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의료면허범위 붕괴…심각한 사태 초래 지적

치과의사가 미용목적으로 눈가나 미간에 보톡스 시술을 해도 된다는 대법원의 판결에 의료계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이는 미용목적의 보톡스 시술 자체가 국민 건강권이 걸린 사안인데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현행 의료법에 근거한 규범적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지난 21일 눈가, 미간 안면부에 미용목적 보톡스 시술을 행하고, 1심, 2심에서 의료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치과의사에 무죄를 선고하며, 원심 판결을 뒤집었다.

대한의사협회(회장 추무진, 이하 의협)는 “현행 의료법상 의사와 치과의사의 면허 범위가 분명하고, 관련 교육 및 수련의 정도, 전문지식 및 경험의 차이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이 같은 판결을 내린 것은 매우 충격적”이라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의협에 따르면 결국 대법원의 판결취지대로 한다면, 현행 의료법상 의사와 치과의사 그리고 한의사의 면허범위가 무의미해지는 상황이다.

이에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의사면허, 치과의사면허, 한의사면허 등 각종 면허제도의 구분은 모두 사라질 수밖에 없는 심각한 사태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게 의협 측 판단이다.

일부 지역의사회에서도 의협과 같은 입장으로 이번 대법의 판결로 인해 국민 건강권이 훼손되는 일에 대해 적극 대응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경기도의사회는 “의료법 상 치과의사는 치과 의료와 구강 보건지도를 임무로 하고 있어 보톡스로 미간과 이마 주름을 펴는 것은 누가봐도 친과의사의 진료영역이 아니다”라며 “이번 대법은 판단으로 의료 현장의 혼란은 고스란히 국민의 피해로 돌아갈 것으로 이에 대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다 명확히 판결 필요의사-국민 혼란 가중

이밖에 이번 대법원의 판단이 의사들과 국민들의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법학을 전공하고 현재 성형외과를 운영 중인 A원장은 “이번 대법의 판결을 보면 현행 의료법상 문헌적인 해석보다는 ‘그동안 문제가 없어 괜찮을 것’이라는 식인데 이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A원장에 따르면 의사, 치과의사 모두가 항생제를 처방하는데 사용분야는 엄연히 다르다. 현행 의료법상 치과의사가 감기 환자에 항생제를 처방할 수 없듯이 보톡스 시술도 가능하지 않음에도 대법이 이를 허용한 셈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점은 대법의 어중간한 판결이라는 것.

A원장이 지적하는 것은 모든 국민이 그렇듯 의사들도 사회적 약속, 법률에 명시돼 있는 것을 근거로 예측하고 진료하는데 현행 의료법상 제한적인 치과의사의 진료영역을 확실히 규정치 않고 판결을 내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번 판결 자체가 현행법상 신호등을 초록불에 건너야하지만 빨간불에도 건너도 무방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A원장은 “이번 판결은 치과의사가 보톡스를 써도 되느냐가 아니라 어느 부위에 사용하도 되냐가 쟁점”이라며 “대법에서 치과의사에게 안면부 보톡스 시술을 전면적으로 허용한다는 취지가 아니라고 했지만 결국 얼굴 전면을 허용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판단했다.

이어 그는 “그렇다면 현행 의료법상 치과의사들의 직무범위가 잘못된 것이기에 의료법상 치과의사들의 진료 및 수술신체 부위를 명확히 구분하고 명시해주는 것이 먼저”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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