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의학신문 기자]아직 은퇴하기 전에 있던 일이다. 실습 나온 학생을 위한 강의를 하던 도중, 의사가 평생토록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의사면 누구나 꼭 해야 하는 일이 진료, 연구, 교육인데 이는 세발 자전거 같아서 서로 균형이 맞지 않으면 실패한 의사가 될 것이라는 말을 하니 한 명이 반론을 제기한다. 그것은 대학교수의 임무이지 개원의는 그냥 진료만 하면 되지 않느냐 하면서 자기는 연구, 교육이 싫어서 대학에 남아 일하지는 않을 것이라 한다.

개원의가 되면 세가지 사명 이외에 경영이라는 부분이 더 추가된다는 말을 하니, 그러니까 자기는 자기 병원을 열어 진료해서 열심히 돈을 벌 것이라고 한다. 다른 학생들도 그 학생의 의견에 동의하는 표정이었다. 그런 생각은 개원에 실패하는 지름길이라고 하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어서 강의가 완전히 딴 곳으로 빠지게 되었다.

의사가 개원을 하면 모든 게 자기 책임이 된다. 함께 일하는 간호사나 간호조무사를 계속 교육하여 늘 새롭게 해야 하고, 환자와 어떤 대화를 나누어야 환자가 편안하고 안전하게 진료를 받을지 연구해야 하며, 환자에게 생활관리, 약물복용 등도 교육해야 한다. 또한 의사가 지시하는 사항을 짧은 시간에 환자가 쉽게 알아듣도록 연구해야 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얻어가며 진료해야 성공적인 개원의가 되는데, 거기에 경영과 관리까지 더해지는 것이 개원의다. 그런데 경영이란 말은 네가 생각하듯 돈 버는 일만이 아니고 그 보다 훨씬 상위의 개념이라 하니 뭔 소리를 하려고 하나 하는 분위기였다.

대학교수의 일은 개원의 보다 단순하다고 볼 수 있다. 한 가지 분야를 깊이 파면서 그 분야만 연구하고 교육하면 되는데, 개원의는 자기 전공 전체를 늘 다양하고 폭넓게 공부해야 하고, 그 깊이도 만만하지 않은데다, 직원 관리도 연구하고, 병원 경영도 연구하고, 환자교육도 해야 하고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개원가의 수입이 대학교수보다 크게 낫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는 말을 하니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괜히 겁주지 말라는 얼굴을 하면서 '교수님은 개원해 본적 없는데 어찌 아냐?'는 질문도 한다. "너희들은 아파봐야 질병이 이해되냐?"니까 입을 다물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개원의는 자기 전공만 공부해서는 경쟁에서 살아나기 힘들다. 교수보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 더 극심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의사이면서 대학교수인 것이 더 훌륭한 일인 듯 잘 못 인식되어 있다. 아픈 사람을 위해 각자의 역할을 나누어 충실하게 사는 것이 의사의 길이고, 자기 적성에 맞게 진로를 정하는 것인데 누가 더 훌륭한 지를 논하는 것은 넌센스다.

모든 의사가 진료, 연구, 교육에 다 관여해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개념에서 요즘은 academic medicine이란 말이 쓰이는데, 이것이 우리말로 자연스런 번역이 안된다. 일본 중국에서도 이를 적절히 표현 못한다. 아마도 medicine을 '의학'이라 번역한 오류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응? medicine이 의학이 아니라고? 뭔 소리야? 하는 의문이 들것이다.

Medicine 이란 단어에는 세 가지 분야가 통합되어 있다. -medical science(의과학), medical care(의료), medical technology(의술) - 그런데 이 단어를 일본이 번역할 때 醫學(의학)이라 하였고, 우리는 그냥 받아들였다. medicine이란 단어는 폭넓은 개념으로 醫(의)라고 했어야 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의학용어의 대부분이 일본 유래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사회가 의사를 토착 왜구나 적폐세력으로 보는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의사는 개원을 하던, 봉직을 하던, 대학에 있던 누구나 진료, 연구, 교육 이 세가지 일을 다 해야 성공적인 의사가 된다. 이를 포괄하는 말이 ‘academic medicine’이라고 했는데 직역을 하면 ‘대학의학’이나 ‘학술의학’에 가깝지만 필자는 이런 표현은 틀렸다고 생각하며 '의학'의 본질이 그렇다고 이해하는 것이 맞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의사는 하나다. 개원가와 대학병원 의사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요즘 쌓이고 있는 대학가와 개원가와 학회 사이의 반목은 서로 망하는 쪽으로 가는 길이다. 돌이킬 수 있을 때 돌이켜야 한다.

정 지 태

대한의학회 회장/고려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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