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나라 살림살이를 준비하는 예산 작업이 한창이다. 정부는 각 부처별로 마련한 예산안을 조정해 정부안 639조원을 국회 심의를 맡겼다.

정부의 내년 총지출예산은 올해보다 6% 줄였다.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윤석열 정부의 기본방침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이정윤 편집 부국장
이정윤 편집 부국장

보건의료계의 관심사는 보건복지부나 질병관리청 등에 배정된 보건의료 관련 예산이다. 보건복지부의 총지출예산안은 108조 9918억원이다. 대부분이 기초연금 등 복지 예산이다.

보건의료분야 예산은 4조5157억원에 불과하다. 그것도 올해(4조9041억원)보다 7.9%나 감액됐다.

보건의료계에서 분석한 자료는 감염병 대응 예산이나 감염병으로 인한 의료기관 손실보상 예산이 칼질을 당했다는 우려 일색이다.

구체적으로 감염병 대응 지원 체계 구축 및 운영사업 예산이 4859억원이 삭감됐다. 의료기관 손실보상 예산도 올해 1조1100억원에서 4165억원이 줄었다.

코로나 확진자가 현재도 수만명에서 십수만명에 이르고 있고 10월 이후에 재유행을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다수인 상황에서, 특히 내년에 유행이 그칠 것이라고 예측하는 전문가들이 거의 없는 가운데 감염병 예산 삭감은 의외다.

예산이 부족하니 내년에 코로나19가 재유행하면 방역에 구멍이 뚫리지 말란 법이 없다.

코로나19 대응엔 의료기관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손실보상이 충분치 않다면 어떤 의료기관이 적극적으로 협조한단 말인가.

병원계에선 코로나 치료로 인해 발생한 손실을 회복하는데 3년이 걸린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코로나 확진자가 설령 준다해도 코로나 치료를 맡은 의료기관에 대한 손실보상은 물론 회복기간 손실보상을 위한 예산이 필요하다.

국민의 생명보다 재정 건전성이 더 중요하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존재한 이유로 국민의 생명보다 소중한 가치는 없다.

사스, 메르스 그리고 코로나19가 준 교훈은 미래에도 치명적인 감염병은 언제든지 우리를 공격한다는 점이다.

코로나19가 다소 주춤하고 있다는 점은 착시에 불과하다. 아직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하루 확진자가 발생하는 국가 중 대한민국이 포함돼 있으며, 유행 가능성은 항존하고 있는 위태한 상황이다.

이런 형국에 감염병 예산 삭감은 감염병 대응에 정부가 손을 놓는게 아닌가 하는 오해를 낳기에 충분하다.

코로나를 직접 관리하는 질병관리청의 내년 예산안은 2조원이 감소됐다. 올해 남은 백신을 사용하는 등 백신도입 물량을 조절 등 내막을 들여다보면 이해되는 측면도 있지만, 코로나 당국의 예산 삭감은 예사롭지 않다는 시각이 많다.

코로나 뿐만 아니라 보건의료 예산 책정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다.

적자라는 이유로 공공의료기관을 폐업하자는 단체장이 있는가 하면 실행한 사례도 있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급여는 의료행위 원가를 보전하지 못하는 구조로 지속해 온지 오래다.

상당수 의료기관이 적자를 감수하거나 본질인 의료행위가 아닌 부대사업으로 적자를 메꾸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의 의료기관이 ‘지속가능한 의료행위’에 위협받고 있다는 말이 된다.

정부 예산에는 그 정부의 철학이 담긴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만큼 중요한 가치는 없다는 철학이 내년 예산에 스며들기 바란다. 국회 심의가 남아 있기 때문에 아직 시간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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