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무진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이사장

[의학신문·일간보사=김현기 기자] 우리나라 보건의료분야 공적개발원조(ODA)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이하 KOFIH)이 올해로 창립 15주년을 맞았다.

추무진 국제보건의료재단 이사장.
추무진 국제보건의료재단 이사장.

그 시작은 이종욱 선생님이 2003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국제기구인 국제보건기구(WHO) 6대 사무총장으로 취임하면서, 우리나라도 보건의료 분야에서 국제적인 위상에 맞는 역할을 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다.

2005년 12월 국회에서 개발도상국, 북한, 재외동포, 외국인 근로자 등에 대한 보건의료 증진을 통해 인도주의를 실천함으로써 건강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염원에 따라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법이 제정됐고, 2005년 설립된 국제보건의료발전재단(이사장 권이혁)을 근간으로 2006년 8월 12명의 임직원(초대 총재 박종화)으로 KOFIH가 출범하게 됐다.

KOFIH가 창립되기 직전 서거한 이종욱 사무총장은 재임 기간 동안 저소득국가의 소아마비와 HIV/AIDS 등의 감염병 해소를 위해 선진국의 동참을 이끌어 냈다. 특히 2003년 신종감염병인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간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데 기여했다.

이후 조류인플루엔자가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기 시작하자 치명적인 신종 감염병 대응과 보건의료 현안에 대한 WHO의 역할을 강화하고 국제적인 공조를 위한 국제보건규약(IHR)을 개정했으며, 국제보건위기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전략보건운영센터(SHOC, 이종욱 사무총장 사후 JW Lee SHOC로 명명)를 WHO 본부에 만들었다. JW Lee 센터는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이후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을 6번째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PHEIC)으로 선포, 퇴치를 위한 WHO 핵심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에서 지금까지 약 450만 명 이상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며 전 인류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더불어 각국의 보건의료서비스 제공에도 막대한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WHO에 의하면 135개국 중 94%의 국가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필수의료 장애를 겪고 있으며, 9%의 국가는 심각한 장애(75~100%)로 보건의료체계가 붕괴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78개국 중 약 50% 국가에서는 필수의료 유지를 위한 지원을 우선적으로 해주길 바라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저소득국과 중저소득국에는 더욱 가혹한 국민 건강 위협요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국제보건협력사업도 난항에 부딪힌 것이다. 보건의료 분야는 사업의 개발과 타당성 조사를 위해서나 사업 시작부터 중간 평가와 환류, 종료평가 등 대부분 과정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해야 하는 일들이다.

하지만 우리의 협력국들은 대부분 국경 봉쇄를 통해 유입을 차단하고 자국민들의 이동을 억제하는 정책으로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계획된 사업은 시작도 못하고 있거나 진행되고 있는 사업조차 어려움에 처해 있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협력국 국민이 떠안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또는 위드 코로나19 상황 하에서 국제사회가 우리나라에 거는 기대에 대해 어떻게 부응할 것이며 특히 보건의료 분야에서 어떻게 국제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ODA 총액이 고소득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상황에서 효과적인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선 선제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지난 15년 동안 KOFIH는 모자보건을 중심으로 일차의료강화사업, 보건의료체계강화를 위한 인적 역량강화 사업, 유무상 연계사업 등 크고 작은 사업의 경험을 갖고 있다.

더불어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국제보건의료 협력사업의 전환기를 맞으면서 새로운 사업을 고민하고 발굴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국제보건의료 협력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KOFIH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의 네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먼저, 일차의료와 필수의료서비스 중심의 보건의료체계를 강화하는 방향이 돼야 한다. 이는 보건의료 지원사업의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그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또 상호 인적 교류가 이전처럼 원활하지 않게 됨으로써 현지의 보건의료 인력의 역량 역시 중요해졌다. 그리고 이들 사업은 환경, 장애인, 성인지, 인권 등 우리 정부 정책 방향과 협력국의 UN 지속발전목표(SDGs)를 달성하기 위한 보건의료 정책 방향과 일치하도록 개발돼야 한다.

그 다음으로, 우리나라의 보건의료가 상대적 우위를 가진 분야로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 상대적 우위 분야는 모자보건, 감염병, 위생, 기생충, ICT 기술과 인공지능 등이 있으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 사회로 빠르게 바뀌고 있어 타 분야와 연계해 사업을 개발하고 성과 관리, 지속적인 연구와 환류를 통해 사업 수준을 높여야 한다.

KOFIH 사업 중에선 보건의료 인력 양성을 위한 이종욱펠로우십 프로그램이 타 기관에 비해 차별성이 있는 분야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코로나19 방역에서 보여준 역량을 바탕으로 감염병 관리에 대한 교육프로그램을 국립중앙의료원과 함께 개발, 이를 배우고자 하는 협력국의 보건의료 분야 인력들을 초청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유‧무상연계를 통한 병원운영컨설팅과 의료기기 유지보수사업, 모자보건사업 등 지역 주민의 주인의식을 존중하며 현장 중심적 사업을 운영해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

또 앞으로는 고혈압, 당뇨 등 비감염성질환에 의한 사망률도 서서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기에 향후 이에 대한 사업도 적극 병행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로 보건의료 ODA 전문가 양성에 투자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1949년 WHO(서태평양지역)에 가입하고 첫 한국인 사무총장이 배출한 지도 18년이 지났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총 34개국으로 구성되는 WHO 집행이사회에 WHO 가입 이후 7번째로 집행이사국이 됐다.

그 동안 수많은 한국인들이 WHO에서 일하고 활동하고 있지만 서구 고소득국 뿐만아니라 가까운 일본, 중국 등에 비해 아직 인적 자원이 풍부하지 못하다. 보건의료 ODA 전문가 또한 우리나라 국제적인 위상에 비해 많지 않은 실정이다. 인적 자원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 국가적으로 투자를 해줘야 안정적으로 육성이 된다. 이제부터라도 전문가 양성에 국가적인 관심과 투자가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국민의 공감대 확대가 바탕돼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나라 국민도 많이 힘들고 지쳐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우리만 문을 걸어 잠그고 방역 잘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다시 말해 지역 국가뿐만 아니라 전 세계 보건안보를 위한 국제적인 협력과 연대의 필요성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선 우리의 협력국 보건의료 향상이 필요하다. 협력국의 보건의료체계 강화를 위해 필요한 보건의료 ODA 예산이 과감히 증액돼야 한다. 예산은 국회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선 국민의 동의가 절대적이다.

KOFIH는 국무총리실 산하 국제개발협력위원회를 통해 한국수출입은행, 한국국제협력단 등 여러 기관과 함께 국제보건의료지원을 위한 무상, 유무상 연계사업 등 논의와 협력을 통해 협력국의 보건의료 증진을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드러난 국가 간의 보건의료 불평등 해소에 더욱 기여하고 KOFIH가 그 선봉에 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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