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동맥고혈압, 폐암에서 치료 가이드라인과 치료 현장 간 ‘처방 간극’

[의학신문·일간보사=김상일 기자]질환이 악화되어야만 급여를 인정해주고 있는 치료제가 있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의 헛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여전히 치료 현장에서는 신약 허가 속도 대비 보험 급여 등재 및 기준 확대 등의 속도는 느린 상황이다. 다양한 치료제 및 요법이 국내외 가이드라인에 언급되고 권고되고 있지만, 국내 보험 급여 기준 등으로 인해 실제 처방 사이에 간극이 발생하고 있는 것.

이에 질환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들 또한 국내 급여 기준이 최적인 치료법을 제시하는 치료 가이드라인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토로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폐동맥고혈압 치료제가 있다. 페동맥고혈압은 폐고혈압 5개 군 중 가장 치명적인 1군에 속하는 질환으로 심장에서 폐로 혈액을 공급하는 폐동맥의 혈압이 상승하는 치명적인 희귀 질환이다.

조기 진단 및 적극적인 치료를 받지 못할 경우 호흡곤란 및 우심부전으로 인해 돌연사 위험이 높은 질환이지만 인지도가 낮아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진단까지 평균 1.5년이 소요돼 치료 적기를 놓치는 경우도 많다.

폐동맥고혈압은 진행성 난치 질환인 만큼 조기 진단을 통한 적극적인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폐동맥고혈압 환자 중 저위험군 또는 중등도 위험군에서는 1개 치료제를 사용하거나 2개 약제로 병용 치료가 가능한데, 임상적 개선이 불충분할 경우에는 순차적으로 2개 또는 3개 병용요법을 시행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특히 세 가지 계열의 약물 병용요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치료하면 환자의 기대 생존율이 7.6년까지 증가할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폐동맥고혈압 치료에서 적극적인 병용요법의 사용은 중요한 요소이다.

이에 국내외 폐동맥고혈압 진료지침에서도 중등도 위험군 이상 환자부터 적극적인 병용요법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는 보험급여 기준 상 진료지침에서 권고하는 병용 요법을 조기부터 사용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폐동맥고혈압 고위험군 이상에서 보험이 적용되기 때문에, 질병이 상당 부분 진행된 이후 본격적인 치료가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지난 9월 ‘폐동맥고혈압 환자의 생존율 개선 대책 수립을 위한 국회토론회’가 개최돼 급여기준 변경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으며, 이날 참석한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양윤석 과장은 "작년 8월 대한심장학회에서 신청한 급여 기준 개선안을 바탕으로 올해 7월에 전문가 자문회의를 거쳐 복지부에 검토보고서 보내왔다”며 “내용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고, 환자 관점에서 중점적으로 살피겠다”고 응답했다.

폐암도 마찬가지다. 10년간 부동의 국내 암 사망률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폐암은 40% 이상의 환자들이 4기 전이성 단계에서 진단 받는다.

진단이 늦어져 치료 옵션이 제한적인 만큼 해당 환자들의 5년 상대 생존율은 8.9%에 불과하다. 10명 중 9명은 5년 이내에 사망한다는 의미다.

때문에 최상의 치료 결과를 위해서는 1차 치료부터 가장 좋은 치료 옵션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1차 치료의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글로벌 가이드라인과 임상 현장과의 처방 간극이 오랜 기간 지속되어 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키트루다 병용요법은 항암화학요법 대비 생존기간을 약 2배 연장 시키고 초기 단독요법의 한계 극복 등 임상적 혜택으로 4기 전이성 폐암의 최신이자 최선의 1차 치료 옵션으로 꼽힌다.

실제로 세계 종양내과 전문의들의 글로벌 치료지침으로 불리는 미국종합암네트워크 가이드라인은 키트루다 병용∙단독요법을 4기 전이성 폐암의 1차 치료제로 가장 높은 권고 등급인 ‘카테고리 1’ 중에서도 선호요법으로 우선 권고 중이다.

하지만 현재 키트루다는 4기 전이성 폐암의 2차 이상 치료로만 급여가 가능하다. 이는 표적 치료제 사용이 어려운 환자는 1차 치료로 항암화학요법 치료 후 ‘암이 진행되어야’ 2차 치료에서 급여를 적용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글로벌 최신 치료 트렌드와 역행할뿐더러, 뛰어난 효과의 1차 치료제가 있음에도 경제적인 이유로 환자들의 접근성이 저해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키트루다는 2017년 비소세포폐암 1차 요법으로 급여 신청 후 약 만 4년만인 지난 2021년 7월 암질심을 통과, 현재 다음 단계인 약평위 상정을 기다리고 있다. 올해는 12월 마지막 약평위에서도 상정조차도 되지 않아 또다시 내년을 기약해야만 했다.

키트루다는 현재 전세계 52개국에서 1차 치료제로 급여가 적용돼 전세계의 많은 폐암 환자들이 표준 치료제로 처방 받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OECD 상위 10개국 중 급여가 적용되지 않는 유일한 나라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폐암, 폐동맥고혈압 등 치료 시장에서 다른 국가들은 1차 치료에 대한 혜택을 확인하고 환자와 치료제사이의 간극을 해소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급여 논의가 빠르게 마무리되어 환자 치료와 생존율 연장을 위한 최선의 치료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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