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우철<br>한국보건의료정책연구소 이사<br><제주한국병원 흉부외과 과장, 의사평론가><br>
송우철
한국보건의료정책연구소 이사
<제주한국병원 흉부외과 과장, 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인류는 보호무역과 자유무역을 번갈아 추진해왔다. 보호무역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이었지만, 20세기 이후, 보호무역이 오히려 경기를 침체 시키고 불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자유무역이 득세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GDP85%가 무역에 의존할 정도로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인만큼 자유무역 시대의 도래는 우리에게는 커다란 기회였다고 할 수 있다. 자유무역은 GATT, WTO, FTA 등으로 대변되는데, 2004년 칠레와의 FTA 협상 발효를 시작으로 현재 아세안 10개국 EU 27개국을 포함해 총 58개국과 FTA 즉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상태이며, 그 외에도 14개국과 FTA 협상을 진행 중이거나 발효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신종전염병 확산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는 문을 걸어 잠그고 다시 보호무역으로 회귀하려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과거의 보호무역이 경제 블럭화와 관세 장벽이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아예 수출입 봉쇄 양상으로 전개된다. 러시아의 가스 수출 제한이나 인도 등 식량 대국의 식량 수출 제한, 미국의 중국 경제 제재 및 수출입 금지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경제가 여기에 영향을 받을 것은 분명하다.

무역은 기본적으로 재화 가격이 저렴한 곳에서 국경을 넘어 비싼 곳으로 옮겨 팔아 그 차익을 노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의료서비스를 무역처럼 거래할 수 있다면 두 가지 형태가 가능하다. 하나는 환자를 수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병원을 수출하는 것이다. 의료서비스의 무역은 식량이나 에너지와 달리 보호무역에도 불구하고 봉쇄되지 않는 몇 안되는 영역에 속한다.

또한 의료산업화는 의료 시장을 키우는 것인데, 내수로 의료 시장을 키우는 건 우리나라 총의료비 상승에 기대겠다는 것과 같다. 국민에게 의료비 부담을 증가시키지 않고 의료 시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환자를 수입하거나 병원을 수출하는 것이다.

이때 환자를 수입하는 것을 의료관광 (Medical tourism)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 의료관광이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이후지만, 이미 1980년대 의료관광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곳이 싱가폴이고,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싱가폴이 의료관광의 대명사로 여겨져 왔다.

싱가폴의 의료관광이 유명해진 건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싱가폴은 상법상 법인 형태의 민간 병원 설립이 허용되어 있고, 싱가폴 국민은 Medisave 라는 의료저축계정에 가입하도록 의무화되어 있어, 자기 계정에 누적된 의료비로 민간보험에 가입해 상대적으로 고가인 민간 병원을 이용할 수 있으며, 싱가폴은 사실상 인근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 국가들의 경제적 수도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동남아 국가들의 경제권은 화교들이 상당수 장악하고 있는데, 이들은 거주 환경, 교육 여건이 좋은 싱가폴에 가족들을 두고 다른 동남아 국가에서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이 질병에 걸릴 경우 대부분 싱가폴의 민간병원을 이용한다고 볼 수 있다. , 주변국의 국적으로 가진 이들이 싱가폴에서 치료를 받으니 그게 의료관광으로 간주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결국 싱가폴은 지리적, 경제적 특징을 이용해, 동남아 고소득층을 상대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상법상 법인 형태의 민간 병원을 허용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적인 민간병원 체인으로는 Gleneagles 병원으로 유명한 Parkway holdings 그룹이 있는데, 2005년 말레이시아의 Pantai 병원 그룹을 매입하여 현재 21개 병원 4천병상을 운영하며, 과거 거주민 대상의 의료관광에서 벗어나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본격적 의료관광 시대를 열고 있다.

의료관광은 전세계적으로 성행하고 빠른 속도로 커지는 시장이다. 시장분석 보고에 따르면 판데믹으로 전세계가 봉쇄된 2019~2020년 사이 시장은 -86% 성장해 2021년 의료관광 시장 규모는 40억 달러였으나, 2030년까지 약 20~33%의 연평균성장률(CAGR)을 보이며 2030년 약 980억 달러 (130조원) 시장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왜 의료관광 시장이 이렇게 커질까?

의료관광 시장이 만들어지는 건, 전세계 약 200개국 중 자국의 의료 인력과 시설, 의료 수준, 경제 수준, 지불 체계 등이 모두 갖춰진 나라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 자국에서 충분한 의료수준을 갖는 의사 간호사 등 보건의료인력을 양성할 수 있고, 병원 등 의료시설을 갖춰 자국 국민에게 충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며, 적절한 보험체계와 경제적으로 이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국민 소득 수준을 갖는 국가는 많이 봐야 20~30개국에 불과하다.

나머지 대다수 국가들은 충분한 의료 인력이 없거나, 충분한 의료시설이 없거나, 지불 체계나 능력이 없거나, 이게 모두 갖춰져 있어도 긴 대기 시간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사우디, UAE 등 중동 국가들은 의료비를 지불할 경제력과 의료 시설과 장비를 갖추고 있어도 자국의 의료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미국은 고가의 의료비로 비보험자의 경제적 부담이 크며, 캐나다나 영국은 NHS 시스템의 문제로 긴 대기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런 결핍과 부족 현상이 의료관광을 촉진시킨다.

미국인들은 높은 의료비를 피하기 위해 아시아 (45%)나 인접국인 멕시코 등 라틴 아메리카 (26%)나 캐나다 (27%)로 의료관광을 가고 있어, 가장 많이 의료관광을 하는 나라에 속하는데, 2007년 약 75만명이 의료관광을 떠났고 2017년에는 그 두배인 150만명이 의료관광을 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미국인이 캐나다로 의료관광을 가면 의료비의 30~60%를 절감할 수 있으며, 칸쿤 등 유명 관광지는 물론 미국-멕시코 국경 지대에는 미국보다 저렴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들이 즐비하다. 미국인들이 아시아 의료관광에 나서는 이유도 저렴한 의료비용과 빠른 서비스 때문이다. 포춘 지에 따르면, 관상동맥우회술의 경우, 미국에서 환자가 부담해야 할 평균 비용은 113,000 달러인데 태국에서는 13,000 달러, 인도에서는 1만불이면 가능하며, 고관절 치환술의 경우 미국에서는 5만 달러지만 태국은 7,800 달러에 불과하다.

캐나다나 영국 등 NHS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들은 의료비가 무상임에도 많은 환자들이 의료관광을 간다. 이유는 긴 대기 시간 때문인데, 무릎 재건술을 영국에서 받으려면 최대 18개월, 캐나다에서는 2년을 기다려야 한다. 이때문에 미국과 캐나다는 의료관광객을 유치하는 국가인 동시에 자국의 국민을 의료관광을 내모는 주요 inbound, outbound 국가인 셈이다.

항공과 교통의 발달, 인터넷 등을 통한 정보의 양이 늘어나면서 의료관광을 원하는 환자는 자신이 원하는 곳을 찾아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주요 의료관광지를 제외하면 대부분 인근 국가로 가는 편이며, 이 때문에 의료관광은 블럭화 하는 경향도 있다.

유럽의 경우,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가 의료관광지로 각광받고, 북아프리카의 경우 튀니지, 요르단 등으로 환자가 몰리며 중남미에서는 멕시코가 각광받는 의료관광지이다. 아시아의 경우, 싱가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인도 등이 의료관광 수입을 올리고 있다.

태국의 경우, Bumrungrad 국제병원, Bangkok Chain Hospital 이 대표적이며, 말레이시아의 경우 위에서 언급한 Parkway Pantai 그룹 소속 병원과 KPJ Healthcare, 인도는 Apollo 병원과 Asian Heart Institute, Fortis Healthcare 등이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때 주목받았던 의료 관광이 주춤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금 명맥을 이어가는 건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미용, 성형 분야나 해외에서 치료를 포기한 난이도 높은 환자 몇몇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료관광은 더 이상 틈새 시장이 아니다.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며 수요가 넘쳐나는 시장이다. 우리나라 의료 수준은 세계적이며 공급 과잉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병상과 장비와 시설, 의료 인력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 시장에서 제외되는 건 여러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우리나라 의료관광은 관 주도로 이뤄졌고 지나치게 규제가 많다는 것이다.

, 해외 환자가 오면 이를 응대할 의료진이 의사 소통에 문제가 없어야 하고, 이들의 식사도 별도로 준비해야 하는 등 별도의 노력과 투자가 필요한데, 의료관광을 수용하는 해외 병원들은 대부분 민간병원이며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병원이어서 의료관광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고 노력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병원이 수익을 내는 것을 죄악시하는 경향이 커서 굳이 해외 환자를 유치 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중소병원은 의료관광을 유치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하고, 대형병원은 아직 배고프지 않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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