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의료장비 설치 기준 개정안 두고 대개협 중심 각 직역의사회 반발 확산
대형병원 환자쏠림현상 심화 지적…CT‧MRI, 현시대 보편적 필수검사 강조

[의학신문·일간보사=남재륜 기자] 의료계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CT·MRI 등 ‘특수의료장비 설치 인정 기준 개정안’을 강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의정간 강한 충돌이 예측된다.

올해 초 정부는 보건의료발전협의체(이하 보발협) 회의를 통해 의료계와 특수의료장비 개정안을 논의한 바 있다. 이 개정안의 주요 골자는 병상수 제한 완화와 공동활용병상 폐지다.

공동활용병상은 일정 규모 이하의 의료기관이 CT·MRI 등 고가의 특수 의료장비 검사를 하려면 일정 기준을 갖추도록 하는 제도다. 구체적으로 시 단위 지역 허용 기준은 200병상 이상 의료기관으로, 군 단위에서는 CT장비의 경우 100병상, MRI장비는 200병상 이상으로 제한했다. 다만 기준을 맞추지 못한 병의원은 CT·MRI 검사를 원하는 경우, 인근 의료기관에서 병상을 빌려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정부는 병상을 사고파는 등 제도의 허점을 악용하는 사례를 방지하고자 공동활용병상을 폐지하고, 특수의료장비설치에 대한 기준을 100~150병상 이상 의료기관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

이에 소규모 의료기관을 운영 중인 개원의들을 중심으로 연일 개정안 추진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마련한 개정안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사실상 소규모 병의원의 경우 특수의료장비를 이용한 진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어 매출과 생존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대한개원의협의회(회장 김동석, 이하 대개협)에 따르면 특수의료장비 설치 인정 기준 개정안이 시행되면 1차 의료기관이나 지역 중소병원이 충분히 환자를 치료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CT나 MRI 촬영을 위해 무조건 대형병원에 전원을 유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대형병원 환자쏠림을 기하급수적으로 부추겨 소규모 의료기관이 위축되고, 궁극적으로는 대한민국 의료전달체계의 기반을 무너뜨리게 될 것이라는 게 대개협의 판단이다.

대개협은 “CT와 MRI는 결코 의원과 병원 등 의료기관의 종류나 병상 수만 가지고 보유 여부를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며 “1차 의료기관과 150병상 미만의 중소병원의 진료권을 박탈하는 시도는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한정형외과의사회, 대한신경외과의사회, 대한비뇨의학과의사회,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등 각 직역에서도 대형병원 환자쏠림 등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며, 대개협의 입장에 힘을 보탰다.

특히 이들 단체는 CT, MRI는 현시대의 보편적인 필수검사로 자리잡고 있는 만큼 개정안이 시대착오적인 법안이라는 비판적 시각을 내비쳤다.

정형외과의사회는 “국민들이 요구하는 특수검사는 3개월의 대기기간이 아니라 집 앞 의료기관에서 즉각적임 검사와 의학적 소견을 듣는 것”이라며 “이제 CT와 MRI는 문진과 검진만큼 중요한데, 병상 수라는 비합리적인 기준으로 설치 여부를 논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신경외과의사회도 “개정안은 병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병원의 신규 개원을 사실상 금지하는 것”이라며 “수도권과 도시 지역의 특수의료 장비는 이미 포화에 도달했으므로 향후 150병상이하의 병원에서 특수의료 장비는 설치할 수 없다. 이는 1차 의료를 담당해야하는 신규 개원의들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불평등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비뇨의학과의사회의 경우 “개정안이 150병상 미만의 의료기관의 CT, MRI 도입과 운영을 원칙적으로 봉쇄해 상급병원으로 환자가 몰려 중증환자의 검사 지연 등으로 의료전달체계의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자칫 국민에게 정확하고 편리한 의료서비스를 막는 악법으로 작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개정안 자체가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진료행위에도 심각하게 침해되는 행위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병상이 없으면 영상의학과 전문의마저도 특수의료장비를 설치해 의원을 개원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산부인과의사회는 “영상의학과 전문의에게 특수의료장비 없이 개원하라는 것은 전문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라며 “CT와 MRI 같은 특수의료장비는 단순히 고비용 검사 장비가 아니라 국민의 소중한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도구다. 그러므로 정부는 국민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특수의료장비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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