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덕현 이손경영연구소장
손덕현 이손경영연구소장

[의학신문·일간보사]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만성질환을 가진 노인의 의료와 돌봄을 담당하기 위해 요양병원 종별이 1994년에 신설되었다. 2008년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되면서 요양병원은 의료 중심으로, 요양시설은 돌봄 중심으로 제도가 개편되었지만, 장기요양등급 판정대상에서 의학적 판단이 배제되면서 기능적 분류를 명확히 하지 못하였고 반쪽짜리 제도로 출발했다.

요양병원의 일당정액 수가제도의 경우 질병군에 기초한 분류가 아닌 미국의 요양시설(SNF, Skilled Nursing Facility) 기준인 자원소모량에 의한 분류기준(RUG, Resource Untilization Group)으로 만들어졌다. RUG는 시설 이용자의 자원소모량에 중점을 둔 나머지 임상적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부당하게 치료시간을 늘려 과도한 의료비 지출을 유도하는 문제가 발생되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질병, 동반질환, 식이, 인지, 기능상태 등의 임상적 특성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수가모델(PDPM, Patient Driven Payment Model)을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다. 문제 많은 RUG를 국내 요양병원의 수가모델로 가져오다보니, 요양병원의 의료적인 기능이 약화되어 중증환자를 볼수록 병원경영이 어려워졌으며, 결국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기능이 혼재되어버렸다.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기능정립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2007년부터 논의되었지만, 2018년이 되어서야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내에 ‘요양병원·요양시설 제도개선팀’이 신설되어 기능정립을 위한 논의가 시작되었는데, 이 또한 지난 정부의 지역사회통합돌봄사업에 통합되면서 주목받지 못하고 후순위로 밀려버렸다. 최근 다시 기능정립이 논의 된 것은 현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 발표 이후이다. 요양병원의 간병급여, 의료 및 돌봄서비스 연계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요양시설과의 기능정립의 필요성이 거론되었다. 이를 위해 건강보험공단에서는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를 위한 담당부서를 신설하고, 정부는 2023년 3월부터 의료-요양 통합판정 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예고했다.

통합판정이란 의료-요양-돌봄이 필요한 대상자의 상태를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요양병원으로 가야할지, 요양시설이나 재가서비스를 받아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현재 정부의 시각은 요양시설의 경우 장기요양등급판정을 통해 등급을 받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요양병원은 어떠한 판정 없이 입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입원쏠림 현상과 더불어 사회적 입원이 발생한다고 여기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과는 달리 요양병원 입원 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여 환자분류군에 따른 수가를 적용하고 있으며, 상태가 호전되면 의료경도, 선택입원군으로 조정되어 수가가 감소함으로써 퇴원으로 유도되고, 180일 이상 입원이 될 경우에도 체감제로 인한 감산을 받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통합판정을 도입하겠다고 하는데 과연 통합판정체계 도입으로 기능정립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가 진행되었고, 의료보험과 개호보험을 운영하고 있는 일본에서도 의료요양병상과 개호요양병상의 기능이 혼재되어 역할 정립이 해결과제로 제시되었으나, 별도의 통합판정기준을 마련하지 않더라도, 환자의 질환 및 상태에 따른 의료필요도에 따라 기능정립이 이루어지고 있다. 의료요양병상 입원에 대해서는 전문가인 의사의 소견, 의료가 필요한 환자의 상태 및 의료처치가 열거된 ‘의료구분’에 따르고 있다. 그리고 입원환자 중에서 의료구분 2, 3에 해당하는 중증환자의 비율이 80% 이상일 경우 기본입원료 1, 50% 이상인 경우는 기본입원료 2로 수가를 달리 적용하고 있다. 이는 의료요양병상이 의료적 기능을 더욱 강화할 수 있도록 수가를 지원하는 효과적인 정책제도 중의 하나이다.

반면, 경증환자 위주인 개호요양병상의 경우는 수년간 노인보건시설 등으로 전환을 유도하거나 폐지시키고 있다. 통합판정은 입원 전 환자의 상태에 대한 서류적 판단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정확히 분류하는데 한계를 가지고 있다. 만일 통합판정이 정말 좋다면 왜 선진국에서 조차 시행하지 않는 것일까?

건강보험공단은 의료-요양-돌봄 통합판정체계 모의적용 시범사업을 2021년 10월부터 2개월간 시행하였지만, 그 내용과 결과에 대해서는 공개를 꺼려하고 있다. 또한, 시범사업 시행 전에 통합판정의 그 어떤 기준 조차도 요양병원협회와 논의된 적이 없었다. 그리고 2023년 3월부터 통합판정 시범사업을 다시 하겠다고 한다. 아직 기준안도 협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요양병원 패싱’이 재현될까 우려가 된다.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기능정립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한다. 의료와 요양과 돌봄의 주체인 요양병원과 요양시설과의 충분한 논의 없이 이루어진 장기요양보험제도는 첫 단추가 잘 못 끼워져 10년 이상 반쪽짜리 제도로써 분절된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사전에 그 문제의 주체들과 함께 논의한다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아직까지도 모르는 분들이 있어 개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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