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서구보건소 남경희 방문간호사

[의학신문·일간보사] 취약계층에게 코로나19는 더욱 타격이 컸다. 당장 하루 한끼 먹을 수 있는 복지관 배식이 중단되었고, 지역사회 연계 자원들이 단번에 끊겼다. 복지관과 경로당은 감염 취약계층 보호라는 이유로 폐쇄되었고, 병원조차도 마음 놓고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3년이라는 코로나가 휩쓸고 간 자리는 손 쓸수 없을 만큼 큰 상처로 남았다.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인해 소외된 이웃들은 길고 어두운 터널 속에 갖혀 버렸다. 70~80대 어르신들은 빈곤과 질병으로 인한 우울증으로 자살률도 높은 편이다.

남경희(대구 달서구보건소 방문간호사)
남경희(대구 달서구보건소 방문간호사)

방문간호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취약계층 어르신들과 라포를 쌓으며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위로하고, 영혼을 끌어안을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간호사 한명 당 400~500여명의 어르신을 관리하기 때문에 1년에 한두 번 만나기도 힘든 어르신들도 계신 것이 현실이다.

2025년이 되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총 인구의 20%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접어든다고 한다. 그전에 우리사회의 취약계층인 노인들의 복지를 위해 지역사회 안에 방문간호사를 좀 더 늘려야 한다. 가난하고 병든 어르신들에게 우리가 한줄기 빛이 될 수 있게 말이다.

"권oo어르신~~“, "손oo어르신~~“, "안oo어머님~~“, ”oo아버님“잘 계셨어요?…달서구보건소 간호사에요.” 기나긴 코로나와의 사투에서 벗어나 시끌벅적한 아침풍경이 이뤄지는 방문간호사실은 셀렘이 가득한 반면 오랫동안 미뤄왔던 대면방문을 시작해야 한다는 조금의 두려움도 공존한다. 띵똥~~~띵똥~~. "손oo어머님~~. 잘계셨어요?“코로나 때문에 너무 오랜만에 찾아뵙네요. 할아버님도 잘 계시죠?” “우리영감… 작년에 멀리 갔다….” “아버님 요양병원 가셨어요?“아니, 돌아 올 수 없는 먼데로 갔어.” 잠깐의 침묵이 있더니 이내 어머니 눈시울이 붉어지신다. 얼른 손을 잡아 드리고 “어머님, 아버님 간병한다고 고생하시더니 그새 힘든 건 다 잊으시고 많이 섭섭하신가 보네요.” “그라무 영감이 속은 썩여도 한평생 의지하며 살았는데 섭섭지.” “자식들도 지 살기 바빠서 자주 못 오고하는데 내 오늘 간호사 얼굴 오랜만에 보고 이렇게 이야기 다 털어놓으니까 맘이 한결 편안하고 좋다. 자주 좀 온나.”

30분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어머니 얼굴이 좀 밝아지셔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다음 어르신 집으로 향했다. “안oo어르신~, 어머! 어머니, 왜 이렇게 살이 많이 빠지셨어요?” 당뇨가 있으신 어른이 당뇨수치도 너무 낮고 얼굴빛도 좋지 않아서 이것저것 여쭤봤다. “아이고 슨상님, 내가 이가 흔들리고 다 빠져서 밥을 제대로 못 먹었어.” “아~, 한번 해 보세요.” 입안을 살펴 본 나는 너무 놀랐다. 이가 두개밖에 없어서 음식물 섭취가 제대로 안되신 것 같았다. “틀니를 하셔야지요. 치과는 가보셨어요?“돈도 없고 치과에서는 임플란트를 권했는데 잇몸상태도 안좋고 비용이 많이 들어 엄두를 못냈지. 이제 이 나이에 내가 그런 거 해서 뭐하겠노..” “어머니… 우리 보건소 구강팀에 무료틀니 지원부서가 있는데 한번 확인해 볼게요. 잠시만요.” 구강팀에 확인해 보니 다행히 지원대상이 되셔서 치료받으시는 치과랑 연계해서 틀니
지원이 가능하다고 하신다. “어머니, 구강팀에서 무료틀니 지원대상이 되신다고 하니 치료받으시고 당뇨도 있는데 저혈당 빠지면 큰일나요. 식사를 적정량 드셔야 관리도 잘 되시죠.” “혈압이랑, 당뇨랑, 콜레스테롤 한번 체크해 볼께요.” “박OO아버님, 혈압이 왜 이렇게 높으셔요?” “얼만교?” “180/100이에요.. 두통이 있다거나 이상증상 없으세요?” “암치도 않는데‥. 괜찮다.” “아니에요, 좀 쉬었다가 다시 한번 체크해 볼께요.”

잠시 후 “아버님, 혈압이 계속 높아요. 다니시는 병원에 진료 받아 보셔야 되요. 지금은 동네도 다니시고 집안일도 하시는데 뇌출혈 일으키셔서 편마비가 오거나 거동불편 되시면 진짜 큰 일나셔요. 얼른 병원 다녀오세요.” 걱정이 되서 다음날 오전 또다시 방문했더니 역시 혈압이 높았다. “오늘 병원 안가시면 제가 내일 강제로라도 모시고 갈 꺼에요.” 그날 오후에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아이고~ 내 간호사 무서워가 오늘 병원갔다 왔다. 의사선상한테도 혼나고 약 1주일분 일단 받아왔어. 먹고 며칠있다가 병원 다시 오라하더라. 내일 우리집 안 와도 된다고 전화했어.” “네~ 아버님 잘 하셨어요. 아침에 약 꼭 잘 챙겨 드시고 가볍게 운동도 좀 하시구요. 저도 담주에 전화 다시 드릴께요.”

오늘도 우리는 어르신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약속을 잡고 나간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쓸쓸한, 또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떠나는 길, 나를 생각해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보건소 간호사가 있었다는 것을 새겨드리고 싶다. 방문을 나가보면 혈압이 90/60이 나와서, “어르신 왜이렇게 기운이 없으셔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하면 “도무지 음식이 입에 넘어 가질 않아. 입맛이 없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 하시면서 이내 눈물이 고이신다. 살아온 고된 인생살이 듣고 손을 잡아드리고, 위로해 드린다. 방문간호사는 보건소 내에서도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데 영양플러스팀에 연계해 균형 잡힌 식사를 하실 수 있도록 돕고 틀니 무료지원, 인공관절수술비 지원, 암치료비 지원, 치매검사를 위해 치매안심센터, 우울증 상담할수 있도록 정신보건센터 연계 등 여러 가지로 활동영역이 넓다. 병원에서 짧은 면담 밖에 할 수 없어 답답했던 의료상담을 해드리고, 지역사회 안에서 도움 받을 수 있는 긴급의료비, 기초생활와 차상위계층 지원, 가정 환경개선 등 동주민센터, 구청, 의료보험공단 등등 여러 지역사회 자원들을 연결 해 드린다. 나는 앞으로도 의료취약 계층의 삶의 질 향상과 건강증진을 위해 지역 내 연계자원을 발굴하고 소외되는 어르신이 없도록 건강형평성을 지켜나갈 것이다.

역시 간호사가 말해주니 일이 더 잘 해결되었다고, 멀리 있는 열 자식보다 이렇게 찾아와서 돌봐주는 보건소 선생님이 백배 낫다라고 말씀해주시는 어르신들이 계셔 오늘도 힘을 내본다. 약보다 더 좋은 치료제는 집으로 직접 찾아가서 어르신의 건강상태를 사정해드리고 그 어르신에게 맞는 맞춤형 복지를 이어주는 역할, 지역사회 안에서 숨은 조력자로 활동하는 것이 방문간호사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라 생각한다. 가족끼리도 서로 돌아볼 시간이 없는 현대사회에서, 어려운 이웃들 곁에 늘 함께하는 방문간호사로 살길 바래본다. “힘내세요, 여러분 곁에 언제나 보건소 방문간호사가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