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윤경의 클래식 편지<26>

피아니스트 김윤경의 클래식 편지

호두까기 인형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

[의학신문·일간보사] 연말에 가장 무대에 많이 오르는 공연을 고른다면 아마도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발레 공연일 것이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3대 발레 중 하나인 ‘호두까기 인형’은 익숙한 소재와 음악으로 가족, 연인,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연이다.

연말 가장 많이 무대 오르는 3대 발레공연

발레의 배경은 1900년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밤이다. 주인공인 클라라는 호두까기 인형을 선물로 받고 잠든 후 꿈을 꾸게 되는데, 꿈 속에서 호두까기 인형은 왕자로 변신하여 나쁜 생쥐 왕을 쓰러뜨리게 되고, 클라라와 왕자는 환상의 요정 나라들로 여행을 다니게 된다는 스토리다. 어린 아이들에게 보편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꽃의 왈츠’를 비롯하여 ‘사탕 요정의 춤’ ‘러시아 트레팍 춤’ ‘아라비아인의 춤’ ‘중국인의 춤’ ‘눈꽃 왈츠’ 등 차이콥스키의 음악에 맞춰 다양한 나라의 의상들과 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이다.

소위 연말의 크리스마스 선물과도 같은 공연인 ‘호두까기 인형’ 발레 음악을 탄생시킨 차이콥스키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었기에 이토록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행복과 즐거움을 주는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차이콥스키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오페라 극장으로부터 작품 의뢰를 받고 처음 대본을 접했을 때에 그는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그 당시에 5 0세의 작곡가는 끊임없는 작곡과 연주 요청으로 인하여 너무 지친 나머지 의욕 상실에 빠져있었고, 동성애자라는 소문과 더불어 쏟아지는 비난에 정신적으로 상당히 피폐해져 있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오랜 기간 그의 정신적·물질적 후원자이자 친구였던 폰 메크 부인과의 관계까지 끊어져 깊은 우울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또한 발레의 원작인 E. T. A 호프만의 동화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도 너무 동화스럽고 유치하다고 생각했던 차이콥스키는 당시 동생에게 “나는 매우 지쳐있다. 머리는 텅 비었고 의욕이 없으며, 작곡에 조금도 흥미가 없다. 이런 상황에 오페라나 발레의 작곡을 수락한다고 해도 만족스런 결과가 나올 리 없다”며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첼레스타로 ‘사탕요정의 춤’ 음악 완벽 구현

그러던 중 차이콥스키는 파리를 경유해서 미국으로 연주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바로 그 때, 차이콥스키는 가장 슬픈 소식과 가장 아름다운 만남을 한꺼번에 접하게 된다. 바로 작곡가와 제일 가까웠던 여동생 사샤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깊은 슬픔에 빠져 여동생을 애도하던 중, 그는 파리의 어느 악기 상점에서 호두까기 인형발레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악기, 첼레스타를 발견하게 된다.

첼레스타는 세상에 나온지 5년 밖에 안되는 신제품 악기로 널리 보급되지 않아 당시 유럽의 작곡가들도 이 악기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소형 업라이트 피아노와 흡사한 모양의 첼레스타는 크지 않지만 아름답고 신비로운 종소리를 내었다. 첼레스타의 음색에 완전히 매료된 차이콥스키는 악기상에게 “누구에게도 이 악기를 보여주지 말라”며 바로 구입을 하고 주변에 초연 때까지 새로운 악기의 등장에 대하여 일체 함구를 부탁했다고 한다.

악기의 발견으로 ‘호두까기 인형’ 발레의 ‘사탕 요정의 춤’ 음악이 완벽하게 만들어지게 된다. 첼레스타와의 만남으로 창작 의욕에 불이 붙게 된 차이콥스키는 본격적으로 창작에 착수하게 되고 나팔, 큰북, 크레셀, 래빗 드럼 등의 장난감 악기들을 구매하는 등 여동생 사샤와의 유년 시절 추억을 작품 곳곳에 반영할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찾아 나갔다.

차이콥스키, 아이들이 아름다운 세상 꿈꾸게 해

80여명의 무용수들과 150벌 가량의 의상들을 비롯하여 수십 킬로그램의 색종이 가루가 필요하다는 꿈과 희망으로 가득한 ‘호두까기 인형’ 발레는 이렇듯 차이콥스키가 고군분투하며 힘겨운 시간들을 견디어 내는 가운데 완성되었다.

평소에 유독 아이들을 예뻐했다는 차이콥스키. 그의 삶은 절망과 고뇌의 늪 가운데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주기를 바랬던 그의 마음이 이렇듯 많은 이들에게 매년 따뜻한 크리스마스 선물과도 같이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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