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담 유형준 교수의 의사 문인 열전<20>

[의학신문·일간보사] 작은 도시 패터슨에 사는 버스 운전기사 패터슨. 버스 운행 중 틈틈이 ‘패터슨’이라는 제목의 시를 쓰고 있다. 어느 날 자신의 애완견이 시노트를 훼손하자 몹시 상심한 채 퍼세익 폭포를 찾는다. 거기서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시집 『패터슨』을 읽고 있던 일본인을 우연히 만난다. 그는 시인 윌리엄스의 숨결을 찾아온 관광객이다.

영화계의 거장 짐 자무쉬(Jim Jarmusch)감독의 2016년 작 ‘패터슨’의 일부 내용이다. 평범한 일상 가운데 시적 울림을 주는 명대사들로 우리나라에서도 다양성 영화 1위에 올랐었다. 시 짓는 패터슨, 버스 모는 패터슨. 시 짓는 윌리엄스, 환자 보는 윌리엄스.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 속 주인공 패터슨과 윌리엄스가 간단없이 중첩되었다. 실제로 자무쉬 감독이 이십여 년 전 미국 뉴저지주의 패터슨(Paterson)을 방문했다가, 의사로서 시를 썼던 윌리엄스에게 받았던 깊은 인상이 영화의 실마리가 되었다.

세인트메리병원 중앙 로비의 윌리엄스 기념 동판.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 1883~1963)는 미국 뉴저지 주 러더퍼드(Rutherford)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시절 작가이자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펜실베이니아 의대에서 수업하였으며, 뉴욕 프렌치(French)병원과 보육 소아(Nursery and Child's)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독일 라이프치히에 소아과 연수를 다녀왔다. 고향에 돌아와 소아과와 일반의과 개원을 하여 진료하면서, 퍼세익(Passaic) 종합병원의 수석 소아과 의사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근 사십 년간 재직했다.

윌리엄스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이십 세기 시인 중 한 명이다. 대학 시절 만난 친구인 에즈라 파운드와 함께 이미지즘을 이끌었지만, 이어진 행보는 서로 달랐다. 파운드는 유럽에서 창의력을 위한 새로운 환경을 모색했지만, 윌리엄스는 일상생활과 일반 사람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 시인이 되고자 추구하였다.

평생 쉼 없이 환자를 보면서 시를 지었던 윌리엄스. 진료와 시짓기 두 부분 다 성공하여 ‘안톤 체호프 이래 가장 중요한 의사문인’이라 불리는 윌리엄스. 사람들은 물었다. '진료를 계속하면서 동시에 글 쓸 시간이 있을까? 최소한 두 사람의 에너지를 지닌 초인이 틀림없어.' 그는 답했다. “둘은 다른 각각이 아니라 하나의 두 부분입니다. 둘은 서로 보완합니다. 한 부분이 나를 지치게 할 때 다른 부분이 나를 쉬게 합니다.” [『자서전』 1948년]

스스로 밝힌 바와 같이 의사 윌리엄스가 시인 윌리엄스를 방해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의학은 시를 쓸 수 있게 한 식음료였다. 환자들은 독특한 방언과 언어, 다양한 감정, 그리고 시의 생성과 발전의 원천인 의학적 경험을 제공했다. 진료 중 불현듯 떠오른 시상(詩想)을 병록지 공백에 적기도 했다. 의학은 시인으로의 도약판이었으며, 동시에 ‘시 없이 의학을 행할 수 없다.’는 고백처럼 시는 의사의 동력이었다.

이렇게 줄곧 진료와 시작(詩作)을 함께한 윌리엄스는 의사시인이다. 필자는 이러한 의사시인을 ‘대등합성 의사시인’이라 부른다. 의사와 시인의 본래 의미와 역할이 각각 대등한 자격과 용량으로 담겨 있다. 의사면허는 획득하였으나 의업은 하지 않고 시를 짓는 ‘의대 출신 시인’, 중간에 진료를 접고 전업하거나 진료에 시를 장식하는 ‘종속합성 의사시인’ 등과는 분명히 구별된다.[「시 짓는 의사들」 유담, 《문학청춘》 2020년 여름호]

윌리엄스 사후, 러더포드의 자택은 국립사적지가 되었고, 가장 오래된 시단체인 미국 시협회(Poetry Society of America)는 매년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상을 준다. 또한 퍼세익종합병원은 지금 세인트메리 종합병원으로 바뀌었지만, 윌리엄스 탄생 125주년을 맞은 2008년 모자보건 서비스를 지원하는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재단’을 설립하며, 중앙 로비에 기념 동판을 헌정 부착했다. 동판 위와 아래에 글귀가 새겨져 있다[그림]. ‘우리는 윌리엄스가 걸었던 병동을 걷는다.’ “시는 환자가 반쯤 말한 이야기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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