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 5월 29일 제15회 의료기기의 날 기념 특집기고④

오는 5월 27일은 ‘제15회 의료기기의 날’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등 의료기기산업 4개 단체가 주축으로 의료기기 관련인들이 모여, 화합을 도모하고 국민 안전과 미래시장 창출, 의료기기 분야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날이다. 15번째 의료기기의 날을 맞이해 우리나라 의료기기산업의 발전을 위해 몇 가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재화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이재화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우리나라 의료기기 시장규모는 최근 코로나19 진단키트의 일시적 성장분을 제외하면 수년째 세계시장의 1.6%로 10위 정도에 머물러 있다. 지속적인 성장을 하고는 있지만 극적인 성장을 위한 혁신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3년 전 ‘의료기기산업 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법’ 제정 이후 18건의 혁신의료기기가 지정되고 그중 8건이 식약처의 허가를 완료했으나, 매출이 없거나 해외 실적만 있는 등 혁신적 성과를 못 내고 있다. 이는 건강보험 등재를 못 하거나 기존기술 급여와 같은 수가로 지정돼 가격 경쟁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의료기기는 허가 후 임상적 유효성을 증명해야 건강보험에 등재된다. 반면 혁신의료기기는 새로운 기술적용으로 임상 관련 자료들이 부족해 대부분 새로 만들어야 한다. 이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워 보험등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이는 혁신의료기기뿐만 아니라 신개발의료기기는 모두 겪게 되는 상황이다.

판매가 안되기 때문에 임상적 유효성을 증명하기 위한 데이터 획득이 어렵고, 이로 인해 유효성 증명이 어려운 악순환이 지속되는 것이다. 결국 새로운 의료기기 개발을 저해하고 최신의 혁신적 기술 반영을 어렵게 만들어 명칭만 ‘혁신의료기기’일뿐 실제 혁신적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사례로 올해 1월 행정예고도 없이 ‘신포괄수가제도’가 변경됐다. 1인당 20만원 이상의 치료재료는 비포괄로 구분해 22만 1746개의 치료재료가 비포괄에서 포괄로, 871개가 포괄에서 비포괄로 재분류 됐다. 업계와 논의가 전혀 없었고 사용금액 20만원의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업계에서는 매우 큰 불만들이 쏟아졌다.

포괄품목은 사용하지 않으면 요양기관에 이익이 발생하는 구조로 요양기관은 사용을 줄이거나 저가 제품을 쓰려는 유인이 발생한다. 가치평가를 통해 임상적 유효성을 인정받은 급여 품목도 사용량이 줄어 전체 의료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특정 업체는 이 제도가 시행되자마자 요양기관으로부터 포괄품목이 된 제품의 납품 중지 요구로 연 15억 이상의 매출 하락이 예상됨을 하소연했다. 해당 제품 역시 가치평가를 통해 유용성을 인정받아 급여화된 제품이었으나 병원 측에서 사용을 거부한 것이다.

그만큼 환자에게 사용돼야 할 금액이 사용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일부 요양기관의 이야기지만 의료서비스 질을 요양기관 양심에 맡기는 시스템은 문제가 있다. 과잉진료를 막는 것도 중요하나 의료서비스 질 향상에 대한 장기적 고려가 필요하다.

산업진흥과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 정부의 막대한 지원과 관심을 받은 혁신의료기기, 신의료기기가 등재되지 않아 사장되는 것은 엄청난 자원의 낭비이다. 또한 국민이 더 나은, 혹은 더 나을 가능성 높은 의료기기를 사용하지 못해 더 좋은 의료서비스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아울러 정교하지 못한 제도는 ‘신포괄수가제’와 같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단기적이고 경직된 제도는 장기적으로 의료서비스 질과 의료기기 산업을 훼손할 수 있는 것이다.

혁신적 변화와 사회적 요구 반영을 위해 건강보험제도와 의료기기산업 지원을 지금과 다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무조건적 R&D 지원보다 유연한 정책과 재정지원으로 안전이 확보된 새로운 의료기기의 시장 진입을 허용하고 엄격한 관리와 평가를 통해 유효성 증명이 가능해지면 우리나라 의료기기산업의 선순환 구조가 이루고 의료서비스 질은 향상될 것이다. 이런 선순환 구조가 이뤄졌을 때 진정한 ‘혁신의료기기’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