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비리는 '고질병'...승진인사엔 `뒷돈'

조직·인사시스템 개편 주장 제기

<續報>국민이 내는 건강보험료를 관리하는 공공기관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고위 간부들이 인사 비리 등의 혐의로 무더기로 구속됨으로써 충격을 주고 있다.

간부들은 승진 대가로 뒷돈을 받는가 하면, 납품을 받으면서 버젓이 사무실에서 수천만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고위 간부들은 "승진 대상자 중 말이 안 나올 사람 4명 정도를 골라 4,000만원을 만들어보라"고 지시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비리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보 인사는 100만∼500만원, 승진인사는 200만∼2000만원을 받았고, 향응접대는 기본이었다.

보건복지부와 감사원으로부터 해마다 번갈아가며 감사를 받았지만, 회계감사의 한계 때문에 이같은 인사 비리는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건보공단이 '복마전'으로 변모한 데는 복잡하게 얽힌 공단의 구조적인 '인적 구성'과도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공단은 두 차례에 걸친 통합을 통해 공무원·교직원 공단, 지역조합, 직장조합 등 400여곳이 통합돼 2000년 7월 지금의 형태로 출범했다. 직원 1만명이 넘는 거대조직인 공단은 이처럼 복잡한 형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어느 조합 출신인지를 놓고 파벌이 생겼다.

인사 때마다 뒷말도 끊이지 않는 등 마찰을 빚어왔다. 노조도 직장(한국노총)과 지역(민주노총) 등 두 곳으로 갈려 반목을 거듭하고 있다.

때문에 조직적인 인사 비리 등을 없애려면 조직과 시스템의 개편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승진할 때 시험을 통한 승급을 의무화하고, 노사 공동으로 승진선발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 등이다.

한 자리만 오래 근무하는 '붙박이'로 납품비리 등을 야기할 수 있는 소지를 없애기 위해 일정기간이 지나면 순환시키는 인사방안도 개선책의 하나로 꼽힌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건보공단 뿐 아니라 각종 공단과 공기업의 고질적인 인사 및 납품 비리에 대해 철저히 규명,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납품 비리 고질병...사무실서 거액수수 = 검찰 수사로 드러난 이번 건보공단 비리는 기자재 납품 담당 간부와 인사 담당 간부가 서로의 필요에 의해 금품을 주고받는 등 먹이사슬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지난해 12월 구속 기소된 전 총무부장 신모(47)씨는 2001년 7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사내 납품과 관련해 업체들로부터 계약 과정에 각종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6차례에 걸쳐 모두 6,800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신씨는 불구속 기소된 부하직원과 짜고 업체들에게 성사 대가로 계약 대금의 1%를 업무 추진비로 요구했으며, 해당 업체 중에는 S, L 등 유명 시스템 관리 업체들도 포함돼 있다고 검찰은 밝혔다.

조사결과 신씨는 6차례 중 4차례에 걸쳐 1,000만원이 넘는 돈을 기업 관계자들을 불러 사무실에서 전달받았고 2차례는 길에서 전달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신씨는 이 돈 가운데 일부를 전(前) 전남도 정무부시장(당시 총무상임이사)인 임모씨를 거쳐 이사장 보좌역을 맡고 있던 윤모(44)씨에게 전달했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윤씨가 임씨에게 이사장 추석 선물비 처리를 요구해 임씨와 신씨가 업체들로부터 금품을 받았고, 이사장의 개인 명절 선물비로 5,000만원을 챙기는 등 보좌역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금품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윤씨는 이와 함께 2급 승진 대가로 지사 직원으로부터 200만원을 받는 등 광주, 전남 지역 직원 승진, 채용 인사에 개입하면서 6차례에 걸쳐 1,600만원을 챙긴 혐의도 받고 있다.

◇ 승진 대가 `뒷돈 거래' = 이번 건보공단의 인사 비리는 당시 이사장 비서실장과 총무관리실장, 총무상임이사 등 고위직 간부들이 줄줄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 결과 당시 이사장 비서실장 김모(53)씨는 경영전략본부장을 맡던 다른 김모(58.구속)씨와 함께 임씨가 이사장 경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이용, 임씨에게 자신들과 가까운 직원 10여명의 명단을 주며 `승진을 도와주면 업무추진비를 마련해 주겠다'고 제의했다.

김 전 비서실장은 임씨가 제안을 받아들이자 직접 또는 당시 감사실장으로 함께 구속된 남모(53)씨를 거쳐 1, 2급 승진자들을 대상으로 모두 1억원 가까운 금품을 받아 이 가운데 일부를 임씨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임씨는 또 직접 전보 및 승진 인사 대가로 모두 1,500만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김 전 비서실장이 남씨에게 `승진 대상자 가운데 미덥고 말이 안나올 사람 4명 정도를 골라 4,000만원을 만들어 보라'고 지시하는 등 고위 간부들이 적극적으로 인사 청탁에 나섰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승진 대가 금품은 전보 인사의 경우 500만원 안팎, 승진인사의 경우 적게는 200만원에서 많게는 2,000만원에 달했다.

검찰은 "구속자들을 대상으로 추가 금품 수수 여부 등을 계속 수사 중"이라며 "추가 비리 혐의나 관련자가 드러날 경우 수사를 계속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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