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태 고려대 의과대학 명예교수<br>&lt;의사평론가&gt;<br>
정지태 고려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나의 모교 옆에 번개반점이라는 상호의 중국집이 있었다. 전화로 주문하면 주문이 끝남과 동시에 배달원이 나타난다는 전설적 배달원이 티비에도 등장하고, 대학 강의실에서 특강도 하는 유명 인사였다. 나도 도대체 얼마나 빨리 나오나 방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들어가면서 주문하니 의자에 엉덩이 붙이기도 전에 식사가 나왔다. 정말 번개처럼 빠르게 나왔는데 맛은 더 특별하지는 않았던 기억이다. 그 후로는 가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느긋하게 앉아 식사를 하는 나의 성향과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오래 전 이야기이지만 대학에서 전임으로 발령 받을 때 근무하던 병원이 안산에 있었다. 1980년대 말의 안산은 그야말로 신도시 건설로 복작거리던 시절, 전 도시에 젊은 사람과 아이들이 넘치던 곳이었다. 병의원이 부족한데 아픈 아이들은 많으니 하루 교수 한 명이 보는 소아청소년과 진료 환자 수가 약 100-150명 정도, 이걸 반나절에 다 본다. 한 시간당 50명 정도를 보니 3분 진료도 아니고 1분 진료였다. 지금 생각해도 이게 가능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런 것을 보고 '번개진료' 라고 했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진료시간만 짧았지, 대기 시간은 만만치 않았다.

요즘도 대학병원의 예약 시스템을 보면 환자 당 진료시간 3분을 넘기면 유지되기 힘들만큼 빽빽한 대기 환자 리스트를 가지고 있다. 이 시스템을 유지하는 대한민국의 의사들은 신의 영역에 들어가 있거나, 무언가 그것을 뒷받침하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2022615일자 조선일보 칼럼에 한 논설위원이 쓴 글이 실렸다. [3분 진료의 성과로 보는 '한국 속도'의 힘] 3분 진료, 비판 많지만, ‘싼 진료비와 수준 높은 의료의 비결이 그 속도에 있다는 기자 나름의 결론을 내린다. 물론 글쓴이의. 의도가 원전재검토에 긴 시간 끌지 말자는 말을 하려했던 것인지는 알지만, 부적절한 비유 중에서도 '미쉐린 별 셋' 등급에 해당된다. 오바마는 한국의 건강보험을 칭찬했다는데 북새통 속에서 진료를 한 번 받아보고 나서 해야 할 말이다.

다시 이야기를 처음으로 돌려서 설성번개반점이 지금도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진 분들이 있으리라. 한 번 가본 후에 다시는 가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잘 모른다. 인터넷을 서핑해보니 2018년에 문을 닫은 것으로 나온다. 기사를 보니 내가 은퇴하기 전에 그런 뉴스를 접했던 기억이 난다. 맛은 평범했지만, 대학가 생태에 맞게 빠른 배달과 푸짐한 서비스로 30년 넘게 고려대 후문의 명물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화제의 배달원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사라졌고. 주인도 연로해서 영업 지속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회적 비난이 심한 3분 번개진료가 선진국에 진입한 대한민국 국민의 건강 지킴이로 적합한 시스템인지 생각해 봐야한다. 우리와 비슷한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들에 비해 저수가에 기반한 이 시스템 위에서 대한민국은 선진의료의 기적을 만들었지만, 1년간 쓰는 의료비 총액을 따져보면 국민 부담이 낮을까? 3분 번개진료와 저수가 압박 속에서도 계속 성장하는 대형병원의 비결은 무엇일지? 이런 시스템을 가지고 의사과학자 양성을 통한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 낼 수는 있을까? 여러 가지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아무도 답을 구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정부와 정치인의 꿈속에서 노벨상을 수상하는 의학자가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의사의 현실 속에는 연구, 진료, 교육으로 지친 하루가 있을 뿐이다. 지난 시대가 자랑하는 한강의 기적 중, 선진의료의 기적은 혹시 한강 백사장 위에 세워져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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