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은 중농의 집안에서 태어나셨지만 농사일이 싫어서 도시로 도망쳐 나오셨다고 한다. 그리고는 소규모 제조업을 시도하셨고, 그런 와중에 1938년 여름, 서울에서 내가 태어났다. 초등학교 1학년때 해방을 맞았으며 그러저럭 중상류의 생활을 유지하는 가정에서 소년시절을 넘겼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인생은 드디어 의과대학 학생이 되었으며, 의예과 1학년 때부터 아버님께서는 늘 돈 잘 버는 외과의사가 되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지긋지긋한 의학도의 시절을 보내고 의과대학을 졸업할 즈음 내 인생의 꿈도 청사진처럼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칼을 잡는 의사가 될 것이며, 만약 칼을 잡지 않게 된다면 기초의학이 아닌 임상가가 되겠다고…, 그런 생각을 가진 청년 염용태에게 있어서 교수, 특히 기초의학교수라는 직업은 더더군다나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2003년 8월. 지금의 나는 기초의학(예방의학, 산업의학)의 교직에서 30년을 마감하고 이제 앞으로의 남은 삶에 대한 새로운 여정을 설계하고 있다. 내가 몸담았던 나의 정든 사무실 창밖을 통해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내다보고 있자니 문득 지난 삶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1975년 고려대에 들어와 부푼 꿈을 펼치던 그 당시엔 불가능이란 단어를 생각해 본적이 없을 정도로 겁없이 앞만 보고 덤볐다. 독일에서 백만불을 받고 10여년간 지역사회 보건사업을 펼쳤고, G-7 프로젝트로 수억원을 받아 우리나라 환경보건 문제를 뒤지며 전국을 누볐고, 근로자 건강증진사업의 수행을 위한 환경의학연구소 운영, 산업보건협회 지원, 산업의학 학회 운영, 특수건강진단협회 운영, 한중일 산업보건 유대강화 등으로 우리나라 근로자 직업병 관리의 큰 부분을 맡아왔다. 또한 한국역학회를 창설함과 동시에 실제 6년간 운영을 맡았으며, 나머지 시간은 대한예방의학회의 발전을 위하여 나름대로 힘껏 일하여 왔다. 그리고 연구활동과 동시에 학교 일에도 등한시하지는 않았다. 보건소장, 예방의학교실 주임교수, 도서관장, 대학원 보건학과 주임교수, 보건대학원장 등 나열하고 보면 나름대로 참으로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1975년 예방의학교실에 처음 들어올 당시 차철환 교수님, 그리고 나 둘뿐이었던 교실이 지금은 9명의 교수로 구성된 거대한 교실이 되었음을 볼 때 나름대로 큰일을 이루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너무 나의 자랑만을 늘어놓았나? 허기야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니까.
다른 이들이 나를 바라봄에 있어서, 정년퇴임식을 치르고 나름대로 만족한 인생이었으며, 앞으로도 걱정 없는 편안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내게는 걱정이 태산같이 남아있다. 지금껏 우리세대의 의사, 우리세대의 교수, 우리세대의 가장들은 불평 속에서 살아왔다. 일제를 겪고 6·25를 겪고, 4·19를 겪고, 5·16을 겪고, 월남전에 참가하는 등 큰 사건들을 경험했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지금 내 삶을 회고하는 이 순간 내가 바라보는 지금의 젊은 의사, 교수, 가장들을 보면 보다 더 측은하기만 하다.
의료가 개방되고 대학교육이 개방되면 우리의 후진들은 어마어마한 시련을 겪을 것이다. 소극적인 방어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기만 할 것인지 걱정이다. 의료시장, 교육현장이 국제적으로 개방되면 왜 우리는 이런 점을 역이용하여 세계로 눈을 돌리지 못하는가? 아직도 늦지 않았다. 수출 백억불을 꿈꾸던 박정희 혁명정부의 당시 꿈이 지나친 것이 아니었듯이 우리 의료시장의 세계화, 교육현장의 세계화가 한낮 꿈에 불가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언어교육의 세계화, 학문연구의 세계화 등등 일반 문호를 개방하고 우리들의 약점을 보완하면 가까운 장래에 의료 및 교육의 시장을 외국에다 차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뉴욕, 파리, 런던에서 우리나라 자동차가 질주할 줄은 꿈도 꾸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월남전 당시 한국인 의사들은 USAID 산하에 들어가 한국의 의술을 크게 떨쳤던 기억을 상기하면 우리에게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걱정들은 일단 접어야 하겠다. 당장 내가 다음달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 급선무겠다. 지금으로써는 무엇보다도 30여년간 역학, 산업의학 등 인간집단의 건강을 대상으로 공부했으니 나머지 생애 또한 이러한 분야에 쏟아야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근로자집단을 대상으로 직업병 관리사업에 나머지를 올인해야 하는 것이 순리겠지만, 만성병 역학의 이론을 노인들에게 적용하는 노인건강관리사업의 매력 또한 떨칠 수는 없다. 그러나 우선 다음달부터는 약간의 여유를 갖고, 얼마간 쉬었으면 하는데 내버려 둘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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