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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에 ‘세한도’
정원태 
한국유나이티드제약
글로벌 개발본부 전무/약학박사

[의학신문·일간보사] 코로나가 계속되니 근력이 떨어지는 것을 체감한다. 매일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것이 효과가 있다는데 게을러서 그것도 쉽지 않고. 그래서 휴일이면 몰아치기로 돈 안 드는 걷기운동을 한다. 지난 휴일 집을 나서서 강을 건너 발길이 닿은 곳이 국립중앙박물관. 마침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무가지보(無價之寶)”의 전시회가 있어 들어가 보았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는 자신이 직접 그린 부분은 불과 A4 두 장 정도의 그림과 편지 한 장이 전부다. 그 뒤로 계속 덧붙여진, 요즘 말로 ‘댓글’과 “좋아요”가 거의 15m에 이르는 긴 두루마리다. 전문화가가 아니고 아마추어가 그린 문인화의 대표작은, 단순한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했던가, 먹이 모자란 듯 메마른 붓질로 그린 초라한 집 한 채와 고목 네 그루가 한겨울 추위 속에 떨고 있다.

증조부가 임금의 사위인 대단한 집안의 금수저로 태어난 추사는 어린 시절부터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했다.

청나라에 파견하던 사절단의 부사가 된 아버지를 따라 연경을 왕래하며 신문물도 보며, 금석학 분야에서 조선 최고의 학자로 성장했다, 추사가 45세 되던 해,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정치투쟁에 휩쓸려 아버지는 지금 완도인 고금도로 유배되고, 10년 후 자신도 제주도 대정현으로 유배된다. 고생을 모르고 자란 금수저에게 유배생활을 혹독했을 것이다. 그 와 중에 자신의 심정을 잘 헤아려주던 가장 친한 친구가 죽는다. ‘한 오라기 목숨을 부지한 것은 그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토로한다. 설상가상 사랑하던 부인과도 영원히 사별한다. 권력에서 멀어진 뒷방 늙은이에게 서울친구들의 소식이 점점 뜸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었으리라.

그런데 제자 중 우선(蕅船)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은 달랐다. 높은 벼슬도 아닌 역관이었던 이상적은 중국에 다녀올 때마다 최신의 서적을 구해서 제주도의 추사에게 보냈다. <경세문편(經世文編)>등 120권으로 구성된 쉽게 구할 수 없는 책들이었다.

제자의 선물을 받은 추사는 문득 논어(論語)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 ‘혹독한 추위가 닥쳐서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는 것을 안다’. 무언가 답례 하고 싶었지만 바다 건너 유배된 신세에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뒤를 봐줄 수도 없고, 돈으로 보답할 수도 없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것뿐이었다. 이 국보는 모든 사람이 아니라 원래는 단 한 사람을 위한 그림이다. “우선시상(蕅船是賞)” “ 우선은 감상하시게”. 단순한 선이라 눈이 내린 흔적도, 인적도 없다. 바라보기만 해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쓸쓸한데, 정성스레 칸을 친 편지에는 추사체가 맞나 싶을 정도로 글씨가 또박또박 쓰여있다 “권력에 있을 때 그대가 내게 더 한 것도 없고, 권력에서 밀려나도 내게 덜한 것도 없네”

세한도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은 경성제국대학 교수였던 후지쯔카 치카시(藤塚 隣·1879∼1948)라 한다. 추사에 매료돼 글씨, 그림 등 온갖 자료를 수집한다. 추사가 우리에게 알려진 건 후지
쯔카 교수의 집요한 연구 덕분이리라.

후지쯔카는 광복 되기 전 1944년, 일본까지 찾아온 소전 손재형에게 세한도를 조건 없이 넘겨주었다. “내가 세한도를 다시 조선으로 돌려주는 건 소전이 조선의 보물을 사랑하는 성심에 감동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우리는 추사를 사숙(私淑)한 동문 아닙니까.” 이렇게 세한도를 넘겨받은 전재형의 후손은 2020년 대한민국에 다시 조건 없이 기증해서 드디어 우리 눈으로 진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추사는 그림 오른쪽 끝에 인장을 찍었다. ‘장무상망(長毋相忘)’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 혹독한 추위 속에 유배생활 같은 코로나시대다. 집콕이 힘들 때 백문이 불여일견, 국보를 한번 직접 감상하길 권한다.

의학신문  medicalnews@bo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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