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안병정 기자] 마침내 대한의사협회의 새로운 회장이 선출되었다.

안병정 편집주간

이번 의협선거는 결선투표제로 민의를 최대한 반영하고 회장의 대표성을 확보했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높다. 당선자로서도 투표자의 과반이 넘는 지지를 받았기에 회장으로서의 정당성을 가지고 힘 있게 일 할 명분이 주어졌다고 본다.

특히 이번 선거가 예년보다 관심이 높았던 것은 다자구도였고, 결선투표를 도입한 원인도 있지만 바탕에는 의료 현안들로 위기감을 느낀 회원들의 절박한 마음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선거가 끝난 지금의 마당에서는 당선자나 낙선자, 일선 회원 모두 열기를 가라 앉히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난제해결을 위한 융합된 힘을 모으는 일이 중요하다.

다들 공감하겠지만 눈앞에 펼쳐진 의료계 상황은 아득하다. 현안들이 부지기수인데 우군 이라곤 없다. 정부와 여당은 곧 보궐선거가 끝나면 대통령의 공약 사항 등 미루어 둔 개혁 입법들을 밀어붙이려 들것이고, 그동안 정체되어 온 의정협의체도 의협 새 지도부 출범과 함께 가동 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시간이 촉박하다. 믿는 것은 당선자가 취임 때가지 남은 한 달여 시간동안 능력 위주로 지도부를 구성하고, 정부와 정치권을 설파해 나갈 전략을 잘 세워 주도면밀하게 대응해 나가는 길 뿐이다.

돌이켜 보면 의협은 지난날, 특히 의약분업 이래 국가 주요 보건의료시책이나 법령과 마주할 때 시종 ‘투쟁’을 외치며 저항해 온 경향이었다. 그러나 투쟁으로 소득을 거둔 경우가 과연 있었던가 싶다. 소득을 얻기는커녕 사회적으로 의사들의 권위만 실추되고 협상력은 되레 약화되었다는 내부의 비판을 부정하기 어렵다.

결과론이지만 이번 선거에서 이필수 후보가 당선된 것도 다수 회원들의 표심이 ‘투쟁 보다 협상’에 무게를 두고 있는 '노선에 대한 선택'이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정서에 부응하여 회장 당선자는 바뀌어 진 세상의 눈높이에 맞게, 그리고 상식의 틀에서 의협을 이끌어나갈 것을 기대한다. 물리적인 힘으로 제도와 시책을 막거나 바꿔보겠다는 것은 이제 구태이며, 실패를 얼마든지 경험한 바 있기 때문이다.

잘 알겠지만 공무원들은 언제나 공공의 이익과 국민을 우선시 한다, 정치권은 ‘표’만 따진다는 것은 정설이다. 그러기에 어느 직능이고 말할 것 없이 이익집단은 좋던 싫던, 정부와 코드를 맞춰나가는 것이 체질화되어 있다. 자신들의 정치적인 신념과는 무관하게 집권당 프랜들리로 표정을 관리하면서 정책목표를 달성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 반면 의료계가 보여 준 최근의 행태는 정부와 괜한 대립구도를 조장했거나 척을 지며 긴장관계를 만들어 온 측면이 없지 않다. 특히 의사 지도부의 품격을 갖추지 못한 말과 행동이 그랬었다. 이는 정부나 정치권을 자극한데 그치지 않고, 양식 있는 회원들조차 조직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하여 의사 지도부와 일선 회원들 간의 괴리감을 키웠던 것이다. 그런 결과로 투쟁을 한다고 해 봐야 구심점을 모을 수 없었던 것이다. 비약해서 얘기하면 지도자의 정제되지 않았던 언어와 절제 없던 강성이미지로 자승자박 한 처지가 됐던 것이다.

이에 새 당선자는 전임 집행부의 과오나 시행착오를 타산지석으로 삼았으면 한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 최고 전문가단체 수장으로서 갖춰야 될 덕목이 무엇인지를 잘 인식하고, 말과 행동에서 품격을 발휘했으면 한다. 의료계 내부적으로도 분파적, 또는 분과적인 사고에 몰입되지 말고 전체를 아울러 사람을 끌어 모으는 리더십을 발휘해 줄 것을 기대한다. 그래야 투쟁이 되었건, 협상이 되었건 일을 하는데 탄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쪼록 이필수 당선자가 모나지 않고, 휘둘리지 않는 지도자로 의협을 이끌어 3년 뒤 박수 받으며 퇴장하는 회장, ‘한 번만 더 맡아 달라’고 회원들이 붙잡는 회장의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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