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희 태 <법학박사 >
경기대 명예교수 겸 연세대 객원교수

[의학신문·일간보사] 하나의 언어적 표현 즉 단어가 지시하는 개념의 인식내용이 사회적 담론 내지 의사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임은 논의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많은 의견충돌이나 소통장애 현상에서 그 원인이 핵심 주제어에 대한 참여자간 개념 인식의 차이에 있음을 발견한다.

필자는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어렵지 않게 그러한 점을 느껴왔다. 그 중 핵심어에 속하는 ‘보건’과 ‘보건의료’의 개념을 우선 재고해 보고자 한다.

‘보건’이라는 용어는 현대 한국 이전에는 쓰이지 않은 말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말과 관련 있는 표현으로서 기록상 최초로 나타난 것은 조선 고종실록 32권, 고종 31년(1894년) 7월 14일 기사에서이다. 그 기사는 ‘행정경찰(行政警察)’의 임무 중 하나로 ‘건강을 보호하는 일’ 이라는 뜻의 ‘保護健康事(보호건강사)’를 들고 있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보건’이 공식적인 법률용어로 처음 쓰인 것은 1948.7.17.에 제정된 ‘정부조직법’에서이다. 그 제23조는 “사회부장관은 노동·보건·후생과 부녀문제에 관한 사무를 장리한다.” 고 하고, 보건국에 보건과·의무과·약무과·방역과·한방과·간호사업과를 두는 것으로 하였다. 헌법의 경우, 1948.7.17. 건국헌법 제20조에서는 “..가족의 건강은 국가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 고 규정했다가, 1962.12. 개정 헌법 제31조에서는 “모든 국민은 혼인의 순결과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하였다.

이후 ‘보건’은 모든 관련법에서 통용되는 용어로 정착되었는데, 그 의미를 법령의 명문 규정을 통하여 추출해 보면 ‘건강의 보호·증진’(1967.3. 제정 학교보건법), ‘생명과 건강의 보호’ 내지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건강을 유지하게 함’(1973.2. 제정 모자보건법, 2019.1. 일부개정 모자보건법) 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관련법의 입법 취지와 규정 내용 및 보건 관념의 본질과 구현요건 요소에 비추어 볼 때, 개인적 차원과 인구집단적 · 사회적 차원을 모두 포섭하는 용어이다. 즉 현행법상 ‘보건’은 ‘개인보건’과 ‘공중보건’ 양자를 모두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일찍부터 학계와 실무계 일각에서 ‘보건’을 ‘공중보건’ 의 의미만으로 이해하고 쓰는 경향이 생겨났고, 그 경향은 지금도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1980.12. ‘농어촌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의 제정을 필두로 하여 ‘보건의료’ 라는 용어가 법령에 등장하였으며, 2000.1.에는 ‘보건의료기본법’ 이 제정되고 그 개념정의가 명문화됨으로써, ‘보건’과 함께 보편적으로 쓰이는 말로 정착되었다.

그 의미를, ‘보건의료기본법’ 제3조(정의) 제1호 "보건의료"란 국민의 건강을 보호ㆍ증진하기 위하여 국가ㆍ지방자치단체ㆍ보건의료기관 또는 보건의료인 등이 행하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는 규정에 따라 요약해 보면, ‘건강의 보호·증진’이 된다. 이러한 개념 설정은 ‘농어촌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보건향상), 2000.1. 제정의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건강의 보호·증진), 2019.4. 제정의 보건의료인력지원법(건강의 보호ㆍ증진) 에서도 동일하다.

이런 점에서 ‘보건의료’의 의미는 앞에서 살펴본 ‘보건’의 의미와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의료’ 라는 용어가 새로이 등장하게 된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그것은 ‘보건’ 이라는 용어에 대한 관념이 예방 · 환경개선 등을 중시하는 ‘공중보건’으로 경도되는 현상을 주목함으로써, 질병의 진단과 치료 및 간호와 재활이라는 생의학적 요소를 보건의 또 다른 과제로 부각시키기 위한 신조어 고안 노력의 소산이 아니었을까 한다. 금후 생명공학과 첨단의학의 발전에 따라 보건의료의 개념은 변화 내지 확장되어 갈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중국에서는 보건의료에 상당하는 것을 ‘의료위생(医疗卫生 = 醫療衛生)’이라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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