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낙
가천대학교 명예총장
한국의약평론가회 명예회장

[의학신문·일간보사] 근래 정부, 정확히 말해 보건복지부와 의료계 간의 갈등 상황을 지켜보기가 참으로 불안하기도 하고 민망해 마치 오래전에 본 <서푼짜리 오페라>라도 관람하고 있는 듯싶다. 심히 혼란스럽고 참담하기 그지없다.

정부와 여당이 앞장서서 ‘공공 의과 대학’을 특정 지역에 신설하겠다고 나서자 대한의사협회를 중심으로 한 의료계, 곧 대한의학회,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그리고 대한전공의협의회가 반대의 목소리를 내더니 급기야는 모든 의과 대학생까지 한목소리를 내기에 이르렀다.

거기에다 2021년 초 의과 대학 졸업 예정자들이 반드시 치러야 할 ‘의사국가고시’의 일부인 ‘임상 술기 시험’을 응시생의 약 85%가 거부한 상태이다. 국내 의료계 역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정부와 여당이 ‘공공 의료의 강화’라는 그럴싸한 슬로건 아래 ‘공공 의대’ 추진이라는 꼼수를 부리는 것이 빤히 보이는데,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으냐며 의료계가 언성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의료계의 의견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한낱 집단 이기주의에 불과하다며 애써 외면하고, 이에 초유의 대치 국면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의 이런 태도엔 언젠가 의료계가 ‘항복’하면 난제인 ‘공공 의대 문제’를 함께 풀어보겠다는 저의가 담겨 있다는 게 의료계의 시선이다. 참으로 답답하고 한심스러운 일이다.

이 문제를 근래의 전국 대형 병원별, 전공과목별 전문의 지망생 추이를 두고 생각해보자. 잘 알려졌다시피 인기 과목과 비인기 과목에 지망생의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쏠림 현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인기과’와 ‘비인기과’는 5~10년 주기로 ‘오름과 내림 현상’이 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움직임은 구미 여러 나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임상의학 분야에서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같은 큰 학과를 ‘Major-학과’라 부르고 성형외과, 비뇨기과, 피부과, 가정의학과 같은 학과를 ‘Minor-학과’로 크게 분류한다. 이 Major-학과와 Minor-학과 사이에서도 ‘인기 학과’와 ‘비인기 학과’가 갈리며 ‘오름과 내림 현상’이 있지만, 국내처럼 그 쏠림 현상이 어느 특정 Minor-학과에 몰리면서 Major-학과에 결원 상태가 일어난 것은 매우 특기할 만한 현상이다. 특히 외과 계열인 일반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산부인과의 충원 문제가 심각하다. 이는 우리 사회가 깊이 성찰해야 할 현안으로, 결코 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그 대가는 의료 소비자인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와 임상 의료 시스템이 비슷한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이러한 쏠림 현상이 이슈화될 정도로 심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 의료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문제에 대해 강도 높은 경고음을 내왔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의료계의 일’이라며 이를 못 본 체해왔다.

심지어 몇 해 전에는 보건복지부가 임상 전문의의 수를 줄여야 한다며 어느 날 갑자기 전국 수련 병원에 배정된 수련의의 수를 삭감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바람에 대형 수련 병원에 큰 혼란을 초래하기도 했다. 그렇게 의료계를 ‘장악’해온 것이다.

여기에 더해 보건복지부와 여당은 의사의 직종 간 쏠림 현상을 넘어 지역 간 분포 문제를 풀겠다며 혼연일체가 되어 ‘공공 의대의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정부가 계획하는 ‘공공 의대’가 특정 지역에 특배(特配) 되어 있는 점은 차치하고, 이것이 문제 해결의 타당한 방법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왜 수도권의 인구 집중 현상을 지금껏 해결 못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어설픈 숫자 놀이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국내 의사의 수요가 그렇게 급박하다면 현존하는 40개 의과 대학의 신입생 수를 10명씩만 증원해도 충분하다. 그러면 한 해에 400명은 쉽게 확보할 수 있다.

이렇게 쉬운 방법이 있음에도 특정 지역에 ‘공공 의대’를 설립하겠다고 고집하니 어찌 향기롭지 않은 냄새가 풍긴다고 하지 않겠는가.

아울러 위에서 언급한 신설 의대 문제로 촉발된, 2021년도 의과 대학 졸업 예정자의 의사국가고시 문제는 정부가 자발적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칼자루’를 쥔 쪽이 책임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2021년에는 인턴 공백 사태에 따른 의료 대란이 벌어지고, 2022년에는 의대 졸업생이 두 배로 늘어 약 6,500명에 달하는 기현상이 벌어질 것이다. 더욱이 그에 따른 문제가 향후 5년간 연쇄적으로 일어나 ‘쓰나미 현상’을 방불케 할 것이다. 매우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 모든 책임은 ‘의대생 국시 재응시 불허’라는 행정 결단에 있다는 점을 필자는 분명히 지적하고자 한다. 의사국가고시를 관리하는 정부 측의 현명한 양보가 절실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서푼짜리 오페라> 같은 작금의 협상을 지켜보는 것이 염려스럽고, 그저 관망하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다. 모쪼록 지혜로운 해결책을 촉구한다.


[주해: Bertolt Brecht(1898~1956)가 쓰고 Kurt J. Weill(1900~1950)이 작곡한 <서푼짜리 오페라, Die Dreigroschen-Oper(獨), The Threepenny Opera(英)>는 1928년 무대에 오른 뮤지컬로, 매우 사회·비판적인 역작이다. 필자는 그 제목만을 인용했다는 점을 밝혀둔다.]

- 이성낙 가천대학교 명예총장 / 한국의약평론가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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