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치료기기 임상평가 전담부서 신설 요구

편웅범 서울대 의료산업기술개발사업단 <br>산학협력중점교수
편웅범 서울대 의료산업기술개발사업단
산학협력중점교수

[의학신문·일간보사] 디지털헬스가 우리 미래의 의료시스템의 모습이라는 예견에 의문을 갖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즉, 디지털헬스는 확정된 미래라고 할 수 있다. 언젠가는 어차피 우리 곁에 현실로 다가올 신기술이라면, 조기에 도입하여 우리 의료시스템을 최고 수준으로 발전시켜 국민건강증진 효과를 얻고 산업 측면에서 세계시장의 패권을 확보하고자 하는 전략적인 행보가 현명한 결단이 될 수 있다.

각국 정부들은 이미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경쟁적으로 디지털헬스지원정책을 마련하고 시행 중에 있는 상황이다. 한국 식약처에서 전세계적으로 가장 먼저 3D 프린팅 및 인공지능 의료기기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여 관련 산업생태계 조성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는데, 자부심 강한 미국식품의약국(FDA)도 예정보다 조속히 가이드라인을 배포하기 위해 한국 식약처에 도움을 요청하는데 거리낌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작년 하반기는 여러 학회, 심포지엄, 포럼 등에서 디지털치료기기의 보험적용 방안에 대하여 활발히 토론된 시기였는데, 보건복지부와 심평원의 긍정적인 입장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특히 9월에는 심평원에서 디지털치료기기의 보험적용에 관하여 상당히 주목할 만한 보고서가 나왔다.

식약처에서 본격적으로 디지털치료기기의 확증임상시험계획을 승인한 시기에 2021년 3월부터 디지털치료기기의 수가 개발을 위한 워킹그룹을 구성하여 보고서까지 발간한 점은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안으로 가이드라인 제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한다. 더욱이, 지난 1월에는 식약처에 “디지털헬스규제지원과”가 신설되어 산업계로부터 많은 기대를 받고 있고, 2월 24에는 디지털헬스케어 기기에 대하여 신의료기술평가를 면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디지털헬스케어 산업육성 전략이 발표되었다.

작년부터 지금까지의 규제동향을 살펴볼 때, 현재 중요한 시점을 지나고 있고 규제개선의 제안을 할 적기라고 생각한다. 사실, 규제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규제개선에 따른 부작용이나 실효성없는 사례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규제에 대한 제안은 항상 조심스럽고 걱정도 많이 드는 문제이다.

따라서 제안하는 규제개선안은 다음과 같은 적용범위로 제한하기 때문에, 기존의 규제시스템과 한시적으로 공존하게 된다.

◇규제개선 제안의 요약

적용범위 국내기업이 자체 개발한 디지털치료기기 해외기업 또는 기관과 공동개발한 경우, 사업상 소유권이 국내기업에게 있다면 포함
적용방법 5년간 한시 적용 기존 규제와 새로운 규제의 공존
품목허가 △콘텐츠 정합성이 인정되는 경우,
확증임상시험결과보고서 면제
△정기적인 실사용증거 제출 의무화
식약처 의료기기임상평가 전담부서 신설 필요
신의료기술평가 콘텐츠 정합성이 인정된 디지털치료기기의 신의료기술평가 면제 실사용증거에 대한 정기적인 안전성·유효성 평가
보험등재 △품질수준 기반의 차등가격 결정 고시
△정기적인 실사용증거 제출 의무화
심평원 중심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및 대한의학한림원과 품질평가 협의체 구성

제4차 산업혁명의 화두가 던져진 이후로 웨어러블 디바이스, IoT, 3D 프린팅, 인공지능 의료기기, VR/AR, 디지털치료제, 메타버스 등등 짧은 기간에 연속적으로 디지털헬스를 구성하는 신기술들이 부상해오고 있고, 국가적으로 연구개발에 집중투자를 거듭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실질적인 사업화 성과는 창출되지 못한 상황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아직 허가된 예는 없지만,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영역에서의 부분적인 성과를 고려할 때 디지털치료기기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기대된다. 또한 디지털치료기기가 성과창출에 성공할 경우, 다른 첨단기술들과 융합되어 대부분의 첨단기술들이 함께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디지털치료기기에만 새로운 규제를 우선 시범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추후에 5년간의 시행결과를 평가하여 정식제도로 채택하고 전면적으로 확대적용할 지의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식약처 품목허가 단계에서는 “콘텐츠 정합성” 위주의 심사를 통해 식약처가 인정하는 학회의 표준치료지침 또는 임상적 근거 등과 비교검토하여 본질적으로 정합성이 인정된다면, 확증임상시험결과 보고서 제출을 면제하는 것이다. 대신, 허가 후 실사용증거를 정기적으로 제출하여 품목허가를 유지하여야 한다. 디지털치료기기의 콘텐츠는 치료기전의 핵심요소이고, 이미 대면진료 방식의 인지행동치료에 대한 수많은 임상연구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었고, 대면 인지행동치료는 건강보험급여가 적용되고 있는 의료행위로서 사전 허가관리에서 임상시험을 면제할 수 있는 근거는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다만, 소프트웨어 적합성, 사이버보완, 사용적합성 및 KGMP 등의 비임상적 요구사항들은 제품의 안전성을 보증하기 위하여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1년의 주기로 매년 실사용 증거 제출을 의무화하고, 실사용 증거 심사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는 경우에는 허가를 취소한다.

결국 사전 허가관리를 완화하는 반면, 사후관리를 강화하는 방안으로서 지금 까지와 같이 사후관리 시스템이 미흡한 체계 하에서는 한번 허가되면 되돌 수 없는 사전허가 심사가 과도하게 방어적으로 이루어질 밖에 없는 고질적인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디지털치료기기를 조기에 의료시스템에 도입할 수 있는 새로운 규제시스템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의료기기 임상평가 전담부서”의 신설이 반드시 요구된다. 지금도 부담이 큰 임상시험관리 업무에 정기적으로 제출되는 실사용증거에 대한 심사업무가 가중되기 때문이다.

보험등재 단계에서는 식약처가 콘텐츠 정합성을 인정한 제품에 대하여 신의료기술평가를 면제하고, 품질수준을 기반으로 차등가격을 결정하는 것이다. 식약처와는 별도로 정기적으로 실사용증거를 제출받아 보험적용을 유지할지 여부를 지속적으로 평가한다. 실사용증거를 제출하지 못하거나 안전성·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즉시 급여를 중지하고 보험등재를 취소한다.

디지털치료기기는 본질적으로 신의료기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고, 그동안 보건복지부와 심평원의 정책적 입장을 볼 때 신의료기술로의 인정에 긍정적이라고 보인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은 사전심사 보다는 실질적인 사후관리를 위한 실사용증거를 심사에 집중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타당하다.

디지털치료기기의 품질평가는 2020년 12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건강관리앱 품질 가이드라인 개발 연구” 보고서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디자인, 콘텐츠, 사용성, 기능성, 보안 등의 지표들을 활용할 수 있고,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대한의학한림원의 의견을 받아 심평원에서 품질등급을 최종 판단하여 차등가격을 결정할 수 있다. 우수한 품질의 디지털치료기기를 가격경쟁에서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차등가격제 도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디지털치료기기에 대하여 행위수가를 적용할지 치료재료 가격을 적용할 지에 대해서는 보험당국에서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실사용증거를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평가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해야 하는 사후관리의 부담은 국내 기업들에게나 평가자 입장의 정부에게나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혹자는 규제완화가 예산 없이도 성과를 낼 수 있는 효율적인 정책이라고 말하지만, 합당한 대가를 치루지 않고 ,요구사항의 면제로 이득만 취하려는 규제개선은 공허한 결과를 낳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기 시장진출이라는 적잖은 혜택을 얻는 대신, 기업과 정부가 사후관리에 대한 무거운 부담을 떠안는 것은 정당한 대가라고 볼 수 있고,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때 비로소 의미있는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 편웅범 서울대 의료산업기술개발사업단 / 산학협력중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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