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태 고려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정지태 고려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의학신문·일간보사]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말도 있고, 몇 년 후면 의사가 넘쳐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양측 모두가 의사라는 것이 문제다.

사람은 다 제 몫 챙기기에 혈안이니, 자신들이 믿는 바를 이야기한다고 뭐 라기도 좀 그렇다. 그리고 이런 주의 주장이 한 두 해 된 일도 아니다. 지난 세기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주장을 펼쳤던 정치인이 나라를 다스리던 시절 9개의 의과대학이 증설된 적이 있다. 그 때 무슨 생각이었던지 정원을 40-50명밖에 안주는 미니 의과대학을 허가했다. 그 때도 의사가 부족하다는 게 근본적인 증설 이유가 되었겠는데, 당시 정원 100명의 의과대학을 만들었으면 지금 의사가 부족하다는 말이 없지 않을까하는 것이 세상모르는 필자의 생각이다.

그런데 그 때도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주장한 사람도, ‘의사가 넘칠 것이라 주장한 사람도 모두 의사였던 것 같은데 이제는 모두 은퇴하지 않았을까 싶다.

누가 나에게 의사가 부족한가? 적정 숫자인가? 넘쳐나는가? 하고 묻는다면, 나는 '몰라요.‘라고 답 할 수밖엔 없다. 왜냐? 한 번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연구를 제대로 진행해 본적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매번 인용하는 OECD 통계는 무엇일까? 그것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해석하는 사람들이 아전인수로 풀이하여 마음대로 설파하는 아주 부정확하고 믿을 수 없는 자료라는 것이다. 그것을 성경 구절인양 인용하는 사람들은 양심불량 아닐까.

우리나라에는 의사가 일주일에 얼마나 일을 하는 것이 적정한 것인지 알 수 있는 연구도 없다.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하는 것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턱없이 의사가 부족할 것이고, 하루 36시간씩 주 7일 근무하는 것이 적정하다면 의사가 너무 많다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이 어떻게 하루에 36시간을 일하냐고 따지겠지만, 대한민국 의사가 하루에 하는 작업량과 미국 의사가 하루 하는 일의 양을 따져보면 대한민국의 의사는 하루 36시간이 아니고, 48시간 보다 더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것 같다.

의사를 만나기 위해 대기해야하는 시간을 따져보는 일도 중요한데, 대한민국에는 그런 대기 시간이 없다. 열심히 돌아다니면 하루에도 5~6명의 의사를 만나서 진찰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의사가 부족하다고? 공공의료에 종사하는 의사가 부족하다고?

오지에 근무하는 산부인과 전문가가 없다고? 의사는 적정한 수의 환자가 있어야 필요한 것이지 1년에 10명 미만의 분만이 있는 지역에 아기를 받을 전문의가 없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는 얘기라고 할 수 없다.

요즘 정치 좀 한다는 사람들이 나서서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마을마다 의과대학 세우기'. 필자는 좋게 생각하려해도 이렇게밖엔 표현이 안 된다. 온갖 이유를 다 대면서 의과대학 증설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의사가 하루 8시간, 5일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생각을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특히 주 540시간 근무하는 의사를 위한 적정 수가가 얼마인지 먼저 계산기를 돌려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의사 월급이 250만원이면 왜 안 되느냐고 강변했던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 과연 가능한 얘기인가? ‘할 수 있으면 한번 시행해 보라고 되묻고 싶다.

국민 모두가 평등하게 싼 가격에 의료를 이용하는 이상을 이 땅위에 구현하겠다는 의도 같은데 그렇다면 국회의원을 자원봉사로 하면 안 되시겠어요?” 하고 물으면 뭐라고 할런지지난 수 십 년간 억지로 만들고 시행했던 여러 가지 제도 중 성공적이었던 것이 무엇이 있는지 한번 제시해 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실패한 제도에 대해 책임진 사람이 있었다면 나와 봤으면 한다. 공공의대를 만들겠다는 저급한 생각을 하지 말고, 의사들이 서로 가서 근무해보고 싶은 공공병원을 먼저 운영해보았으면 한다. 좁아터진 땅덩어리 위에 고만고만한 시설의 공공병원을 세우지 말고, 보건의료원을 지자체장 선거를 위한 선심성 시설로 이용하지 말고 제대로 한번 운영해 봤으면 한다.

의사과학자라는 이상한 용어를 써가면서 의과대학을 세워야 된다고 주장하지 말고, 의대를 졸업하고 임상의사하지 않고 연구만 해도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 시행이 먼저라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일 아닌가? 알고 있는 일은 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짓을 하면 그게 성공할 수 있을까? 의학전문대학원을 강행했던 지도자들이 있다. 그게 실패한 이유가 뭔지 분석은 해봤는가? 그거 만들면 의사과학자가 무수히 나올 것이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인가? 모르긴 해도 그런 말은 한적 없다고 강변할 게 뻔하다.

더 이상 수습할 수도 없이 망가뜨리지 말고, 그냥 시장원리에 모든 것을 맡겨두었으면 한다. 뜻도 모르겠는 필수의료니 공공의료니 하는 그런 용어가 식상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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