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 냉가슴 앓는 제약계

'제약업체가 봉인가'

 요즘 제약계를 압박하고 있는 일부 정책이 비합리성에도 불구하고 저항도 못한채 '벙어리 냉가슴 앓기'식으로 참으면서 내뱉는 독백성 넋두리다.

 제약업계를 짓누르고 있는 대표적인 보건정책은 의약품 최저실거래가.

 지난 99년 11월 의약분업을 앞두고 요양기관의 마진을 없애려는 '실거래가제'정책은 그나마 합리성때문에 제약업체들은 수긍했다.

 하지만 분업이후 구멍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이태복 당시 장관의 지시로 '1년 한시적'라는 전제를 달아 급조된 최저 실거래가는 사실상 '최저가격제'로 자유시장경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어서 발상부터 문제였다.

 1,000원짜리를 1,000원에 팔든 500원에 공급하든 그것은 순전히 제약업체나 도매업체가 경영전략에 따라 판단할 몫이다.

 정부가 그런 현상에 대해 '걱정'은 할지언정 '간섭'은 안될 말이다.

 주권 수임자로써 의약품값에 그래도 간여하고 싶다면 원료, 인건비, 연구개발비, 마진 등 원가의 적정성에 근거한 약가재평가에 의한 약가조정 정도에 그쳐야 한다.

 요즘 제약유통계 일부에서는 최저실거래가를 악용하는 사례도 정부논리를 옹색하게 만든다.

 갈등을 빚어온 제약사의 약을 일부 도매업체에서 요양기관에 낮은 가격에 공급, 골탕을 먹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경우도 있다는 전언이다.

 최저실거래가제도의 모순을 여지없이 드러낸 사례다.

 문제는 이 최저실거래가가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 처한 제약업계를 구체적으로 압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심평원을 중심으로 지난 9일부터 내달 24일까지 의약품 최저실거래가격을 조사, 의약품값(급여)에 칼질을 가하는 작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약계에는 "다빈도 품목을 위주로 4,300여종의 의약품을 대상으로 사후관리를 통해 1,000억원 가량의 보험재정을 충당할 것"이라는 '최저실거래 괴담'이 널리 퍼져가고 있다.

 올 1월 약가재평가를 통해 3,700개 품목의 약가를 인하하는 바람에 580억원을 앉아서 날린 경험을 떠올리면 섬뜩한 괴담이 아닐수 없다.

 한 중견제약사의 임원은 이번 실사를 '핵폭탄'에 비유할 정도니 제약업계가 최저실거래가를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는지 짐작이 간다.

 복지부는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정부 부처이고 제약산업 육성을 누누이 강조해왔다. 우수한 약을 제때 공급하는 일은 '국민건강을 책임지는' 복지부를 돕는 일이다. 의료기관 등과 함께 제약산업은 나름대로 국민건강을 담보하는 최일선 첨병이기도 하다.

 괴담처럼 최저실거래가를 통해 1,000억원이 날아간다면 국내 제약사의 올해 농사는 한마디로 파장이요, 정부의 제약산업 육성 공언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해 제약업계가 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의약품값은 모두 3조6,000억원에 이르니 보험급여에서 남긴 순익을 하루아침에 날리게 되는 셈이다.

 복지부는 고가의 외국약에 맞상대하기 위해 국내 신약의 개발을 독려하고 희귀병 등의 치료를 위해 손해보는 의약품을 맘대로 퇴장하지도 못하게 한다.

 그럼 어떻게 이익을 남겨 신약을 개발하며 손해나는 약을 언제까지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생산하는가.

 정부에 협력을 아끼지 않았던 제약사들이 요즘 정부에 할 말이 많다.

 하지만 벙어리 냉가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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