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성에 공감했고 기대효과에 대한 분석도 충분하며 실(失)보다 득(得)이 많은 것도 예상된다. 문제는 불확실한 미래에서 오는 비전(vision)부재와 정체성(identity)의 혼란에 있다.

현재 31곳 병원을 대상으로 시범사업 중이며 오는 2017년 하반기에 본격 시행이 예정된 ‘호스피탈리스트(입원전담전문의)’ 얘기다.

지난 3월 ‘호스피탈리스트시범사업 운영·평가 협의체’는 최초 시범사업에 참여한 병원 4곳(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충북대병원)의 운영결과를 공개하고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환자들의 만족도’였다고 밝혔다.

즉, 환자들은 의사에게 존중받는 느낌을 받는 것이 가장 좋았다며 설문응답자 중 무려 67%가 추가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병원과 의료인들은 어땠을까.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 중 약 40%가 호스피탈리스트 채용계획을 갖고 있으며 채용의향이 있는 병원도 80%에 가까웠다.

전문의 또한 급여수준과 근무로딩이 해결된다면 외과의 63%, 내과의 72.6%가 근무의향이 있다고 했으며 간호사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이 같은 긍정적인 분위기는 최근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열린 호스피탈리스트 도입의 실효성과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한 세미나에서 그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9월부터 시범 사업을 진행 중인 병원들 대부분이 지원자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세미나에 참석한 의료관계자들은 비전이 명확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는 것도 아닌 호스피탈리스트에 지원자가 없는 것은 이미 예상됐다며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특히 이날 대한전공의협의회 김대하 전 정책이사는 지난달 전국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일부 공개하면서 3~4년차 전공의들이 호스피탈리스트를 꺼려하는 가장 큰 이유로 보수, 제도정착의 의문, 역할이 불분명한 정체성 등을 꼽았다.

이처럼 ‘비전’과 ‘정체성’은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든 미래에 대한 기대와 의욕고취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며 때로는 ‘돈’보다 중요하기도 하다.

편한 직장에서 일을 하는데, 취업이 잘되는 학과에서 공부를 하는데, 잘생기거나 아름다운 연인과 사랑을 하는데, 그것들에 비전은 커녕 정체성조차 결여돼 있다면 결국 그 직장을 그만두게 되고 다른 공부를 하려하며 다른 사랑을 찾게 된다.

하물며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다양한 미래를 구상하는 보건의료인들에게 비전과 정체성은 얼마나 중요할까.

고무적인 것은 정부(보건복지부)가 현재 호스피탈리스트 제도의 문제점을 인식해 본격 도입에 앞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겠다고 밝힌 것과 의료관계자들 누구도 제도 도입을 무조건 반대하고 있는 모양새는 아니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형 호스피탈리스트’가 실패하길 바라는 분위기는 아니다.

제도의 성공열쇠(Key)가 가까운 곳에 있고 열쇠를 집을 도구가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이제 도구 제작에 다함께 몰두할 때이며 제작 과정에서 이해관계에 따른 불협화음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같은 도구를 만들자는 동일한 의지는 변함 없을 듯 하다.

물론, 적정한 수가는 도구 제작의 시발점이 되는 기본이 될 것이다.

필요성에 공감했고 기대효과에 대한 분석도 충분하며 실(失)보다 득(得)이 많은 것도 예상된다. 해결은 확실한 미래를 위한 비전(vision)수립과 정체성(identity)의 확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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