신규과제에 있어 ‘국가목적형 인체유래 고위험군바이러스 소재은행’을 선정했다.

선정된 곳은 중앙대학교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차영주 교수가 2010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바이러스 소재은행이다.

당시 중앙대병원이 선정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차 교수가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구축한 국제적 네트워크와 이를 통해 확보한 희귀 연구소재들에 있었다.

차영주 교수는 본지와 만난 자리에서 선정까지의 과정과 운영 성과, 감염병 관리에서 국가역할의 필요성과 중요성 등에 대해 설명했다.

삼고초려 끝에 ‘국가목적형 소재은행’ 선정

“두 번 지원하고 두 번 모두 떨어져서 포기하려 했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지원했습니다. 메르스 사태 때문이었는지 세 번째 도전 만에 선정될 수 있었습니다.”

▲ 중앙대학교병원 차영주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차영주 교수는 2010년부터 현재까지 고위험군바이러스 소재은행을 운영하면서 B형간염, C형간염, HIV-1, HIV-2, 뎅기열바이러스 등의 혈액과 혈청을 수집해 BT/융합연구 및 제품개발과 임상시험에 도움을 주고 있다.

차 교수는 B형과 C형간염, HIV-1(제1형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혈액은 국내에서 최소한의 수집이 가능했지만 외국에서도 희귀한 HIV-2 양성 혈액 120개를 수집한 것은 국제 네트워크 구축의 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차 교수는 아프리카 중에서도 서아프리카에만 존재하는 HIV-2 수집을 위해 지난 2013년 토고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에이즈연구소와 협약을 맺었다.

이어 뎅기열바이러스 혈청 확보와 진단키트 개발을 위한 베트남 꽝남중앙병원과의 MOU를 체결했으며 최근에는 탄자니아 국립의학연구소 박사들을 초청해 ‘지카바이러스 감염 혈액’ 수집활동을 약속했다.

또한 지난 6일에는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에서 라이베리아 보건부 및 국경없는 의사회 관계자들과 업무협약을 맺어 현지 보관 방식으로 에볼라 혈액을 연구에 활용키로 했다.

차 교수는 “이 같은 활동이 국가목적형 인체유래 고위험군바이러스 소재은행으로 선정된 계기 같다”며 “단지 앞서 2번의 신청에서는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였는데 지난해 메르스와 올해 지카바이러스에 의해 정부가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가목적형 소재은행으로 지정되면서 연간 2억 9천만원의 예산을 지원받게 됐다”며 “연구를 위해서는 소재확보가 중요한 만큼 국제 협력 네트워크를 더욱 강화해 기틀을 마련하는데 집중하겠다”고 덧붙였다.

삼고초려의 완성은 ‘국가기관 관리 시스템’ 구축

“영국은 국립생물의약품표준화연구소(NIBSC)에서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습니다. 이는 앞으로 우리도 걸어가야 할 방향입니다.”

차영주 교수는 국내 바이오 기술의 우수함이 진단키트 개발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국가목적형 소재은행이 창출할 경제적 가치와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세계 각국이 감염병 혈액샘플 확보와 연구에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바이오뱅크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중앙대병원의 바이러스 소재은행은 필요한 소재를 직접 조달하거나 제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는 것.

차 교수는 “그동안 업체나 연구자에게 제공한 혈액을 만약 NIBSC에서 구입했다면 5년 기준 12억 가량의 비용이 발생했을 것이고 양 또한 제한적 이었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국가목적형에 걸맞은 경제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실현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한 국제적 네트워크 형성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부가가치 창출 효과도 있었다.

차 교수는 “토고에 의료기기와 의료장비를 기증한 적이 있는데 해당 제품과 관련된 새로운 비즈니스가 토고 및 주변 아프리카 국가에서 형성됐다”며 “토고 의료진과 연구진을 국내로 초청해 교육하는 연수 프로그램도 현지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차 교수는 영국처럼 국가기관에서 소재은행을 직접 관리하는 것이 지속적인 가치 창출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그동안 모아온 희귀 연구소재들이 사장되지 않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국제협력관계가 유지되려면 영국의 NIBSC 같은 국가기관 관리 시스템이 구축돼야 할 것”이라며 "힘들게 국가목적형으로 지정됐고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인만큼 신규소재 수집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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