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우 한국의료질향상학회 감사 <br>울산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조민우 한국의료질향상학회 감사
울산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의학신문·일간보사] 우리나라에서도 임상진료지침 개발과 적용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필자가 우리나라 임상진료지침의 질을 평가했던 10년 전에 평가대상으로 삼았던 임상진료지침은 66개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2021년 현재 대한의학회의 임상진료지침 정보센터에 등록한 임상진료지침은 어느새 400개가 넘었다.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은 질환뿐만 아니라 두통, 기침, 객혈과 같은 증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임상진료지침을 개발하고 개정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임상진료지침의 활용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근거에 바탕을 둔 의료를 하고자 하는 의료진들의 요구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임상진료지침을 도입하던 초기에는 임상진료지침대로 진료를 하면 판에 박힌 진료(소위 Cook book Medicine)를 하게 될 것이라는 비판, 임상진료지침을 규제의 근거로 활용할 것이라는 우려 등이 있어 의사들의 저항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해당 분야의 여러 전문가가 모여서 체계적으로 연구 문헌을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진료 과정에서 풀어야 할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한 임상진료지침이 주류 의학과 비주류 의학을 분류하는 기준으로도 작동하면서 이제 임상진료지침은 의료진들이 나서서 개발하고 이용하는 주요한 진료 자료원으로 부상하였다.

하지만 필자는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임상진료지침을 활용하는 모습이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임상진료지침은 진료과정에서 의사가 하는 의사결정에만 도움을 주기 위해 개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임상진료지침은 의사뿐만 아니라 환자의 의사결정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미국의학원에서도 임상진료지침을 특정 임상 상황에서 의사나 환자가 적절한 보건의료 의사결정을 할 때 도움을 주기 위하여 개발한다고 정의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임상진료지침 중 환자를 위한 지침은 고혈압, 당뇨, 이상지질혈증, C O P D(만성폐쇄성폐질환) 등 몇 가지 종류에 불과하다. 질병 치료 방법을 결정하는 것은 환자라고 보건의료기본법에서 법조항으로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그것이 어려운 상황임을 임상진료지침 개발 현황이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환자가 자기 진료방법을 주로 결정하게 되면 혹은 임상에서의 의사결정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면 우리는 다양한 환자 안전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무기를 하나 가지게 된다. 투약 약물의 종류나 투여경로 등 투약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 잘못된 부위를 수술/시술하는 문제 등도 환자가 명확하게 자신의 진료 내용을 알고 있으면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Speak up” 캠페인처럼 여러 병원에서 수행하고 있는 의사소통 제고 운동도 이러한 기전을 기대하는 것이다.

환자안전사고가 줄면 당연히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그러므로 환자권리도 제고시키고 환자안전사고도 예방할 수 있도록 환자를 위한 임상진료지침 개발에도 관심을 기울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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